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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 첩들의 귀환

박영복(지호) 2009. 9. 1. 20:01

 
 
중국 석유화공유한공사(SINOPEC·시노펙)의 천퉁하이 전 회장은 1억9600만위안(약 370억원)의 뇌물 수수죄가 확정돼 지난 7월 사형과 2년간의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중국 사상 최대 규모의 뇌물 사건이다.

중국인들이 더욱 분노한 것은 천퉁하이가 권력을 이용해 애인 리웨이가 편법으로 대규모 부동산 개발사업들에 관여하면서 천문학적인 부를 쌓도록 해줬다는 점이다. 천퉁하이 외에 산둥성 칭다오시 당서기였던 두스청도 리웨이와 오랜 관계를 맺은 것으로 드러나, ‘애인 공용제’라는 비웃음이 쏟아지기도 했다.

최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첩들의 귀환’이라는 제목으로 마오쩌둥이 혁명을 통해 일소했던 봉건주의 악습인 축첩 제도가 중국 고위 관리와 당 간부, 기업가들 사이에서 부활했다고 보도했다. ‘얼나이’(두 번째 가슴)로 불리는 애인을 몇 명 거느리고 있고,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느냐가 고관과 부유층이 부를 과시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5년간 뇌물죄로 처벌받은 중국 고위 관리의 90% 이상이 애인 문제와 관련돼 있다는 통계도 있다.

중국에서 고위 관리들의 부정부패 스캔들은 이제 뉴스도 아닐 정도로 곳곳에서 폭로되고 있다. 올해 중국 정치의 새로운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중국 지도부가 선언한 ‘부패와의 전쟁’이다. 중국 공산당은 9월 4중전회의 주요 과제로 부패와의 전쟁을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개혁개방 30년이 지나면서 극심해진 빈부격차 속에 천문학적인 뇌물을 챙기며 호화생활을 하는 고위 관리들에 대한 인민들의 분노가 정부의 정통성마저 위협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충칭시는 경찰 고위 관리들이 관련된 대규모 범죄조직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고, 중국 관영 언론들이 고관들의 뇌물 수뢰 사건을 잇달아 보도하는 것은 이런 변화 노력의 일부분이다.

이에 대해 중국인들은 아직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 최근 만난 베이징의 한 대학교수는 정부가 부패와의 싸움을 벌이겠다고 나선 데 대해 “중국인들은 부패 관리 사건이 언론에 폭로되면, 정부가 그를 정치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할 뿐 부정부패가 정말 사라질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며 “부정부패가 너무 광범위한 상황에서 일반인들도 각자 인맥을 찾아 이용하려 애쓰고 있고, 이를 해결하려 나서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중국인들도 더는 침묵하지 않는다. 산둥성의 오지 마을인 번둥난의 칠순 농민 6명이 최근 마을 당 책임자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려고 인터넷에서 대국민 호소에 나서 화제가 됐다. 이들은 이 지역 당 책임자가 12년간 마을 주민들의 토지를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팔아넘겨 거액을 챙긴 사연을 알리려고 지방정부와 경찰에 호소했지만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자, 생전 처음 인터넷이란 도구를 이용해 ‘우리 마을의 폭군을 없애줄 정직한 관리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자신들의 사연을 세상에 알렸다.

지난 5월 저장성 항저우에서 기업가 아버지와 시 간부를 어머니로 둔 부유층 자제 후빈이 스포츠카를 몰다가 젊은이를 치어 죽게 한 사건은 올해 상반기 중국 인터넷에서 가장 뜨거운 사건이었다. 교통경찰이 사고 당시 차량 속도가 70㎞밖에 안 됐다고 밝히자, 분노한 누리꾼들은 후빈과 부모, 경찰의 조사에 얽힌 뒷얘기를 낱낱이 찾아내 폭로했다.

중국 건국 60돌을 맞은 올해, 중국 정부와 사회가 지난 30년 개혁개방 정책의 가장 고통스러운 부작용인 부정부패와 빈부격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중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경고와 외침이 중국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