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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티 실크로드

박영복(지호) 2006. 1. 23. 19:22
카스를 떠나다
[중국] 자티 실크로드
8.23 흠. 더위만 빼면 한국 가을 날씨 같다고 할까!

흠. 어제 무슨 일 있었나? 헉. 많이 삐친 모양이다. 계속 잘꺼라며 얼른 가라 연신 손사래다. '안녕!' 짧은 인사.

전화(0.4위안씩 두번)로 두 제자에게 점심같이 먹자고 전화했는데 로비에 가니 아직도 안 와있다. 사진정리하고 인터넷 좀 하고 있는데, 한국말이 들린다. 어제 민망한 잠옷, 뭐 노출이 심했다가 아니라 소녀 취향의 핑크색 탓이었을 수도, 차림으로 빨래하던 두 아가씨가 여행사 직원과 말을 하고 있다.

카스 남동쪽에 있는 예청으로 가서 알리를 경유해서 티벳 라사로 간단다. 흠! 배낭객들 사이에서 흔히 '서선(西線)'으로 불리는 티벳 가는 길 중 가장 힘들고, 성공하기 어려운 - 중국정부의 단속 때문에 - 코스인데 대견하다. (참고로 나는 내 나이보다 어린 아가씨는 연령불문하고 아가씨로 호칭한다)

키르키스탄, 카자흐스탄, 파키스탄을 거쳐 히치하이킹해서 넘어왔다고 해서 더 놀랐다. '카스'는 하루 밤만 묵고 가는 강행군이다.

내 원래 계획도, 카리쿨 호수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로인 카리쿨람 하이웨이를 보는 것이었는데 제자들과 노닥거리다.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다시 기회가 있겠지!

'투르손나이'가 왔다. '싸미'는 오늘 교사실습이 있다는 전화를, 내 전화 받은 후에, 받아서 못오게 됐다고.

어제 점심 맛있게 먹은 곳으로 가려니, '비둘기탕' 잘하는 데가 있다며 가잔다. 흠. 그럼 안 갈수 없지. 새로 합류한 두 아가씨랑 같이 이동. 인테리어가 제법이다. 자기 동창이 일하는데 동창 삼촌이 이 가게 사장이라고. 북경시간으로 거의 12시에 되어 왔는데 신강시간으로 10시 정도라 준비하느라 어수선하다. 한국에서는 보기도 귀한 무화과 한 접시와 과일 모듬 한 접시가 서비스로. 신강 과일맛을 아는지 한국아가씨 둘은 모든 것들을 무서운 속도로 처리한다. 흠. 이 지역 과일은 정말 알라신의 축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위와 함께 단맛도 주셨으니. 신강의 과일은 현기증 날 정도로 달다.

▲ 신강 과일들은 하나같이 달지만, 그 중에서도 카스의 무화과는 정말 일품. 차게 냉장시켜서 더욱.. ^^
비둘기 탕이 준비가 안됐다고 해서 비둘기 구이 둘, 나인면, 비빔면 두 그릇 등등 음식 맛은 먹성 좋은 한국아가씨 둘의 평가인 '짜다!'로 대신한다. 역시 인테리어는 음식맛과 상관없다.

109위안이나 나왔다. 앗! 야들이. 어제 일도 있어서 기분이 무척 안좋아질려고 한다. '아는 사람이 무섭다'라는 한국말도 있지 않던가. '투르손나이'가 왔다갔다 해결 79위안으로. 제자것까지 40위안 냈다. 기분 좋게 낼 상황이었는데 조금 틀어졌다. '투르손나이'가 여러 가지로 민망한 모양이다. 먹는 것에 유난떠는 선생님이 맛없는 것 먹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걸 잘 알기에. 거기에 신강 도처에서 보이는 계산미숙, 좋게 말하면, 까지 겹쳐지니 영 아니다.

▲ 중국에서 보기 드믄 개방형 주방

▲ 고급스러운 식당내부

▲ 분위기는 좋은데 맛이 좀.. ^^;
배낭메고 일행과 같이 다시 바자르로. 식은 땀이 난다. 이 더위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니면 땀이 나는 건 당연하지만 건강한 땀, 정상적인 땀이 아니라 식은 땀이다. 가벼운 현기증도 난다. 이런 이런 (자티주 : 일사병에 관한 내용은 http://www.jaimhyun.com/2_5_10eung2.htm 를 참조하시라.)

어제 마신 맥주가 열손가락을 채운 탓도 있으리라. 에고 얼른 쉬어야 하는데..

두 아가씨를 얼른 바자르 구경시켜주고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제자와 함께 버스역으로(택시, 5위안, 카스시내는 전부 5위안)

표가 없단다. 이런이런 어제그제 계속 표를 살려고 했지만, 두 여제자들이 언제든 살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기에 믿고 있었는데, '투르손나이'가 민망함에 몸둘 바를 모른다. 괜찮아! 선생님은 이런 경험무지 많아하고 제자를 달랬다. 제자가 웃돈 주고 암표사라고 권한다. 이 사람아! 나는 그렇게 여행했어도 암표산 적은 없네! 몸이 피곤하니 유혹에 흔들린 것도 사실이다.

기차역으로(택시, 10위안) 주차장진입(2위안)

전광판에는 입석표가 있다고 나와있는데 창구직원은 내일 것까지 없다고 한다. 쉽게 해결할까? 아니면 복잡하게 해결하까? 제자 때문에 쉽게 해결하기로 했다. 다른 방법을 찾기로..

다시 짐들고 나오는데 웬 위구르 총각이 내 제자에게 아는 척한다. 옷! 이웃집 오빠인데 역에서 일한단다. 오홋! 쉽게 해결되려나? 잠시 후에 돌아오더니 N열차 좌석을, 침대칸도 아니고, 300위안에 구해주겠다고 한다. 에라! 이 날강도 같은. 그 돈이면 좀 더 보태서 비행기 타고 가겠다. 딱딱한 좌석을 300위안이나. 100위안이나 더 붙이다니. (요 카스발 우루무치행 딱딱한 좌석은 190위안정도, 부드러운 좌석은 300위안 정도합니다.)

의도와 다르게 계속 민망한 상황만 만나는 내 제자. 요즘 '가이드 실습'중이라고 한다. 잉! 그랬냐! 진즉 말할 것이지. 기념품 가게고 식당이고 실습장소 비슷한 곳이었는데 이 경험부족 꼬마아가씨가 '친하다'라는 일종의 중국관용어를 많이 사용하는 바람에 성질급한, 좀뺑이 선생이 오해를 계속 한거였다. 중국사람들은 한 번만 만나도 '펑요우(朋友, 우리말 친구로 번역되지만 한국의 친구보다는 훨씬 넓은 의미로 사용됨,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한번은 봤다. 정도가 적당할지도, 우리말 친구에 적당한 말은 '하오펑요우(好朋友)'다)'라고 하지 않던가. 어제 오해하는 바람에 아까운 맥주만 축났자나. 몸까지.

하여간 다시 나와서 버스타고(1.5위안) 다시 국제버스터미널로

▲ 카스발(發) 국제버스 요금, 파키스탄행은 매주 월요일 출발, 일주일에 세번 떠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표는 당일(출발일) 오전 판매

▲ 카스발 국내버스, 거리와 요금을 참고하시길.

▲ 기타 지역 .. 출발일을 확인하시길.
갈수록 몸상태가 영 아니다. 손님수요가 많아서 버스가 추가된단다. 제자가 잽싸게 새치기 1시간 정도 기다리다 정통파 무슬림 처녀답게 남자들 틈에 있는 것이 너무 힘들다기에 내가 대신해서 줄을 섰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 화는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하지 않던가! 업친데 덥친 격이다. 식은 땀과 가벼운 오한도 온다.

파키스탄에 장사하러 다닌다는 절강성 출신의 한(漢)족, 산동 이공대학에서 수학 전공한다는 위구르 대학생, 기타 줄 서 있다가 심심한데 잘 걸렸다는 얼굴들의 수많은 위구르인들과 대화. 'GB'라는 생전 처음 보는 휴대폰이 거듭 '한국제품'이라고 우기길래 좀 애매한 표정을 지었더니, 휴대폰 건전지를 떼어내고 보여준다. 휴대폰 메모리에 'Made in Korea'라고 써있다. 흠! 그래 한국꺼라고 할 수 있지! 맞어! 한국 휴대폰이야 라고 하니 무척 좋아한다.

옆의 위구르 총각이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제 핸드폰을 내민다. 'SAMSUNG'이라고 써있다. 우리나라에 핸드폰 박물관이 있다면 전시되었을지도 모를 낡은 흑백핸드폰이다. 한국사람 앞에서 핸드폰 자랑을 하다니. 하여간 중국에서 핸드폰은 아직까지도 어느 정도 '부의 상징'이다. 핸드폰과 얘기로 소일. 몸도 안 좋은데 '외교관' 노릇까지 하려니 죽을 맛이다. 식은 땀 흘리는 내 모습을 그제야 봤는지 모두 나보고 줄밖으로 나가라고 한다. 나는 기다릴 필요가 없으니 밖에서 기다리라고. 흑. 고마워 위구르 형제들! 내 표는 두 번째 서있던 상해교통대인가로 1년간 연수간다는 위구르 수학 선생님이 사주기로.

▲ 우루무치에서 구두가게를 하신다고, 삼성핸드폰 주인
개표가 되자마자 창구 앞은 전쟁터로 변한다. 새치기하는 수많은 인파와 새치기를 막아야 하는 줄선 사람들과의..

내 제자가 또 민망한지 자기 민족을 열심히 변호한다. '괜찮아! 한국도 옛날에 저랬어! 네 민족도 시간이 필요한 것 뿐이야'라고 위로해줬다.

침대 버스 위 칸(185.4위안)으로, 아래 칸이 편하고 좋은데 10위안정도 더 비싸다. 수학선생님이 아끼려고 위 칸으로 산 듯.

표를 받아서 대합실에서 또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 국제버스 타는 시간 좀 알아보려니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언제쯤 서비스정신이 좀 나아지려라! 역시 시간이 해결해줄듯 하다.

아쉬워하는 제자를 뒤로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에어컨도 없는 구식 침대버스다. 내 자리는 그래도 발은 펼 수 있는데 가운데 좌석은 발을 모아야 한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잠깐 스쳐간다.

▲ 가급적이면 윗칸보다는 아랫칸을 구하시길.. 여러모로 편합니다.

▲ 남의 불행의 나의 행복(?) ^^; 다행였습니다. 정말..
내일 비슷한 시간에 투루판에 도착한다. 도로만 정비되면 12시간 정도 거리지만. 한 시간쯤 가다 검문, 한 30분 소요. 길 옆 상점에서 물 한병(2위안).

저녁 먹는데 만난 같은 버스안의 위구르 노인은 중국인들이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고 부르는 '6.25'에 참전했다고. 이 노병(老兵)의 표정에 자부심이 그득하다. '6.25'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중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미제국주의의 야욕에서 형제사회주의국가를 구원해준거고.

좌파진영에서는 '김일성의 통일전쟁'일수도 있고, 우익진영에서는 '김일성의 남침전쟁'일수도 있고, 친일수구진영에서는 우익진영의 시각을 포장한 '생존의 전쟁'였을테고, 중국과 미국의 입장은 반대편이지만 비슷하다. 여러가지로.

나 같은 민족보수주의자 입장에서는 강대국간 힘의 논리에 휘둘린, 우리 민족과 현대사를 만신창이로 만든 민족내부전쟁일 것이고.

동북사성중 하나가 안 된 것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친일의 전통을 이어받은 듯한 친미국가가 된 것은 다행일까? 좌파의 해석은 당시 국제역학관계에 무지하다는, 또는 무시한다는, 점에서 순진한 해석이고, 미국국익에 충실한 전쟁을 '빅 브라더(大兄)'처럼 받드는 일부 우익진영과 친일수구세력의 해석은 반대편에 서있을 뿐 결국 같은 색깔의 단순한 해석이라고 할까?

내 착잡하고 복잡한 심정과 상관없이 위구르노인의 얼굴에는 굵은 주름살같은 자부심이 더해간다.

중국에서 한반도의 현대사를 떠올리는 건 늘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