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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우탄 수놈들도 여자들을 좋아해(2)

박영복(지호) 2006. 5. 17. 18:04

드디어 우린 오랑우탄 보호 및 연구소의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예전엔 좀더 강 상류에 마련돼 있었으나 지금은 좀 더 하류에 별도의 나무 다리를 건설하였습니다. 배에서 내린 우리는 숲 안의 늪지에 마련된 폭 1.5미터 가량의 다리를 따라 더 깊숙이 걸어 들어 갔습니다. 우리가 걸어 들어가던 다리는 예전에 세운 구 다리와 만나고 오른쪽으론 관리 사무소 건물이 간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입구의 집엔 이미 와 있던 3명의 젊은이들이 피곤했는지 난간에 누워 뒹굴고 있었는데 오랑우탄을 찾는 우리의 눈은 혹시 그들이 오랑우탄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오랑우탄 관리 사무소에 전시된 사진과 설명서)

 

오랑우탄 관리 사무소 건물로 들어선 우리는 벽에 장식된 사진과 벽보를 감상하고 오랑우탄을 만날 시간표를 현지 관리인과 협의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아침 시간에 한번 먹을 것을 주고 오후 2시경 점심을 주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후 급식시간을 그곳에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변에 마련된 낙후된 시설들을 둘러보고 작은 산길을 둘러 보기도 하는 등 열심히 오랑우탄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한 녀석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오랑우탄에 관한 팜플렛과 자세한 연구결과)

 

관리인들이 오랑우탄에게 줄 점심시간은 앞으로 약 3시간이나 남아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린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하여 산 속으로 들어 섰습니다. 작은 산길을 따라 강가까지 나갔는데 갑자기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려 옵니다. 무슨 확성기를 대고 외치는 소리와 비슷했습니다. 우리 일행은 약간 불안하기도 하여 서둘러 관리 사무소가 있는 곳으로 내려 와 관리인들에게 그 소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 소리는 점심때가 가까워지자 꼬사시(Koesasih)라는 이름을 가진 오랑우탄이 소리를 지르며 산에서 내려오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가던 길을 갑자기 멈추고 포즈를 취해 주는 오랑우탄-꼬사시)

 

꼬사시는 오래 전부터 사람들과 근접하면서 살아 왔기 때문에 매일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찾아 관리사무소로 내려 온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가 내려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야외에 마련된 의자에서 기다리는 동안 한 10여명의 유럽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전시물을 살펴보고 여기 저기 다니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옆까지 다가오는 원숭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커다란 몸집을 한 오랑우탄, 꼬사시가 눈앞에 다가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체격은 크고 얼굴은 검은데다 팔은 길고  긴 털로 뒤덮은 그는 우리가 있던 의자를 지나 유럽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서서히 걸어 갔습니다.

 

의자에 모여 앉아 쉬면서 오랑우탄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던 우리는 정작 오랑우탄이 나타나자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곤충 채집을 나간 최 교수를 급히 내려 오라고 부르고 있는 동안 오랑우탄은 사무소 건물을 지나 잔디가 제법 잘 자란 평지로 나아 갔습니다.걸어 가다간 때때로 뒤돌아보고 한참을 앉아 있다가 또 전진하기를 약 30분 정도 하는가 싶더니 이젠 아예 포즈를 취하는 등 제법 사람들에게 친밀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이런 습관을 아는지 관리소 청년 한 사람은 부엌열쇠를 열고 들어가 우유를 한 바가지 들고 나와 그에게 주었습니다.

(꼬사시가 관리인이 내준 우유를 마시고 있다)

 

그는 우유를 두 손으로 받아 들고 얼굴을 깊이 파 묻은 채 우유를 서서히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가 우유를 다 마시고 고개를 들어 주기를 기다렸는데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일단 우유를 마신 그는 다리를 편하게 하여 앉은 다음 오랫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가 앉아 있는 곳의 옆으로 최대한 다가가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이 오랑우탄은 나이가 많이 들었고 너무 늙었기 때문에 행동이 느리고 순한 편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의 얼굴은 양 볼이 검고 광대뼈가 크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바로 이 꼬사시가 전세계 모든 오랑우탄 홍보지의 겉 표지에 실린 오랑우탄입니다.

(꼬사시가 유럽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

 

시간이 오후 2가 되자 관리인들은 산에 먹이를 주러 간다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2명의 청년이 창고에 여기저기 흩어진 바나나를 골라 배낭에 지고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꼬사시를 뒤로 하고 그 청년들의 뒤를 따라 산속 좁은 길을 따라 더 깊은 계곡으로 들어 갔습니다. 한참을 가다 보니 평지가 나왔고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아주 깊은 산중이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따라 가는 동안 그들은 무슨 소리를 질러댔는데 아마 오랑우탄들에게 먹이를 주러 간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랑우탄을 만나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서는 최광렬 교수와 일행들)

 

아주 깊이 들어 왔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이르자 나무를 잘라 만든 원두막 같은 곳 위에 그들이 지고 온 배낭을 풀었습니다. 원두막 평상에 가득 풀어 놓은 바나나는 노랗게 잘 익은 것들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오랑우탄들은 하나 둘 씩 앞과 뒤편에서 나뭇가지를 타고 혹은 어슬렁어슬렁 걸어서 바나나가 잇는 평상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평상에 있는 바나나를 그 자리에서 까 먹는 경우도 녀석들도 있는가 하면 바나나를 들고 나무위로 높이 올라가는 오랑우탄도 있습니다.

 

이번엔 작은 애기를 안고 오는 오랑우탄 아줌마가 있었는데 이 아줌마가 나타나자 갑자기 다른 오랑우탄들이 평상에서 먹다 말고 달아 납니다. 아마 그 아줌마가 상당히 힘에 센 것 같았습니다. 그 아줌마 오랑우탄은 자기의 아기를 옆에 앉혀 놓고 바나나를 먹어 치우고 있습니다. 다른 놈들은 눈치를 보며 옆으로 다가가 바나나를 집어 들고 다시 줄행랑을 치기도 합니다.

(산속 깊은 곳에 마련된 오랑우탄 식사대)

 

인도네시아 정부가 국립공원이라고 지정을 했어도 주변의 산림이 파괴되고 아주 근접한 거리까지 팜모일 농장이 개간되어 이들이 먹고 살기에 힘든 환경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상당한 수의 오랑우탄이 죽거나 번식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매년 그 수가 줄어들고 있어서 문제라고 국제사회에 보고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들의 말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 막막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인간들이 먹고 살 팜오일 농장을 개발하지 않을 수도 없고 갈수록 원시림은 없어지는데 이들이 자체적으로 살아갈 농경사회를 이루는 것도 아니니 이들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았습니다.

 

필자가 청년일 때 이곳에서 처음 리키(Leaky)라는 캐나다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 당시 그녀는 어느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다가 이곳엘 남편과 함께 방문했는데 오랑우탄의 심리를 깊이 연구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녀는 이곳에 남아 오랑우탄을 돌보며 타자를 가르치는 등의 노력을 경주했고 남편은 그대로 캐나다로 돌아가 이혼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그녀를 돕던 현지인 청년과 재혼하여 오늘까지 살고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손주가 태어나 벌써 깨 크다고 전합니다.

(원숭이 떼가 우리가 쉬고 있던 정자에 나타나 재롱을 부리고 있다)

 

80년 초 당시 필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국제적 자금 지원도 잘 진행됐는지 비교적 물자가 풍부했는데 이번에 보니 부족한 면이 많이 눈에 보였습니다. 마침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리키 여사가 본국엘 출장가서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하여간 필자는 자세히 방명록에 적어 놓고 연락처를 명기하기도 했습니다. 좀더 풍족한 물자가 지원되어 리키 여사가 못다한 연구에 크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뒤편에서 오랑우탄이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과 필자)

 

80년 초의 리키 여사는 몸집이 비교적 큰 노랑머리 새댁이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오랑우탄을 어찌나 사랑했는지 업고 다니기도 하면서 젖을 먹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숫놈들은 그 녀의 등뒤에 업혀 다니면서 커다란 젓무덤을 만지기도 했는데 그녀는 별로 상관치 않고 지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랑우탄 숫놈들도 여자들을 좋아 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방문에서는 그런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어 섭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