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내가 기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을 근심하게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근심으로 회개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한 것이므로 결국 여러분은 아무것도 손해를 본 것이 없습니다.<고린도후서 7장 9절>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고민이 한두 가지 있습니다. 부모형제, 자녀, 남편, 아내, 친구, 이웃, 동료, 직장, 사업, 처녀, 총각, 학생, 어린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고민, 정치적인 고민, 종교적인 고민, 철학적인 고민 등등 고민이 있습니다. 자기 형편에 따라 고민을 합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이같은 찬송 가사도 있지만 우리 인생길에는 근심이 많은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행복과 불행한 일에 대한 감각이 예민합니다. 사람이 행복할 때면 기쁨과 평안이 있다가도 불행이 닥쳐오면 그 같은 기쁨과 평안은 일순간에 사라지고 근심이 그의 온 인생을 사로잡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인생길을 살펴보면 슬픔과 고통과 환난과 실패와 질병과 자녀들로 말미암은 근심이 우리 인생의 전 생애를 거의 다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근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고, 세상 근심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란 “죄를 위한 경건한 슬픔”을 의미합니다. 세상 근심이란 “알려진 죄에 대하여 근심하고 후회하지만 어떤 자백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필요하지만 세상 근심은 버려야 합니다. 왜 세속적인 근심을 버려야 합니까?
옛말에 “고민하는 인간이 아름답다!”는 말이 있습니다. 때로 고민도 필요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창조적으로 고민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근심도 마찬가지입니다. 근심이 무조건 잘못이 아니라 “어떤 근심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 쓸데없는 근심을 하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근심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지난 일을 붙잡고 근심하는 것입니다. 지난 일은 이미 끝난 일입니다. 이제는 울어도 그 일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지난 일을 계속 붙들고 근심하는 것은 시간 낭비요 어리석은 일입니다.
일어나지 않을 일을 근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우라고 합니다. 하늘이 무너질까봐 걱정하는 것과 같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일을 걱정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진 걱정의 태반이 기우입니다.
자기 뜻대로 안 되어 근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만한 근심입니다. 어떻게 세상만사가 자기 뜻대로만 되겠습니까? 스스로 어찌할 수 없을 때는 자기 뜻을 잊어버려야합니다. 자기 뜻을 지나치게 고집하면 근심도 지나치게 커집니다.
유명함을 추구함으로 생기는 근심입니다. 이름이 높아지는 것을 너무 바라지 말아야합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남의 이름을 높여주는 것을 별로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권이 있으면 조금 이름을 높여 주다가 이권이 없으면 그 이름에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남기는데 지나치게 연연하지 말아야합니다. 옛날 여성들은 “수원댁! 부산댁!” 하면서 이름 없이도 잘 살았습니다. 이름을 내는 문제에 너무 신경 쓰면 근심도 끊이지 않습니다.
완전히 맡기지 못해 생기는 근심입니다.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는 주변의 이웃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서 “조종사가 잘못 운항하면 어떡하나?” 하고 계속 근심하면 본인도 마음이 편치 못하고 운전자도 편치 못합니다. 그런 식으로 남을 믿지 못해서 생기는 근심도 많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생기는 근심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재림하지 않으면 어차피 자기가 죽을 차례는 필연적으로 옵니다. 그러므로 죽음 자체를 근심하지 말고 어떻게 잘 살다가 죽을까를 근심하며 고민하지 말아야합니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쓸데없는 근심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잠언 17장 22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즐거운 마음은 병을 낫게 하지만 근심하는 마음은 뼈를 말린다.고 했습니다. 근심은 마음의 고통이 극심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근심은 우리의 인생의 모든 의욕을 빼앗아 갑니다. 근심에 잠긴 사람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울함과 깊은 시름에 빠져서 의욕을 상실하고 좌절감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근심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결정적인 방해 요인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근심에 사로잡혀 그 가운데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우리의 생활은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질 수 밖에 없게 되며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 점점 퇴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육신적으로는 우리에게 절망과 좌절과 패배를 주며 영적으로는 사망을 주는 이 근심은 우리의 마음에서 우리의 가정에서 물리쳐야 할 것들입니다. 이런 우리의 근심을 물리치고 보람 있는 생애를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의 모든 근심에서 벗어 나와야 하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짊어져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근심이 육신적인 근심이라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영적 근심을 의미합니다. 세상 근심이 우리에게 사망을 주는 것이라면 이 영적인 근심은 우리로 회개케 하고 생명을 준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 근심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침체시키고 하나님을 떠나는 생활을 이루게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의 생명에 활기와 생명력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근심은 우리로 회개케 하고 우리의 생활에 기쁨을 주고 우리로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며 영생을 얻게 합니다.
여러분은 세상 근심에 젖어서 매일매일 세상일에 허덕이며 그 일 때문에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생활을 머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늘 마음을 아파하고 마음에 슬픔을 가지고 있습니까? 세상 근심은 사망을 가져다준다고 하셨습니다. 질병과 실패와 파멸을 자초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생긴다면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소망이 있으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 근심으로 회개하는 생활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우리로 하나님의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려는 거룩한 근심은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전도를 많이 할까? 어떻게 봉사와 헌신을 많이 할까? 어떻게 하면 예배에 빠지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구제와 선교도 많이 할까? 아무쪼록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우리의 마음속에 불일 듯 일어나 회개의 열매를 맺으므로 아름다운 신앙생활의 결실로 축복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가져오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근심은 죽음을 가져옵니다.<고린도후서 7장 10절>
♬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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