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 꾐에 속아 단돈 3000위안에 中두메산골로 넘겨져
탈북 후 중국 허베이 성 산골마을에서 살고 있는 여성 J 씨(31)가 자신의 집 마당에서 옥수수를 다듬고 있다. J 씨는 중국인 남편에게 팔려 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허베이=구자룡 특파원 |
“중국 가면 돈 많이 벌 수 있다”
첩첩산중 도착했을땐 이미 늦어
4∼5명씩 ‘집단면접’ 보기도
북한 함경북도 무산의 조그만 옷가게에서 ‘의상 디자이너’를 하던 J 씨(31)는 몇 차례 가게에 들른 중년 여성과 얼굴을 익히게 됐다. 장사가 안돼 때론 월급도 받지 못하는 것을 아는 듯 그 중년 여성이 어느 날 “중국 농촌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중국도 요즘 잘살게 됐다”고 말했다.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J 씨는 다른 나라에 대한 막연한 환상도 없지 않았다. 그렇게 훌쩍 따라 나선 것이 6년 전. 지금은 산 너머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중국의 산골 오지 농촌에서 옥수수 재배 등 농사일과 양을 키우며 살고 있다. 고향 소식도 알 도리가 없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속아서 팔려 왔구나 하는 것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처음엔 남편의 문화(교양 학력 등) 수준이 낮은 것이 불만이었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살고 있어요.”
○허망하게 속은 여성들
J 씨를 만난 곳은 허베이(河北) 성 어느 도시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의 깊은 산골 마을. 도시에서 거리로는 100km가량이었다. 하지만 대로에서 산길로 접어들어 50km를 굽이굽이 달렸다. 현(縣)에서도 오지여서 물어물어 찾아가야 했다. 산 계곡을 따라 형성된 50여 가구의 이 마을은 가난의 때를 벗지 못한 곳이었다. 산비탈 다랑논에 옥수수를 재배하고 소규모 사과 과수원을 하거나 양을 키워 팔기도 한다.
북한 여성과 살고 있는 이 마을의 한 남성은 “이 마을 노총각들은 북한 여성을 데리고 와 결혼하는 것이 큰 목표”라고 말했다. 웬만한 중국 여성들은 시골에서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북한 여성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농촌 수입으로는 적지 않은 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해 동안 저축을 하고, 빚을 내기도 한다”며 “나도 아내를 들일 때 약간의 빚을 졌다”고 말했다.
한 노인은 “지난해 초부터 이곳으로 오는 북한 여성이 없어 노총각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집이 쉽지 않거나 단속이 심한지 북한에서 넘겨주는 여성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 마을에는 현재 10여 명의 북한 여성이 팔려 와 살고 있다. 한 주민은 “남편들이 대부분 잘 대해줘서 그런지 (북한 여성들이) 도망치지 않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여성을 모으는 남녀 모집책들은 북한의 작은 도시와 농촌 여성들에게 “북한에서보다 더 잘살 수 있다”는 말로 유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중국에는 산이 많아 도토리를 따도 여기보다 잘살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 팔려온 여성도 있다고 이 마을 주민 B 씨(36·여)는 귀띔했다. 그만큼 북한에서의 삶이 힘들었다는 것. B 씨는 “중국 농촌이 잘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북한에서처럼 굶지는 않아서 낫다”고 하는 여성도 여럿 있다고 전했다.
허베이 성 번호판을 단 차를 타고 들어가긴 했지만 오지에 외부인이 들어오자 금세 마을 노인 10여 명이 모여 들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마을 주민 C 씨도 주위 눈치를 살피며 가급적 빨리 끝내고 돌아가 주기를 바랐다. C 씨는 “이 마을에서도 몇 차례 북한 여성이 잡혀간 적이 있어 항상 외부인을 경계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사실 마을 사람이나 인근 파출소가 북한 여성이 이곳에 팔려와 살고 있는 것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할 경우에만 ‘법대로’ 북한으로 송환한다고 한 마을 주민은 전했다.
○“면접 볼 때 팔려온 것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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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며느리를 고르기 위해 ‘면접’을 보기도 했다는 중국 농촌의 한 노인은 “주문할 때 대략적인 금액을 제시하지만 나이와 건강상태, 교육수준, 특히 남편이나 시부모의 첫인상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등 흥정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자신들이 ‘농촌 총각의 신붓감’으로 팔려나가는 것을 이 면접을 볼 때 아는 경우가 많다”고 한 탈북 여성이 전했다.
면접은 마을에서 떨어진 산속 공터에서 이뤄지기도 하고 농촌 총각의 집으로 밤늦게 데려와 진행되기도 한다. 거절하면 그대로 데리고 되돌아간다. 북한 여성들의 가격과 관련해 붙잡힌 탈북 여성들의 송환을 맡았던 한 관리는 “탈북 여성들의 말에 따르면 수년 전에는 3000위안(약 60만 원)+30달러가 가장 많았지만 지금은 많이 올랐다고 한다”고 말했다. 30달러는 북한에서 중국에서 넘겨줄 때의 ‘원가’이고 나머지는 중간 연락책들이 나눠가진다는 것.
이 마을의 주민은 “한 집에서는 10대 초반의 아이를 사와 20세가 넘을 때까지 돌본 후 그 집안의 총각과 같이 살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같은 동네 탈북여성끼리도 제대로 못 만나
중국 농촌 남성 중 상당수는 적지 않은 돈을 들인 북한 신부를 귀한 몸으로 잘 대해 속아서 팔려온 아픔을 달래주며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살고 있다. 일부는 이웃 주민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대도시에 나가서 살 정도로 배려하기도 한다.
이 마을 주민은 “다른 지역의 말을 들어보면 북한 여성이 갈 데 없는 처지인 것을 악용해 학대하거나 파출소에 신고한다고 협박하는 사례도 있고 실제 북한으로 다시 송환되는 일도 있다”고 전했다.
북한 여성들이 팔려가는 마을에는 한두 명인 경우도 있지만 많게는 10∼20명이 되는 곳도 있다. 이들 여성은 서로 만나 고향 얘기도 하고 이국땅에서의 고독과 설움을 달랜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일부 지역에서는 도망갈 것을 우려하는 남편의 의심 때문에 탈북 여성들끼리 만나지 못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중국 남성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말로 대화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만나지 못하게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북한을 떠나 온 여성 중 고향 소식을 전해 듣는 여성은 거의 없었다.
허베이=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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