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中 ‘내수 기관차’ 올라타고 가속 페달
中, 화끈한 소비진작 시행…1분기 車구매 세계1위로
현대車 중국내 月판매량…석달 연속 70%대 증가
가전구입 13% 보조금에 TV-세탁기 등 소비 탄력
게임업체도 대박 터뜨려…“지나치면 독” 경계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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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는 지난달 중국 시장에서 월 판매량이 처음으로 5만 대를 돌파했다. 이는 작년 4월보다 74.0% 늘어난 것으로 최근 3개월 연속 70%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 굴지의 자동차회사가 줄줄이 쓰러져나가는 불황기에도 현대차가 이곳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자동차 하향(汽車下鄕)’으로 불리는 중국 정부의 소비진작책 덕분이다. 배기량 1600cc 미만의 소형 자동차를 사면 세율을 절반으로 깎아주는 것인데 현대차는 중국 판매량 중 중·소형차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국내 게임업체들도 요즘 ‘중국 특수(特需)’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중국의 인터넷 이용자는 2002년 5900만 명에서 2008년 2억9800만 명으로 5배 이상 증가했다. 그럼에도 인터넷 보급률은 아직 22%밖에 안 된다. 앞으로도 시장 규모가 커질 여지가 엄청나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엔씨소프트의 ‘아이온’은 지금 중국의 20, 30대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이런 분위기라면 국내 업체들이 머지않아 일본의 닌텐도를 능가할 것”이라며 흥분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중국 내수(內需)라는 이름의 기관차’에 올라타고 있다. 그동안 중국은 한국 기업에 제3국 수출을 위한 생산기지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과거의 성장세를 잃지 않고 있는 거의 유일한 소비시장으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은 이미 시장을 장악한 중국 기업과 글로벌 기업의 어깨를 밀치고 중국 내수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중국이 한국 상품의 경유지에서 최종 목적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일부 열매를 맺으면서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 직후처럼 중국 시장을 디딤돌 삼아 일어설 수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이 싹 트고 있다. 중국은 현재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3.1%에 이르는 제1의 수출 시장이다.
○ 정부 내수 진작에 소비 탄력
경기 과열을 우려해 지난해 초 긴축정책을 폈던 중국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다시 성장 촉진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8%의 경제성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수요 급감으로 수출이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중국은 올해 초 내수 진작이란 새로운 카드를 꺼냈다. 대표적인 것이 1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한 ‘자동차 하향’과 ‘가전 하향(家電下鄕)’ 정책. 가전 하향은 TV, 휴대전화,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구입하면 판매가격의 13%를 보조금으로 주는 것이다.
국고가 탄탄한 정부의 화끈한 지원에 소비자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중국의 소매판매는 3, 4월 각각 전년 대비 15%씩 증가했고 이달 초 노동절 연휴 때도 소매기업들의 판매액이 10%가량 늘었다. 1분기(1∼3월) 자동차 판매량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로 떠올랐다. 특히 내구재의 보급률이 낮은 농촌 및 내륙시장이 큰 탄력을 받았다.
당초 올해 중국 경제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내비쳤던 해외 금융기관들은 이런 흐름이 지속되자 최근 들어 새로운 평가를 내리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중국 경제가 2월 이후 뚜렷한 회복세를 보여 V자형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고 골드만삭스는 올해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6%에서 8.3%로 높였다. 세계은행은 “중국의 경기회복은 아시아 전역 상품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져 아시아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 가전 화학 자동차 등 수혜
전문가들은 중국인들의 소비 증가로 자동차와 인터넷 관련 업종 외에 가전, 철강, 화학 업종의 국내 기업들이 수혜를 볼 것으로 분석한다. 특히 한국의 수출 기업들은 위안화 강세의 혜택까지 함께 누리고 있다.
중국의 액정표시장치(LCD) TV 시장은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올해 45%는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장을 집요하게 공략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는 중국 수요의 확대로 요즘 파주공장의 가동률이 100%에 육박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도 중국 내수경기 회복으로 제품가격이 빠르게 회복돼 1분기 좋은 실적을 냈으며 중국 내륙지방의 건설투자 바람을 타고 두산인프라코어 등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업체들도 수혜주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무섭 수석연구원은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중국을 저가 조립 공장의 거점으로 삼았지만 최근 몇몇 업종이 내수시장에 직접 진출하는 구조로 전환하면서 예상보다 큰 이득을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나치면 독(毒)이 된다’는 경계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은 중국에서 가공돼 제3국에 완성품으로 수출되는 중간재가 70% 이상을 차지해 중국의 내수 부양책이 실제 한국 기업 실적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시욱 연구위원은 “물론 중국의 내수 부양이 우리에게 좋은 뉴스이긴 하지만 정작 수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상당히 제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언제까지 내수 진작의 기조를 유지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중국이 다시 수출주도형 정책으로 돌아선다면 내수시장 침투에 열을 올린 한국 기업들의 성과가 예상보다 작을 수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김익수 교수는 “유동성 과잉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가중되면 내년쯤 중국 정부가 다시 긴축정책을 택할 가능성도 있으므로 리스크를 세심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재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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