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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우탄 수놈들도 여자들을 좋아해(3)

박영복(지호) 2006. 5. 17. 18:05

우리는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하산할 준비를 했습니다. 다시 내미는 방문 기록부를 채워주고 관리사무소 지역을 벗어나 강상에 띄워 둔 배 선착장으로 내려 갔습니다. 내려가는 길 옆에 자생하는 특이 식물을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선착장 근처에서부터 커다란 몸집의 다른 오랑우탄이 우리가 내려가는 길 방향으로 서서히 걸어 올라오고 있는 것입니다. 거의 선착장에 가까이 도착했던 우리는 뒤로 후퇴할 경우 다시 한참을 걸어 관리사무소까지 가야 할 판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필자를 비롯하여 최 교수, 그리고 최 교수의 동생인 나의 처, 또 코린도 직원의 부인으로 모두 4명이었습니다. 다리 난간을 벗어나면 물이 찬 늪지고 앞에선 오랑우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른쪽 나무로 피했지만 식품가방을 빼앗아 내용물을 점검하고 있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 우리는 늪지대 옆을 살피던 중 작은 관목이 너댓 그루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을 발견하고 앞쪽의 좀 비좁은 곳은 최 교수와 내가 피신하기로 했고 다른 뒤쪽의 나무 그루터기엔 여자분 둘이 들어가 길을 피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각기 행동에 옮기고 오랑우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긴장되는 순간이 다가오자 우리는 모두 숨을 죽이고 오랑우탄의 행동만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멀리 강가에서도 스피드 보트 운전수가 우리와 오랑우탄을 응시하고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는 수 밖에 별다른 대책이 없었습니다.

(보온병을 일단 오른발에 세워놓고 떡을 찾아 먹고 있다)

 

드디어 오랑우탄은 우리 남자들이 피한 곳을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우린 안심하고 늪에서 나와 다시 다리에 서 여자분들이 들어간 곳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오랑우탄은 아무 표정없이 걸어가더니만 옆으로 피한 여자분들 앞에 우뚝 서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팔을 길게 빼고 그 크고 시커먼 손으로 제 처가 어깨에 메고 있던 보온 가방을 덮치는 것이었습니다. 필자는 순간 매우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제 처는 그 순간에도 보온병만 꺼내고 가방은 그냥 줄까 보다고 말하면서 보온병을 가방에서 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랑우탄의 손이 워낙 큰데다 힘차게 잡았기 때문에 보온병이 빠져 나오지 않았습니다.

(숫가락은 그냥 버려두고 보온병은 조심스럽게 세워둔 다음 떡을 먹고 있다)

 

결국 필자는 다급해서 그 가방 전체를 벗어 줘요라고 말했고 제 처는 가방을 어깨에서 벗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제 처는 오랑우탄이 어깨에 멘 가방을 잡아 당길 때의 얼굴 표정이 너무 진지하고 무표정하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 놈이 대낮에 강도 짓을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거나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했습니다. 일단 가방을 집어 든 오랑우탄은 즉시 물러나 몇 발짝 앞으로 가더니 다리 가운데 앉아 가방에 달린 지퍼를 옆으로 돌려 엽니다. 그리고 순서대로 보온병을 꺼내 오른발에 세워 잡고 가방 안에 든 물건을 차례로 꺼내고 있습니다.

(보온병 뚜껑을 열고 물을 마셔 보지만 물이 나오지 않는다)

 

마침 우리가 먹다 남긴 떡 한 덩어리가 비닐 랩에 싸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먼저 수저 묶음을 집어 들더니 먹을 것이 아니어서인지 옆에 가지런히 놓고 다시 안을 뒤져 떡을 꺼냈습니다. 랩으로 잘 싸져 있었지만 한 겹 한 겹 잘도 벗겨 내고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몇 입을 머더니만 이젠 물이 마시고 싶은지 보온병을 들어 보더니 왼손으로 뚜껑을 둘려 엽니다. 뚜껑을 열긴 열었지만 그냥 물이 나올 리 없습니다. 물을 먹으려면 그 안에 있는 버튼을 눌러야 물이 나오기 때문에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녀석은 다시 그 안에 있는 나사를 돌리기 시작하여 결국 뚜껑을 모두 연 것입니다.

 

하지만 다 마신 보온병엔 물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 는 중간부분에 달린 뚜껑에서 약간의 물이 나오는 것을 알았고 급기야 그 뚜껑에 달린 패킹씰(Packing Seal)을 이빨로 물어 뜯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물이 나오지 않자 그는 실망했는지 다시 가방 안을 살피고 이리저리 뒤집어 봅니다. 일단 여자분들을 배에 태운 다음 필자와 최 고수, 그리고 스피드 운전수까지 1미터 가량의 나무 막대를 다리에 두드리며 그 녀석에게로 다가 갔습니다. 우리의 기세가 당당하고 다리를 두드리는 소리에 놀랬는지 녀석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늪지 안 숲으로 사라졌습니다.

(다시 안쪽의 뚜껑의 나사를 풀고 있다)

 

우리는 버려진 가방을 다시 챙겨 들고 있었는데 옆을 보니 또 다른 오랑우탄이 무슨 큰 일이 난 것으로 알고 하나 둘씩 몰려 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랴부랴 보온병 뚜껑과 수저 등을 챙겨 들고 배에 올랐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벌인 오랑우탄과의 실랑이는 너무 실감나고 두려운 경험으로 남았습니다. 저녁 노을 보며 샛강을 빠져 나오니 강가에 초라하게 지어진 집들에서 저녁밥을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오랑우탄의 생활모습과 칼리만탄의 국립공원 현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린두알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