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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거리 술탄아흐멧

박영복(지호) 2006. 1. 23. 19:18
오스만제국의 블루 모스크, 토카프 궁전
[터키] 감동의 거리 술탄아흐멧
상쾌한 아침이다. 8월 터키의 햇살은 무척 따갑지만 건조한 탓에 건물 안이나 나무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하다. 유유자적 테라스에 올라가 바깥에 자리를 잡고 짹짹거리는 참새에게 빵을 던져주고 바다를 보면서 아침의 여유를 즐긴다. 시간만 많으면 종일 앉아서 책이나 보고 차나 한 잔 하며 지내고 싶은 테라스이다.

오늘도 어제의 감동을 이어 술탄아흐멧을 돌아보기로 했다. 블루 모스크를 가기 위해 덥지만 긴 바지를 꺼내 입었다. 아무리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더라도 많은 이슬람 인들이 기도를 위해 찾는 모스크가 아니던가!

▲ 술탄아흐멧공원 분수 뒤의 블루 모스크
블루 모스크. 정식 명칭은 술탄 아흐메드 자미

아야 소피아 바로 앞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이 이슬람 사원은 많은 관광객들로 정신이 없다. 6개의 미나레트를 모두 담기 위해 모두들 자신의 카메라를 들고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분주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맨발에 닿는 카펫의 촉감이 간지럽다. 어두컴컴한 내부를 밝히기 위해 알알이 박힌 전구들이 천장에 주렁주렁 달려있다. 수많은 타일들과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에서 내는 파란 빛. 내부에 들어와서야 이 회색 빛 모스크가 왜 블루 모스크로 불리는지 알겠다. 부드러운 카펫 한구석에 앉아 주위를 둘러본다. 많은 관광객들이 일행들과 함께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 블루 모스크 내부. 스테인드 글라스와 타일이 푸른빛을 만든다.
관광객에 밀려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기도 드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은 주객이 전도된 이 시끄러운 모스크에서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까? 그들이 기도하는 신이 정말 내가 믿는 신과 다를까? 문득 같은 신을 인간들이 제멋대로 다르게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 목적지는 토카프 궁전이다.

로마를 멸망시키고 이 곳을 차지한 오스만은 새로운 궁전이 필요했다. 골든 호른(Golden Horn)과 마르마라 해(Sea of Marmara) 그리고 보스포러스 해협(Bosphorus) 이 모두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이 어마어마한 오스만 제국의 궁전에 들어가려면 첫 번째 문인 밥 이 후미윤을 통과해야 한다.

오스만 시대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관광 버스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갈 만큼 작은 이 문은 수많은 버스들로 인해 걸어서 들어가는 사람은 차들이 모두 지나가길 기다렸다 조심스럽게 들어가야 한다. 매표소를 지나면 두 번째 문에 들어가게 되면 토카프 궁전의 위용을 느낄 수 있다.

▲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토카프 궁전 둘째 문
'다원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깊은 정적이 사방을 감쌌다.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내 이마와 목에 불거져 나온 혈관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궁에 출입하는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에니시테가 수없이 설명하고 묘사했던 장소가 지금 마치 천국처럼,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으로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천국에 들어온 사람이 느끼는 행복감보다는 두려움으로 인한 전율과 경건한 존경심이 일었다. 그리고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인 술탄의 미천한 종이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 - <내이름은 빨강> 중에서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이름은 빨강>의 주인공인 카라는 토카프 궁전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 전율이 나에게도 파고 드는 것 같다. 또한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이름은 빨강>에서 다룬 세밀화를 볼 수 있는 곳도 바로 이곳 토카프 궁전이다.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자기 전시관과 의복 전시관들에 걸려있는 세밀화를 자세히 보았다. 그림 속에서 그들이 함께 모여 중앙에 있는 음식을 각자가 떠 먹는 모습, 중국인과 자기를 거래하는 듯한 모습(토카프 궁전에는 중국 도자기를 1만358점이나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궁전의 일상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이스탄불 토카프 궁전에서 이 전통적인 오스만 제국의 그림을 보니 소설 속의 인물들이 이곳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 세밀화-오스만 제국의 식사 풍경을 만날수 있다.

▲ 세밀화-중국인과 자기.

▲ 세밀화-오스만 궁전의 생활사를 엿볼 수 있다.
제3 정원에 위치하고 있는 환관의 숙사부터는 건물의 내부 장식은 너무나 아름답다. 형형색색의 타일들이 온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건물의 외부와 내부에 아름다운 타일들은 보는 이로 감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제4 정원으로 들어가면 이스탄불 유럽 신시가지, 아시아 지구, 바다 그리고 그 바다를 잇는 갈라타 다리와 보스포러스 다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 타일 장식이 다양하고 아름답다.

▲ 토카프 궁전 제 4궁전 끝에서 만난 바다
토카프 궁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는 하렘이다. 가이드북에 인원 제한이 있는 하렘을 먼저 보라고 충고를 해주었지만 무시하고 발이 끌리는 대로 돌아다니다 하렘이 가니 오후 세 시도 안 된 시간임에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오스만 제국에서 하렘의 비중이 아주 큰 데 그 큰 덩어리를 못 보게 된 것이다.

'이번에만 기회는 아니잖아! 이곳에 다시는 안 올 거야? 언제든 다시 와서 볼 수 있어.'

아쉬움을 훌훌 털고 토카프 궁전 옆 귤하네 공원으로 들어섰다. 빽빽하게 하늘로 쭉쭉 뻗은 나무들이 8월의 뜨거운 햇살을 가려준다. 산책 나온 이스탄불의 연인들이 가득하다. 트램길을 따라 히포도롬으로 걸어간다. 아주 오래 전에는 영화에서 본 글래디에이터들이 이 곳에서 경주를 했겠지. 많은 사람들이 열광을 하며 원초적인 쾌락을 즐겼을 테고.

▲ 히포도롬의 오벨리스크
테오도시우스의 오벨리스크, 뱀의 원기둥, 콘스탄티누스의 오벨리스크를 바라보며 더위를 피해 그늘에 앉아있는데 한 청년이 카메라를 들고 나에게 온다. 쑥스러운 듯한 모습으로 같이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는다. 함께 사진을 찍고 나니 한 꼬마가 또 사진을 찍자고 나에게 다가온다.

초등학교 수학여행에서 만난 신기한 외국인과 함께 사진을 찍어보려고 애썼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잠시 내가 다른 세상 속의 관심이 대상이 된 것이 쑥스럽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그들과 내가 너무 멀리 떨어져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들에게 난 그저 신기한 이방인이었다.
난 그들에게 친구이고 싶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