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자매님이 계셨는데, 이 자매님은 늘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버스 기사가 되어 첫 출근할 때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얘야, 자동차 사고가 많이 난다는데 제발 조심하렴."
아들은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는 그냥 넘겼지만, 매일 출근할 때마다 말씀하시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어떤 잡지를 가져와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어머니, 이 기사 좀 보세요. 글쎄 세상 사람들의 97퍼센트가 침대에 누워서 죽는다는군요. 이 통계로 볼 때, 침대에서 자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저는 많은 시간을 버스 안에서 보내고 있으니 얼마나 안전해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 자매님 걱정도 팔자입니다. 우리가 많은 일에 걱정하면서 사는 이유는 그 무엇인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요한복음 1장 1절>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왜 우리의 마음에 근심하며 무엇을 걱정하며 살겠습니까? 이제는 '어떻게 하지?'라는 말보다는 '이렇게 해야지'라는 말을 즐겨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별로 많은 일도 하지 않는데 장안의 모든 걱정을 다 끌어안고 근심하며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삶의 자세는 아닙니다. 내가 염려한다고 되어질리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내어 맡기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예전에 충남 예산에서 16살 먹은 한 처녀가 시집을 갔습니다. 시집을 가보니 남편이라는 사람은 폐병 3기로 각혈을 하고 누워있습니다. 예전에 폐병은 걸렸다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죽을병이지 않습니까? 시집온 지 1년만에 남편이 죽어 17살에 청상과부가 되었습니다.
너무 나이가 어려서 시집이 뭔지, 신랑이 뭔지, 과부가 뭔지도 모르는 나이에 인생의 종을 친 것입니다. 남편 상을 치른 다음 날, 날이 밝자 물동이를 이고 동네 우물로 나갔습니다. 아낙네들이 다들 모여서 열일곱의 과부를 세워놓고 '어쩌면 좋으냐?‘고 ’피기도 전에 혼자가 되었으니 긴 세월을 어떻게 살면 좋으냐?'고 측은해서 난리들입니다.
집에 돌아와 혼자 방안에 앉았는데 고독이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그제야 정신이 들면서 자기의 앞날이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생각 끝에 큰 결단을 내립니다. 그 날 밤, 머리를 깎고 남장을 하고는 집을 뛰쳐나와 서울로 상경을 해서는 어느 부잣집에 식모로 취직을 합니다.
그런데 그 집이 예수 믿는 집이었습니다. 식모살이를 하면서 신앙을 갖더니 소망이 생겨서 시간 시간 틈을 내어 독학을 합니다. 그리고 일본에 유학을 하고 돌아와서는 교육계에 투신을 합니다. 이 분이 유명한 숙명여대 총장을 역임한 [임숙재] 총장입니다.
임숙재 총장이 바로 예산의 열일곱 먹은 청상과부댁이었습니다. 그가 신앙을 갖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그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의 담 너머로 임 총장의 인생의 가지를 넘겨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 인생을 가로막은 절벽과 같은 어려움이 있습니까? 낙망하지 마십시오. 바로 이 순간이 하나님께서 내 가지로 담을 넘게 하시는 순간입니다. [임숙재] 총장의 복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인 나의 복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고 번성하는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뿌리는 하나님의 샘 곁에 뿌리 내리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복은 저절로 흘러나기 시작합니다. 뿌리를 내리고, 무성한 가지를 뻗고, 때로는 고난의 담을 넘어 새 역사를 창조해 내는 것입니다.
1988년 캐나다 캘거리 동계올림픽의 인기선수는 단 잔센이었습니다. 그는 스피드 스케이팅의 챔피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경기를 시작하기 직전 여동생이 죽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백혈병과 싸우던 동생의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500m경기를 위해 빙판 위에 섰을 때 죽은 여동생이 떠올라서 경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경기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그 후부터 그는 삼류 선수가 되었습니다. 1992년 동계 올림픽까지 그의 경기력은 좀처럼 향상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동안 여러 경기에서 챔피언을 따낸 경력과는 아무 관계없이 경기에 참가 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습니다. 1992년 동계 올림픽 1000m경기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이 경기가 금메달을 따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출발지점에서 목에 건 목걸이를 만졌습니다. 8개월 된 딸아이의 탄생석이 달려 있었습니다. 딸의 이름은 제인 이었습니다. 죽은 여동생의 이름을 따서 자기 딸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 있는 팔을 의지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순간 마음의 평정이 왔습니다. 어떤 어려움도 문제가 되지 않는 담대함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금메달을 따는 것만이 하늘나라에 가 있는 동생에게 기쁨을 주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힘차게 스케이트를 지쳐나갔습니다. 마침내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는 경기 내내 하나님의 강하신 팔을 의지하였고 하나님의 강하신 팔이 자신을 붙드는 체험을 통하여 경기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고 회고록에 썼습니다.
운동뿐이 아니라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핍박과 고난이 닥쳐올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은 언제나 힘과 용기와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팔과 같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을 받은 후에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있는 팔이 그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수영장에서 수영 못하는 아이가 아빠와 함께 수영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어린 아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려고 아이 배를 손으로 받치고 물장구를 치게 합니다. 그런데 수영을 조금 배우는가 싶더니 아이는 어느새 제 키도 넘는 물속에서 첨벙첨벙 거리며 제법 물장구를 칩니다.
아빠가 살그머니 배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장구를 칩니다. 아빠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얘, 너 무섭지 않니? 그러다가 물에 빠지면 어떻게 하려구?” 그러자 아들은 아무 걱정 없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빠도 참 걱정도 팔자네요. 아빠가 옆에 서서 언제든지 도와줄 텐데 뭐가 걱정이예요?”
지금 여러분에게 어떤 육신의 질병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어떤 고통스러운 문제가 있습니까? 지금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 계십니까? 짐이 무겁고 힘듭니까? 이제 걱정 마십시오. 믿음의 눈을 떠서 내 손을 보면 분명히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의 오른손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전능의 손이, 그 위대하신 손이 나를 붙들고 계신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의 생활이 건강해지고 팔에 힘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들의 팔에 힘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싸움에서 패배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낙오자가 아니라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시편 37편 23~24절에 선한 사람의 걸음을 여호와께서 정하시니 그분은 그 길을 기뻐하십니다. 그는 넘어지더라도 아주 엎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손으로 붙잡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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