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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말하는 '중국', 중국이 아니다

박영복(지호) 2009. 9. 15. 06:28

한국인이 말하는 '중국', 중국이 아니다
 
 
얼마전 고등학교 동창이 몇년만에 전화를 걸어 상하이 출장을 오는데, 베이징에 있는 나를 만나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냥 한국에 가면 내가 연락하겠다고 했다. 나는 베이징에 살고 있고 베이징과 상하이 거리는 베이징과 서울의 거리보다 멀다고 하니 실감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2년전 광저우를 다녀온 대학선배가 중국은 음식맛이 좋고 날씨가 덥다며 중국에 있는 나보고 더워서 어떻게 사냐고 물었다. 택시를 타고 바가지 요금을 낸 경험이 있는 또 다른 지인은 중국 택시는 모두 바가지 요금을 먹이는 것처럼 말했다.

중국에서 생활하며 만나는 중국인은 한국인인 나를 만나면 나를 한국, 그 자체로 대한다. 처음 만나는 중국인은 하나같이 나를 한국으로 대하고 나는 무의식 중에 외교사절단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중국에서 사업하다 사기를 당했거나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한국인, 한국에서 유학하거나 일을 하다가 멸시를 받았거나 마찬가지로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중국인은 인터넷에서 '거품'을 물고 악성 댓글을 단다.

대부분의 사람은 전체와 부분, 보편성과 특수성의 균형 잡힌 안목으로 세상을 보고 해석하기보다는 자신이 보고 경험한 일을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후자의 경향이 강하다.

인터넷을 통해 각종 통계수치와 잡다한 지식들은 많이 습득하고 있지만, 그래서 똑똑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많지만 정작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인식에 머물러 있고 그렇게 똑똑하던 사람들이 보기 좋게 실패하고는 중국이라는 나라를 탓하기도 한다.

중국 진출 3년 8개월만에 베이징, 상하이, 톈진 등 주요 도시를 비롯해 중국 56개 도시에 130개의 매장을 오픈하며 급성장한 미샤 중국법인은 대리점 점장을 선정할 때는 반드시 현지인을 고집했다고 한다.

유럽의 프랑스 사람이 네덜란드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만큼 중국의 베이징 사람이 상하이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같은 차이의 정도는 부산 태생의 부산사람이 서울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과 질적으로 다르다.

대륙의 지역적 차이에 대한 현실적 감각은 분단된 반도에서 나서 자란 우리가 쉽게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같은 우리 감각과 마인드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지피지지(知彼知己)하면 백전불태(百戰不殆)한다고 했다. 한 가지 알면 열 가지 아는 체 하는 '겉똑똑이' 근성을 버려야 중국이라는 나라를 바로 인식할 수 있고 중국 사업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중국의 어느 한 도시를 일주일 여행했던 사람이 남한 영토의 44배,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온 중국을 단정짓듯 말한다.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중국을 방문해서 보는 중국은 빙산의 일각이고 우리가 만나는 중국인은 13억 인구의 몇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이 중국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중국인은 비주류이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을 만만하게 보고 결국 중국 시장에서 패배를 하는 것이다. 중국 전체 부의 70% 이상이 13억 인구 5%에 집중돼 있다. 과연 우리가 쉽게 자주 만나는 중국인이 95%의 보편적, 비주류의 중국인일까, 아니면 특수 계층의 중국인일까?

95%의 보편적 사람을 보고 정작 5%의 주류를 만나지 못하니 만만하게 보고 시작하지만 우리가 가진 실력이 5%의 주류사회 사람들보다 이상이 못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다.

'겉똑똑이'들은 나의 말이 참으로 추상같이 들릴 것이다. 그러나 중국을 두루 두루 여행하고 경험한 사람들은 실감나게 느껴질 것이다.

남한의 44배 면적, 56개 민족, 13억 인구의 나라를 '중국'이라는 두 글자에 함축하는 인식법과 접근법은 정치외교 상에서나 유용하다. 비외교적으로 접근을 하는 우리의 시장 진출, 민간 교류에서는 추상화된 '중국'은 무의미하다.

전체와 부분, 보편성과 특수성의 균형 잡히고 섬세한 안목. 이것이 바로 중국에서 생활하고 사업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생명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