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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수가에서 바라본 발하쉬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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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옮긴 호텔은 가격에 비해서 괜찮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냉장고가 있는 넓직한 침실과 깨끗한 욕실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잠을 설치게 하는 모기도 없었기 때문에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아이굴이 2시까지 오라고 했으니까 시간은 충분하다. 오전에는 호숫가와 바자르에 들러서 구경을 하고 아이굴의 집에 가기로 했다. 어제처럼 빵과 주스로 아침밥을 때우고 호텔을 나섰다. 호텔 문을 열자 차가운 호수의 바람이 불어왔다.
어제는 공장 쪽을 보았으니까 오늘은 그 반대쪽으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그쪽에서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의문이지만, 어제 보았던 공장의 매연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한번 걸어가 보자고 생각했다.
호수를 오른쪽으로 보면서 공장의 반대쪽으로 한참을 걸어가니까 이곳에도 모래사장이 나왔다. 위쪽에는 카페도 있고 색색의 벤치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여름에 사람들이 더위를 식히는 장소인 것 같다. 지금은 9월말. 차가운 호수바람이 불고 있는 이곳은 마치 철 지난 해수욕장 같은 분위기다. 모래사장에는 깨진 병조각들이 있고 카페는 문을 닫았고 주위에는 메마른 나무와 풀들 뿐이다.
주위의 벤치에 앉아서 호수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파란 하늘과 그 아래로 수평선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공장의 매연이나 폐선이 보이지 않는다. 공장 쪽에서 보았던 콘크리트 덩어리와 고철도 없고 낚시꾼도 없다. 멀리 호수 위로는 섬인지 육지인지 모를 땅덩어리가 보인다.
이곳에서 바라본 호수는 넓은 바다를 연상시킨다. 주위에 숲과 산으로 둘러싸인 홉스골이나 바이칼과는 달리 발하쉬의 주위는 건조한 초원지대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자연환경 때문에 이곳에서는 탁 트인 수평선이 보이고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볼 수 있다. 최대 폭이 74km에 달한다는 발하쉬 호수. 이 호수로 흘러드는 강은 여러 개지만 호수에서 나가는 강은 없다고 한다. 황량한 지역에 이렇게 커다란 호수가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일지 모른다.
날씨만 조금 따뜻하다면 이곳에 앉아서 호수를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지금은 호수바람이 차갑다.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손은 차가워지고 있고 코에서는 연신 콧물이 흐른다. 난 자리에서 일어서서 바자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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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하쉬 호수가. 메마른 나무와 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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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하쉬 호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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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자르는 호텔에서 걸어서 5분 거리, 그리고 호수에서는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노란색과 파란색이 조화를 이룬 외양이 돋보이는 이 바자르는 실내와 실외로 나뉘어져 있었다. 실내에서는 고기와 과일과 각종 빵을 팔고 있고, 실외에서는 책과 잡지 그리고 마른 생선과 과자와 사탕류를 많이 취급하고 있다.
아이굴의 집으로 갈 때 뭘 사가지고 갈까 고민하면서 바자르를 한바퀴 둘러보았다. 바자르의 안쪽에는 옷을 파는 구역도 있고 꼬치구이 샤슬릭을 파는 가게도 여럿 보였다. 호수가에 위치한 바자르라서 생선류가 많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말린 생선이 조금 눈에 보일 뿐이고 오히려 고기와 과일을 많이 취급하고 있었다.
크지 않은 도시라서 그런지 바자르 자체도 그렇게 활기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곳은 왠지 우즈베키스탄에서 보았던 그런 재래식 바자르가 아니라 현대식 마트에 가깝게 변해가는 그런 느낌이다. 한바퀴 둘러보고 나서 과일과 과자를 한 상자씩 사서 아스카의 집으로 가기 위해서 택시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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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하쉬 바자르의 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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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카의 아파트는 어제 보았던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아스카와 아이굴은 주방에서 뭔가를 준비 중이고 아이굴의 여동생은 거실에서 아스카 부부의 어린 딸을 돌보고 있었다.
식탁에는 아이굴이 어제 말했던 '베스빠르막'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쪽으로 차이와 몇 가지 잼 그리고 전통 빵이 놓여있었다. 베스빠르막은 카자흐스탄의 전통 요리인데 소고기와 감자, 양파를 삶아서 만든 요리다. 소고기 대신에 양고기 또는 말고기를 이용할 수도 있다고 한다.
아이굴의 말에 의하면 바자르에 이런 고기가 많이 있는데, 소고기든 말고기든 450-550 팅게 정도면 1kg을 살 수 있다고 한다(팅게는 카자흐스탄의 화폐단위. 1달러는 약 130팅게). 난 큰 접시에 담겨진 베스빠르막을 보았다. 삶은 감자와 소고기와 양파가 섞인 이 요리는 언뜻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요리다. 소고기로 만들었기 때문에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을 것 같다. 하지만 만약 이 요리를 양고기나 말고기로 만들었더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여행을 하면서 양고기 요리를 여러 차례 먹어보았다. 구운 양고기를 맥주나 보드카와 함께 먹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양고기 특유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짙은 양념을 넣어서 만든 양고기 국도 그런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접시에 놓인 베스빠르막의 소고기는 별양념 없이 그냥 삶은 것이다. 만일 양고기를 이렇게 그냥 삶았다면 그 냄새 때문에 과연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몽골을 여행하던 도중에는 현지인들이 먹는 방식 그대로의 양고기국을 먹어본 적이 있었다. 말린 양고기와 국수를 양념없이 물에 넣고 끓인 그 국을, 가지고 다니던 스테인레스 컵에 한 국자 담아서 먹었다. 먹기 위해서 컵을 입으로 가져가던 순간 확 끼쳐오는 양고기 냄새. 컵에 배인 그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열심히 컵을 씻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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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굴이 만들어준 베스빠르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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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널 위해서 특별히 만든 거야. 많이 먹어."
아이굴의 말을 듣고 나서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응 그래. 정말 고마워. 잘 먹을께."
난 내 앞에 놓인 작은 접시에 베스빠르막을 담아서 먹기 시작했다. 아이굴은 나에게 차이를 따라주었다. 난 잼을 가리키면서 물어보았다.
"이건 무슨 잼이야?" "로즈베리 잼이랑 사과 잼이야"
자기들은 주로 이 두가지 잼을 많이 먹는데 겨울에 감기에 걸렸을 때 로즈베리 잼과 차이를 같이 마시면 몸에 좋다고 한다. 난 베스빠르막을 먹고 차이를 마시면서 친구들과 얘기를 했다. 아스카는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고 아이굴은 키르키즈스탄에서 왔다고 한다. 아이굴이 나에게 빵을 권하면서 말했다.
"키르키즈스탄하고 카자흐스탄은 여러 가지가 비슷해. 음식이나 언어, 문화가 비슷한 점이 많아." "그럼 카자흐스탄하고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스탄하고 우즈베키스탄은 많이 달라. 음식도 문화도 다른 점이 많아."
그러고 보니까 알 것 같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질료니 차이를 주로 마시는데 카자흐스탄에서는 쵸르니 차이를 많이 마신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전통 복장을 하고 전통 모자를 쓴 여인과 노인을 많이 보았는데 카자흐스탄에 와서는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런 것들도 다른 점에 속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굴의 말을 듣고 나서 나에게 떠오른 것은 바로 이런 점들이었다.
얼마 후에 키르키즈스탄으로 넘어갈 계획이기 때문에 난 아이굴에게 그쪽 사정도 물어보았다. 이곳 바자르에서 두터운 옷을 한 벌 사려고 했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다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아이굴은 키르키즈스탄의 수도인 비쉬켁에 가면 중국에서 들어온 옷들을 싸게 파니까 차라리 거기 가서 사라고 한다.
아이굴의 말에 의하면 키르키즈스탄의 이식쿨 호수도 염호라고 한다. 이식쿨 호수의 물을 마시면 목에 좋다는 얘기가 있어서 자기도 여러 차례 마셔보았다며 나에게도 권했다.
"이식쿨에 가거든 너도 한번 마셔봐." "응 그래. 한번 시도해 볼께."
난 웃으면서 말했다. 이식쿨에 가기야 하겠지만 과연 그 물을 그냥 떠서 마실 수 있을지는 장담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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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하쉬 바자르. 생선을 파는 아주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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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카는 자기가 받는 군인 월급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기들 세 식구가 살기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1년에 휴가가 보통 45-50일 정도인데 올해에는 어린 딸 때문에 멀리 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휴가를 보냈다고 한다.
"너희 나라는 어때? 1년에 휴가가 며칠이야?" "우리나라? 글쎄, 공휴일 빼고 개인적인 휴가는 10~15일 정도?" "겨우 15일? 정말? 지금 농담하는 거야?"
이게 농담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일년 휴가 15일도 길게 잡은 건데 그게 농담으로 비칠 정도라니. 아스카는 45일 정도 되는 휴가를 한번에 붙여서 사용할 수도 있고 나누어서 사용할 수도 있다고 한다. 45일짜리 휴가가 일년에 한번씩 주어진다면 과연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까.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은 멀리 여행을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처럼 여행을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는 일도 없을테고 시간에 쫓기듯이 여행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45일 동안 휴가를 즐기고 직장으로 복귀하려면 후유증이 크기야 하겠지만.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내가 직장생활을 했던 그 5년 동안 나에게 매년 45일 씩의 휴가가 주어졌다면, 그리고 그 기간마다 내가 긴 여행을 다녔다면, 나는 과연 여행을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는 지금의 선택을 안했을까.
모를 일이다. 그렇게 매년 40일씩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면 어쩌면 난 이보다 더 일찍 여행중독의 대열에 끼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자유로운 여행을 바란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난 더 일찍 직장을 그만두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푸짐하게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하고나서 난 아스카의 집을 나왔다. 우리는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계속 연락하자고 약속을 했다. 고마운 친구들. 우즈베키스탄에서 이런 만남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하기야 우즈벡에서는 유적지 위주로 돌아다니느라고 개인적인 만남을 가질 만한 여유도 없었다. 나는 넓지않은 발하쉬 시를 구경하며 천천히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은 발하쉬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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