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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문명의 흔적… 그 적막과 허전함

박영복(지호) 2006. 8. 31. 10:42
사라진 문명의 흔적… 그 적막과 허전함
 ◇밀림속 푸른 잔디 밭 위에 펼쳐진 ‘신들의 정원’ 앙코르와트.
캄보디아 소년이 모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끝없는 밀림 한가운데로 뻗은 길을 달린다. 사방 어느 곳에서도 인간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차선이 그려지지 않은 아스팔트 도로에서 이곳 역시 인간이 지배하는 땅임을 알 수 있다. 얼마나 달렸을까,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밀림이 사라지고 여의도광장만 한 푸른 잔디밭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위엔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거대한 고대 사원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한없이 엄숙하고 기이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은 한낮 땡볕의 뜨거움도 순식간에 식혀 버린다. 신을 모시기 위한 장소로 지어진 ‘신들의 정원’ 앙코르와트다.


#크메르 문명의 유산 수백년 밀림에 묻혀있다 햇빛

앙코르와트를 만든 건 크메르족의 앙코르 왕조다. 9세기부터 15세기 중엽까지 동남아를 지배한 앙코르 왕조는 한때 수도 앙코르의 인구가 100만명을 넘었고 20만마리의 코끼리를 전투용으로 기를 정도로 강력한 제국이었다. 특히 크메르 왕조의 전성기를 구가한 수르야바르만 2세는 스스로를 신격화하면서 이를 위한 사원으로서 1113년부터 30년 동안 수만명을 동원해 앙코르와트를 지었다.

그러나 앙코르 왕조는 1431년 샴족에 수도를 빼앗기고 남쪽으로 쫓겨내려간 후 순식간에 역사에서 사라졌다.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앙코르는 이후 400년 동안 밀림 속에 묻혀 있었으나 1800년대 프랑스인들에 의해 발견돼 세상에 알려진다.


#3개의 회랑은 축생계, 인간계, 신의 세계를 상징

사실 앙코르와트는 크메르 왕조의 수도 앙코르에 남아 있는 수많은 유적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다만 규모가 워낙 거대한 데다 예술적 완성도가 높고 보존상태도 양호해 앙코르 유적을 대표하다시피 한다.

앙코르와트는 고대 크메르인들이 생각한 우주의 축소판. 앙코르와트의 맨 바깥쪽을 둘러싼 너비 200m의 수로는 바다를 상징한다. 서쪽으로 난 ‘왕의 길’을 따라 수로를 건너면 만나게 되는 제1회랑은 앙코르와트를 이루는 3개의 정사각형 회랑 가운데 가장 큰 회랑인데 지구를 둘러싼 산맥을 의미한다. 한 변의 길이가 약 200m인 회랑 벽면에는 크메르인이 믿었던 신과 우주를 그린 장대한 돌조각이 새겨져 있다.

다시 왕의 길을 한참 걸어 제2회랑에 들어서면 더욱 정교한 문양으로 장식된 제3회랑과 웅장한 5개의 석탑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1회랑은 축생계, 제2회랑은 인간계, 제3회랑은 신의 세계를 의미한다. 그래서 제3회랑으로 가는 계단은 더욱 높고 가팔라 오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경외심이 일게 만든다. 제3회랑 정중앙에 세워진 탑은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을 상징하며 주변의 5개 탑은 수미산 다섯 봉우리를 나타낸다.

 

◇바이욘사원 압살라무희조각, 앙코르와트3회랑서 쩔쩔매는 사람들, 앙코르와트의 승려들<사진왼쪽부터>

 

#영화 ‘툼레이더’의 무대 타프롬과 바이욘 사원도 볼만

앙코르 유적을 감상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앙코르와트보다 타프롬을 더 좋아한다. 영화 ‘툼레이더’의 무대로 유명해진 타프롬은 12세기에 지어진 불교사원으로 전성기엔 3000여명의 승려가 살았을 정도로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

하지만 타프롬의 감상 포인트는 크기가 아니라 사라진 문명의 흔적이 주는 쓸쓸함이다. 수백년 방치되는 동안 건물 틈새를 비집고 뿌리내린 명주솜나무가 거목으로 자라 건물을 붕괴시키고 있다. 발견 당시 폐허 상태 그대로 남겨져 인간문명이 자연 앞에 얼마나 덧없고 무력한지 실감할 수 있다.

앙코르 유적의 또 다른 볼거리는 앙코르 톰. 12세기 말 지어진 앙코르 왕조의 마지막 도읍지로, 성벽 안에는 앙코르 문화의 황금기를 짐작케 하는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이 왕 조각 등 다양한 유적이 모여 있다. 그 중 백미는 자야바르만 7세가 건립한 바이욘 사원. 50개 석탑의 4면마다 새겨진 200여개의 부처 얼굴은 ‘앙코르의 미소’로 불린다.

 

◇앙코르와트 일출

시엥립(캄보디아)=글·사진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여행정보

대학살 ‘킬링필드’를 떠올리게 하는 캄보디아는 생각보다 여행하기 좋은 나라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캄보디아 반군의 위협 때문에 앙코르 외곽지역은 무장경비를 대동해야 안전할 정도였지만 이젠 그런 걱정 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 사람들의 심성은 선량하며 물가도 저렴하다. 괜찮은 숙소가 5∼10달러, 앙코르 유적을 돌아보려고 오토바이와 기사를 하루 전세내는 데 6달러면 족하다.

덕분에 올 겨울 최고 인기 관광지로 떠올라 앙코르와트 직행 전세기까지 등장, 2박4일에 59만원을 받는 관광상품까지 나왔다. 하지만 해외여행이 처음이 아니라면 비행기 티켓만 끊어 출발하는 자유여행을 권하고 싶다.

앙코르와트의 진짜 감상법은 유적지에 찾아드는 적막과 허전함을 즐기고, 걷다 피곤하면 어느 탑 그림자에서 잠시 잠을 청할 수도 있는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교통편
앙코르 유적지가 있는 시엠립은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다. 배낭여행객들은 태국에서 육로로 시엠립까지 여행하기도 한다.

시엠립과 앙코르 유적지 내 이동은 주로 오토바이 뒤에 2인용 트레일러를 부착한 ‘뚝뚝’이나 오토바이를 이용한다. 택시는 없다.

 

▷숙소 및 식사
하룻밤에 200∼300달러인 최고급 호텔에서 4달러짜리 여행자 숙소까지 다양하다. 배낭여행객은 저렴한 여행자 숙소를 이용하는데, 청결하고 TV 에어컨 등 설비가 잘 갖춰져 이용에 아무 불편이 없다.

음식 역시 전 세계 여행객 입맛에 맞춘 다양한 메뉴가 갖춰져 있으며, 저렴하게 식사하면 한끼 3∼4달러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