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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 돌파구 - 중국 내수시장 (상) 유통망을 깔아라

박영복(지호) 2009. 3. 30. 06:31

경제 위기 돌파구 - 중국 내수시장 (상) 유통망을 깔아라 

오리온, 560개 그물망으로 대륙 공략
굴착기 시장 1위 두산인프라코어
12개 지사, 300개 영업거점 운영

 
굴착기 등 중장비 생산업체인 두산인프라코어의 김형택 청두(成都) 지사장은 요즘 바이어를 피해 다닌다. 주문이 몰리면서 물량을 대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청두지사에서 판매한 굴착기는 340대. 경기가 좋았던 지난해 같은 기간(166대)보다 되레 2배 이상이나 늘었다. 김 지사장은 “4조 위안(약 800조원)에 달하는 경기 부양 자금이 주로 건설 분야에 몰리면서 굴착기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올해 청두에서만 20~30%의 판매 증가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두산의 중국 사업이 경제위기 때 오히려 빛을 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뛰어난 제품 경쟁력, 높은 브랜드 인지도, 현지 직원과 원활한 소통 등 성공 요인은 많다. 그러나 중국 내수시장에서 성공한 기업에 나타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독자적인 유통망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지난 10여 년간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대륙에 자신의 유통망을 깔았고, 그 인프라가 지금 경제위기를 맞아 빛나고 있는 것이다. 대륙의 주요 도시를 연결했던 ‘선(線)’의 승리인 셈이다.

두산의 경우 중국의 중장비 업계에서도 독자 유통망을 갖춘 대표적인 외국 투자업체로 꼽힌다. 이 회사는 제품의 생산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산둥성 옌타이(烟臺)에 있는 본사가 직접 관리한다. 전국에 12개 지사를 두고, 그 지사 아래에 38개의 직영 대리점(대부분 중국인), 300개 영업거점을 운영하고 있다. 본사-지사(지사장은 대부분 한국인)-직영 대리점 등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다. 강우규 총경리(법인장)는 “직영 대리점 사장들은 대부분 10여 년 동안 함께해온 중국인들”이라며 “이들은 두산 직원들보다 오히려 충성도가 더 높고, 영업 방침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톡톡 튀는 디자인으로 중국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상하이 강화이(港淮) 백화점의 EXR 매장. 이 브랜드는 중국 패션시장을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상하이=김경빈 기자]
옌타이에서 두산굴착기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리융지(李永吉·38) 사장은 38명의 직영 대리점 사장 중 한 명이다. 1999년 두산인프라코어의 전신인 대우종합기계에 입사한 뒤 10년 동안 두산과 함께했다. 그가 두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회사가 나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두산굴착기 대리점 사장이자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다. 두산이 지원하고 있는 두산희망초등학교(斗山希望小學)의 명예교장으로 임명된 것. 리 사장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학교에 가 학생들을 격려한다”며 “두산에서 일하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두산에는 28명의 명예교장이 더 있다. ‘대리상의 마음을 잡아야 중국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두산의 마케팅 원칙을 보여준다.

두산이 지난달 중국에서 판매한 굴착기는 약 15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7% 증가했다. 내 제품을 내 손으로 판다는 유통 전략이 중국 굴착기 시장 점유율 1위(약 20%)를 지키는 동력이었다.

중국에 ‘초코파이 신화’를 만든 오리온의 유통망은 두산과 약간 다르다. 이 회사는 중국 전역의 430개 대리점과 거래를 하고 있다. 핵심은 그 많은 대리점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있다. 해답은 130개의 직영점이다. 직영점의 오리온 ‘식구’들은 430개 대리점을 수시로 방문해 필요한 마케팅 전략을 교육시킨다.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같은 유통망이 있었기 때문에 경쟁사들이 움츠릴 때도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설 수 있었다. 바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원동력이 유통망인 것이다.

“중국은 유통업체(대리상)의 힘이 매우 강합니다. 이들은 품목별로 카르텔을 형성해 놓고 물류·유통망을 장악합니다. 유통망이 없는 외국기업은 제품 판매를 그들에게 의존해야 합니다. 당연히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지요. 그게 바로 돈이 많이 들어도 내 제품을 내 손으로 유통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깔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CJ그룹의 중국 사업을 지휘하고 있는 박근태 CJ중국법인장의 말이다. ‘10년 동안 유통망을 깔고 나면 중국 시장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규모, 업종, 시장 구조 등에 따라 유통 구조 역시 달라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적의 유통 시스템을 찾으라는 얘기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국에서는 다른 나라와 달리 남의 유통망에 내 제품을 맡기는 식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중국 시장 진출, 유통망 구축부터 시작하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 특별취재팀 : 상하이·난닝·광저우=한우덕 기자 베이징·옌타이=염태정 기자 칭다오=장세정 특파원 사진=김경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