무한 잠재력 인도를 잡아라 | |
세계 2위 신흥시장 공략 나선 한국기업들… 현지화 승부수로 시장선점에 ‘올인’ 인도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것 중 하나가 그들의 독특한 교통문화다. 도로를 점령한 소떼와 대책 없이 내 달리는 릭샤·오토릭샤(서민용 택시), 시커먼 매연을 뿜으며 승객을 가득 싣고 서커스하듯 운행하는 버스, 무한 질주하는 승용차, 이런 도로를 태연하게 무단횡단하는 시민들…. 교통사고로 도심지가 마비될 법도 한데 신기하게도 인도에서는 교통사고를 목격하기 쉽지 않다. 이유는 ‘무질서 속의 질서’. 언뜻 보기에는 무질서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그들만의 ‘룰’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함께 21세기 초강대국으로 도약하고 있는 인도의 무한한 경쟁력도 결국 ‘무질서 속에 담겨 있는 질서에서 나온다’ 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신비로운 인도를 들여다봤다. 5월 17일 수도 뉴델리의 낮 기온은 43℃. 수치상으로는 가위 살인적인 더위지만 건조한 기후 때문인지 무덥다는 생각보다는 뜨겁다는 느낌이 든다. 점심시간(인도는 1시부터 2시) 직후라 뉴델리 중심가는 손님을 기다리며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는 릭샤 기사들만 눈에 들어올 뿐 한산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간혹 질주하는 고급형(?)자동차 가운데 현대브랜드 자동차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는 점이다. 외형은 한국에서 보던 것과 다소 다르지만 현대차 마크가 선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차는 1998년 9월부터 판매를 시작해 5년 만에 50만 대를 돌파했을 정도로 인도 전역에 퍼져 있다. 현지 판매법인에서 20여 분 거리에 있는 한 딜러점(전시장)을 방문했다. 4층 규모 전시장에 들어서니 고급스러운 내부 인테리어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방문객을 반겼다. 2층 전시장에는 삼삼오오 짝을 지은 현지 고객들이 전시된 자동차를 세심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고급외제차 전시장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할 정도로 내부 시설은 훌륭했다. 인도인 취향에 맞춰 ‘대박’ 판매책임자인 퍼원 굽따씨(41)는 “평일에도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면서 “현대차에 대한 인도인들의 평가는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의 경우 여기서 판매된 차량이 4000여 대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며 “적당한 가격과 인도인의 취향에 알맞게 제작한 모델이 인기를 끄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현재 인도 전역에는 현대차전용 딜러점이 146개(2004년 기준)에 달하며, 현대는 올 한해 동안 180개로 늘릴 계획이다. 또 정비소도 지난해 408개소에서 480개소로 대폭 확충한다는 방침이다. 인도 자동차 시장 규모는 2003년 65만대에서 지난해에는 80만대로 성장한데 이어 금년에는 92만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2007년이면 115만대에 달하고, 2010년에는 162만대로 대폭 성장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현대차 판매법인 민왕식 이사는 “인도는 지난 10년간 매년 평균 6%대의 성장세를 보였고 이런 성장세는 향후 10년간 유지될 것으로 본다”면서 “이런 추세라면 2010년에는 160만대 이상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민 이사는 이에 따라 “일본자동차 메이커를 비롯해 유럽 등 세계유수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시장진출 공세를 가속하고 있다”면서 “갈수록 시장쟁탈전은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성장잠재력 높은 신흥시장으로 떠오른 인도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국의 자동차 메이커들은 생산시설 증설과 함께 신차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 등 다양한 형태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인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인 마루티는 현재 35만대 생산능력을 2007년까지 60만대로 증설할 계획이며, 타타(TATA)사는 올해 말까지 15만대에서 22만5000대로 설비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밖에 GM과 도요타 등도 올해 말까지 생산능력을 추가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신모델 개발과 함께 현 첸나이공장 여유부지 65만평에 제2공장을 신설, 2007년부터는 현재 25만대 수준에서 40만대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내수시장도 평균 20% 이상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내수시장 확대와 함께 유럽과 중남미, 중동 등 수출교두보로 성장시킬 계획이다. 인도판매법인 김철환 차장은 “현대차가 짧은 기간에 인도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과 함께 고객이 감동할 때까지 실시하는 애프터 서비스 등에 따른 결과”라면서 “현대차가 세계적 브랜드 입지를 굳힐 날도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전 점유율 30~40% ‘절대강자’ 현대자동차와 함께 LG전자·삼성전자도 인도인이 가장 선호하는 가전제품 메이커로 자리잡았다. 가전제품 가운데 상당수가 점유율 30∼40%일 정도로 절대강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히는 LG전자는 인도 지역 최고의 가전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성공에는 적지않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이 뒤따랐다. LG전자가 인도시장에 처음 진출한 1995년 당시. 인도에서 외국산 전자제품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BPL등 인도 현지업체 제품이 대부분이었고 간혹 눈에 띄는 것은 일본 소니 제품이었다. 이 무렵 LG전자는 창원에 ‘인도공략 Project팀’을 구성한다. LG전자 내 각분야 최고의 인재들을 모아서 제 3의 시장 인도공략을 시작한 것이다. 함상헌 상무(현 LG전자 스페인법인장)를 팀장으로 한 프로젝트팀은 각자 마케팅, 관리, 기획, 공장 운영, 구매, 에어컨 개발, TV개발 등에서 고르고 고른 LG전자의 최고인재들이었다. 인도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려는 LG전자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당시 인도정부는 외국기업의 법인진출에 냉랭한 태도를 취했다. 물론 당시 세계최고로 군림하던 일본의 소니를 제외하고는 100% 외국자본에는 허가를 내준 전례도 없었다. 결국 1996년 김쌍수 부회장(당시 전무)이 직접 인도에 가 정부관계자와 담판을 짓고서야 인도의 문을 열 수 있었다. 현재 LG전자는 인도 가전분야를 석권하고 있다. 컬러TV를 비롯해 냉장고, 전자레인지, 세탁기 등은 인도시장에서 점유율 30∼40%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LG전자는 중국에 이어 인도를 제2의 글로벌 생산기지로 만들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연말 ‘인도시장 3대 성장전략’을 발표하고 구체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이 전략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2010년에는 올해보다 10배 정도 늘어난 100억달러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인도 시장에 적잖은 공을 들이고 있다. 1995년 인도에 처음 진출한 삼성은 컬러TV를 비롯해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등을 중심으로 장기적인 투자와 우수인재 확보를 통해 인도를 제2의 중국처럼 가전 전진기지로 만들고 있다. 한국기업 인도시장 진출 ‘봇물’ 해운업체들도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신흥시장으로 떠오르는 인도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현대상선은 5월 초 인도와 중국을 잇는 컨테이너항로를 신설했다. 현대상선은 대만의 에버그린, 싱가포르의 사무데라와 공동으로 싱가포르-패서구당(말레이시아)-람차방(태국)-방콕(태국)-홍콩-상하이-홍콩-싱가포르-나바셰바(인도)-싱가포르를 잇는 항로를 매주 1회 운항한다. 현대상선은 또 오는 7월부터 인도 뭄바이에 위치한 지점을 법인으로 승격시키고 유조선, 벌크선 영업과 관련된 주요 지역에 해외주재원을 파견해 인도지역 영업력을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한진해운도 7월 인도와 중동지역을 연결하는 피더(feeder) 컨테이너항로를 개설키로 했다. 한진해운은 중국 코스콘(COSCON)사와 800TEU(TEU는 길이 20피트짜리 컨테이너)급 컨테이너선 1척씩을 투입, 반다 아바스(이란)-카라치(파키스탄)-나바셰바(인도)-콜롬보(스리랑카) 노선을 매주 1회 운항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도는 최근 주요 교역국인 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수출입 물량이 급증할 뿐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매우 중요한 지역이어서 점차 중요한 해운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업체의 잇단 진출에 따라 산업은행과 국내항공업체 등은 이미 인도시장에 진출 또는 운항횟수를 늘릴 계획이며 두산그룹도 시장진출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국내 업체들이 인도시장에 공을 들이고 또 성공을 이루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한국인(주재원)의 성실성과 모기업의 과감한 투자, 그리고 무한한 잠재력을 꼽는다. 특히 인도는 공용어인 영어와 세계최고 수준의 IT인력, 잘 정비된 법률제도, 여기에 15세 이하의 ‘영피플’이 상대적으로 많아 소비와 생산의 톱니바퀴가 매끄럽게 돈다는 점을 꼽는다. 롯데 인디아(주) 황인도 이사는 인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가난한 나라가 아닙니다. 인구가 워낙 많다 보니 국민총생산이 상대적으로 낮아 그렇게 보일 뿐 부자 나라입니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인구가 5000만명에 달하는데다 우수 IT인력, 풍부한 지하자원 등으로 경쟁력이 큽니다. 롯데가 지난해 패리스제과를 인수해 인도시장에 진출한 것도 무한한 가능성 때문입니다.” 특히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를 인도의 최대 강점으로 꼽고 있다. 인도 ‘영피플’ 잠재력 으뜸 실제로 지난해 기준으로 인도의 수출액 680억달러 중 163억달러가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일 정도다. 이는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수출액의 30배에 달한다. 이 분야는 매년 30% 정도의 증가추세를 보이며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수출 물량의 62%는 미국으로 간다.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기술보유국인 미국이 인도의 소프트웨어 기술을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장밋빛 그림을 펼치기 위해 인도가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인도는 평균 6%에 달하는 성장률과 잠재력에도 독특한 문화와 오래된 관습, 비현실적인 제도 등이 아직 남아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인도는 고질적인 관료주의와 카스트(계급) 제도에 따른 사회내 갈등, 세계적 수준인 빈부격차, 전체 인구의 절반이 일자리가 없는 악성 고용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이 인도에 진출할 경우 정확한 컨설팅과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국-인도 비즈니스 전문 컨설턴트 바누 쁘르땁씨(33·koreantranslator.co.in)는 “최근 들어 인도에 진출하는 한국기업이 크게 늘고 있다”면서 “하지만 가능성만 보고 사전 준비없이 진출할 경우 낭패를 볼 수 있어 전문가 조언 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뉴델리·첸나이/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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