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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고 위에 선 중국

박영복(지호) 2009. 3. 12. 08:09

화약고 위에 선 중국

 
금융 위기·성장 부작용으로 ‘몸살’
티베트· 신장 분리주의 불씨 여전


오승렬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학
중국에서 ‘9’는 ‘완벽’, ‘가득함’ 또는 ‘장수’를 뜻하며 황실의 권위를 나타내기도 하는 길한 숫자다. 그러나 달이 차면 이울 듯 중국 현대사에서 유난히 변화가 많았던 것도 9로 끝나는 해이다. 2009년은 중국 건국(1949) 60주년, 티베트 독립운동(1959) 50주년, 중소 국경분쟁(1969) 40주년, 중월전쟁(1979)과 개혁개방 30주년, 천안문사태(1989) 20주년 등의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인지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 의정 최대 잔치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와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의 양회(兩會)를 둘러싼 분위기도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럽다.

과거에 비해 회기도 줄어들었고 심지어는 회의 참석 대표의 식단도 간소화됐다. 군악대 연주만 듣던 관례를 깨고 정협 대표들은 개막식장에서 모두 기립해 중국 국가인 ‘의용군행진곡’을 불러 애국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티베트 독립운동 기념일(3월10일)과 양회 기간이 겹치고 사회불안이 가중되자, 중국정부는 60만명의 보안요원을 투입해 작년 베이징 올림픽에 버금가는 철통 경비를 펼치고 있다.

양회의 핵심 화두는 일자리 창출과 경기부양책이다.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과 2004년부터의 경기 과열 부작용으로 중국 경제도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몰아닥친 경제 한파로 이미 2000만 농민공이 일자리를 잃었고 대졸 실업인구도 700만명이 넘는다. 고향으로 돌아간 농민공들은 도시 개발로 불안해진 토지 사용권과 공무원들의 부패에 다시 한 번 분개한다. 13억 인구의 중국은 이미 경제규모 세계 3위, 무역량 2위, 외환보유액 1위에 올랐지만 앞만 보고 달렸던 경제 지상주의로 사회 양극화는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중국 농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폭력시위의 원인이다. 특히 중산층이 취약한 중국에서는 사회 계층 간 갈등의 조화로운 해결을 모색하기 어렵다.

티베트와 신장 지역의 분리주의 분쟁 불씨도 여전히 살아 있다. 작년의 유혈사태 1주년을 맞아 티베트지역은 외국인은 물론 주민의 출입마저 삼엄하게 통제하는 가운데 간간이 시위와 분신 등의 소식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는 신장 역시 베이징 올림픽 전후의 폭탄테러 발생 이후 언제라도 폭력적 양상이 재연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다. 중국은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로서 사회통제 기제를 유지하고 있으나 고도성장과 시장화, 그리고 사회 분화로 전체 사회를 통합할 보편적 이념과 비전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마오쩌둥은 사회주의에서, 덩샤오핑은 개혁개방, 이후의 지도자들은 강한 국력에서 사회통합의 구심점을 모색했다. 지난 30년간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2009년의 중국은 기로에 서 있다. 금융위기의 여파로 신자유주의적 시장 이념이 퇴색하고 보호주의가 다시 고개를 드는 현 상황에서 보는 중국의 미래는 불안하다.

양회 이후 중국의 향배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 계획의 추진과 사회주의 체제 및 이념의 강화가 그것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 5일 9500억위안의 적자예산을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주의 특성상 정부의 적극적 개입에 의해 8%로 정한 올 경제성장 목표의 달성은 무난할 것이나 관 주도형 경제와 경직된 사회통제 시스템의 복원이 우려된다. 내부의 불안정 요인을 대외적으로 묶어 분출하려는 맹목적 애국주의는 더더욱 위험하다. 건설적 한중관계를 모색하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민감한 문제다. 중국은 세계 인구 5분의 1에 해당하는 중국인의 삶의 방식과 질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중국이 하기에 따라서는 소수 선진국의 발전 모델과는 달리 다수의 개발도상국 주민들에게 빛을 줄 수 있는 제3의 길을 찾을 수도 있다. 눈앞의 경제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양회를 보면서 느끼는 아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