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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조총 … 지금은 칼로 경제 살려

박영복(지호) 2006. 5. 19. 09:04
과거엔 조총 … 지금은 칼로 경제 살려
[중앙일보 김현기] 12일 오후 일본 오사카(大阪)시 남쪽, 차로 40분 거리에 위치한 사카이(堺)시.

'이케다 단련소(鍛鍊所)'란 간판이 걸린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5평 남짓한 가내 공장이 보인다. '칼' 전통공예사 이케다 요시카즈(池田美和)가 수건을 머리에 두른 채 작업에 여념 없다. 금세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1000도 가까운 열로 쇠를 다루는 칼 대장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케다의 손은 능숙하게 움직였다. 가열한 지철 위에 붕산을 혼합한 분말을 붙이고, 그 위에 또 하나의 철을 겹쳐 망치로 두들겼다.

"흔히 '철은 뜨거울 때 때려라'고 하지만 그건 잘못된 말이에요. 뜨거울 때 두들기면 빨리 만들 수는 있죠. 하지만 진짜 좋은 칼을 만들기 위해선 적절히 냉각하면서 때려줘야 해요. 그게 '사카이 칼'의 노하우죠."

'칼의 도시' 사카이-. 이곳은 전국시대(1573~1590)에 일본 조총의 90%를 생산했다. 임진왜란을 위한 무기 공급기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크게 번영했다. 그러나 전란 등으로 사카이시는 쇠퇴했다. 지난 10여 년간 젊은이들이 대도시로 떠나고 기업들도 해외로 나가면서 지역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0여 년 전 3만5000개에 달하던 중소기업 중 20%인 7000여 개가 사라졌다. 이를 타개하고 지역을 다시 일어서게 한 결정적 계기가 바로 사카이시의 '온리 원(only one)' 전략이다. 뛰어난 전통 금속기술로 승부를 건 것이다. 대표 상품이 바로 '칼'이다. 2001년에는 '사카이시 모노즈쿠리(물건 만들기) 마이스터(전통공예사) 제도'를 신설, 칼 제조 장인들을 마이스터로 지정하고 집중 지원했다. 사카이의 공업고등학교에 '칼 제조' 과목도 생겼다. 그러자 감소 추세이던 칼 제조회사들이 다시 회생했다.

지난해 사카이 지역 101개 칼 업체의 매출은 250억 엔을 넘었다. 회칼만 놓고 보면 전국 횟집의 90%가 사카이산을 사용한다. 33㎝짜리 하나에 비싸게는 26만5000엔(약 225만원)까지 받는다.

이처럼 전통기술을 바탕으로 한 사카이시와 지역 기업의 '온리 원' 전략에 힘입어 사카이시는 화려했던 옛 명성을 되찾은 것이다. 또 사카이시는 이 같은 경제 활성화에 힘입어 지난달 지자체에 재정 권한이 대폭 부여되는 '정령(政令) 지정 도시'가 됐다. 일본에서 15번째다.

사카이=김현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