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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寨溝/黃龍16: 평야와 원시림을 지나 도착한 지우자이꺼우

박영복(지호) 2007. 1. 11. 18:10
九寨溝/黃龍16: 평야와 원시림을 지나 도착한 지우자이꺼우 






* 사진 설명: 송판의 한 대로변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마오니우(牦牛, yak) 사진촬영을 하는 장사치.

마음을 안정시킨 대웅전의 분위기

사진 찍은 모델료를 요구하는 두 티베트 할머니 앞에서 잠시 어안이 벙벙했던 필자, 잔돈을 전부 꺼내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잔돈을 세어본 두 할머니는 기분이 좋은 듯 연신 뒤돌아보며 촨주스를 벗어났다. 그들의 떠나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필자는 떠오르는 여러 상념들을 떨치며 급히 대웅전 안으로 들어갔다. 촨주스 대웅전은 1988년에 중건한 탓인지 고찰답지 않게 깨끗했다. 안으로 들어서는 필자에게 한 젊은 라마승이 다가와 축복을 기원하는 '하다'라는 흰 천을 목에 걸쳐주었다. 17살이나 되었을까, 제법 의젓하면서도 능숙한 손놀림으로 천을 걸쳐준 라마승은 합장을 해보이더니 제자리로 돌아갔다. 대웅전에 놓여있는 불상은 한국의 불교사찰에서 보여지는 온유함이나 자애로움과는 달리 사람을 위압하는 중후함과 날카로운 인상을 띠었다.

라마교사원에서만 볼 수 있는 걸개그림 탕카(唐카)가 벽에 걸려있는가 하면 티베트어로 개인의 소원성취를 적은 부적들이 어지러우면서도 조화를 이루어 대웅전을 휘감아 이채로웠다. 방금 전의 일로 마음이 울적했던 필자는 경건하면서도 아늑한 촨주스 대웅전 안의 분위기에서 다시금 평온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불상을 향해 합장제례한 뒤 밖으로 나와 천천히 사원 경내를 둘러보았다. 따스한 햇살로 반짝이는 마니통을 돌리는 사람들, 오체복지(五體伏地)를 하며 사원으로 들어오는 티베트인들, 필자를 바라보며 천진난만한 웃음을 터뜨리는 어린 라마승들... 종교가 삶이요, 삶이 종교 그 자체인 티베트의 문화가 조금은 느껴졌다. 비록 관광객에게 사진모델이 되어 돈벌이하는 할머니처럼 물질문명에 점점 오염되는 이들이 늘어가지만, 고립된 고산지대에서 전통적인 삶을 영위하는 티베트인들의 모습이 정겨움으로 다가왔다.

먹고살기 위해 흘러들어온 회족인들

잠시 가졌던 촨주스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과 두 티베트인 할머니와의 해프닝을 마음 속에서 지우고 촨주스와 작별을 고했다. 지우자이꺼우로 가는 버스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계를 보니 아직 30분의 여유가 있어, 주변에서 간단히 점심요기를 할 곳을 찾았다. 마침 정거장 옆으로 회족(回族)이 운영하는 칭전(淸眞, 이슬람교)식당이 눈이 띄어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에게 가장 빨리 나올 수 있는 음식을 물어보니, 란저우라미엔(蘭州拉麵)을 추천했다. 잠시동안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회족인들이 이 티베트인 거주지역에 온 사연이 궁금해 주인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송판에 원래 회족사람들이 살았나요?" "아니죠. 이 지역에 거주하는 회족인들은 대부분 간쑤(甘肅)성에서 넘어왔답니다." 친절히 알려주는 식당 주인은 먹고 살 곳을 찾아 여기까지 흘러 들어왔다고 대답했다.

주인장과 이런저런 나누는 가운데 손으로 직접 쳐서 만든 면발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갖은 재료가 들어간 라미엔이 나왔다. 금새라도 올 것 같은 차편 생각에 한편으로 음식을 급히 먹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러면 주인장께서도 간쑤에서 오셨나요?" "그렇죠. 90년대 초반 고향인 허쭈오(合作)를 떠나 여기로 왔지요"라며 물고 있던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는 식당주인. 그는 송판 뿐만 아니라 지우자이꺼우 일대에도 회족인들이 적지 않다고 전해줬다.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 주인의 물음에 시안(西安)에서 왔다고 말하고 한국인이라는 것은 굳이 밝히지 않았다. 중국 표준어가 부정확한 쓰촨 사람들이나 티베트인들과 긴 세월을 함께 살아서인지 주인은 필자의 서툰 중국어에 그리 괘념치 않는 눈치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식사를 다 마친 뒤 여행 잘 하라는 주인의 따뜻한 배웅을 뒤로 하며 식당을 나왔다.

무분별한 개발보다 보존이 우선

오후 1시 20분이 가까웠을 때 송판을 출발한 버스가 촨주스 정거장에 들어왔다. 배낭을 짊어지고 버스에 올라탄 필자는 먼저 앉을 자리부터 찾았다. 촨주스에서 지우자이꺼우까지는 4시간이 넘게 걸릴 터이므로 서서 갈 것이 걱정됐다. 다행히도 뒷자리에 빈 좌석이 보여 바람처럼 달려가 앉았다. 다가와 어디까지 가는지 묻는 버스 차장에게 지우자이꺼우까지 간다고 하니 10위안을 내라고 했다. 돈을 추려 전해주며 몇 시간후면 도착할 수 있나 궁금해 물어보니, 차장은 지나가는 말투로 4시간 안팎 걸릴 것이라고 대답했다. '늦어도 저녁 6시까지는 지우자이꺼우에 도착할 수 있겠구나.' 마음 속으로 대략 도착할 시간과 도착후 일정을 머리 속으로 계산해 보았다. 이런 필자를 일깨우듯 차창 밖으로 키 작은 풀들이 펼쳐진 드넓은 송판평야가 시야에 들어왔다.

최근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비경인 지우자이꺼우-황롱 일대를 구경하려는 관광객이 늘어나자, 쓰촨성 인민정부는 기존 난핑(南坪)비행장 외에 새 공항을 신축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 대상지로 떠오른 것이 바로 송판평야로, 교통이 편리하고 넓은 평지를 갖추고 있다. 버스 안에서 멀리 전경을 살펴 봐도 평야는 공항의 입지조건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허나 비행장이 티베트인 거주지역인 송판 한복판에 세워졌을 때 나타날 사회적인 부작용과 공사중 벌어질 자연훼손이 걱정됐다. 인간의 편안함을 위해 문명의 이기를 무분별하게 오지에까지 건설하는 것보다는, 신이 선물한 절경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주는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환경보존보다 돈벌이를 위한 개발을 우선시하는 중국 지방정부의 계획이 실로 우려스러웠다.

햇살도 비치기 힘든 원시림을 지나다

방금까지도 햇볕이 내리쬐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만년설이 뒤덮인 고산에만 살짝 햇살이 보일 뿐이었다. 고산지대의 변화무쌍한 기후변화가 감탄스러웠다. '비가 와서는 안 되는데...' 걱정하는 필자를 위로하듯 버스는 힘차게 드넓은 평야를 내달렸다. 두 시간 가까이 달렸을까, 어느덧 평야 끝에 이른 듯 지평선 위에 올라섰다. 해발 3400~3500m가 족히 될 경사가 평탄한 평야의 끝에 닿은 버스는 뒤이어 산비탈 아랫길로 들어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무라곤 볼 수 없는 고산평야지대였건만, 돌연 비탈길 주변으로 원시림이 에워쌌다. 제대로 포장이 안된 도로로 인해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창 밖을 가로막는 아름드리 나무숲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연륜이 몇 백년은 족히 된 듯해 보이는 갖가지 형태의 나무들, 푸르르 날개짓을 하면 천공으로 날아오르는 이름 모를 새들, 도로포장을 위해 곳곳에서 손놀림이 바쁜 민공들... 모든 것이 방금 지난 평야지대와는 딴판이었다.

구름에 모습을 숨긴 햇살도 이처럼 우거진 원시림을 뚫고 위용을 자랑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무숲은 끝도 없었다. 한 반시간동안 원시림군을 달린 버스는 그제야 앞으로 시야를 조금 틀 수 있었다. 간간이 눈에 띄는 산간마을 집 굴뚝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서 추위에 쌀쌀하던 필자를 위로해 주었다. 연이어 모습을 드러내는 마을들과 길게 이어진 개천, 작은 보리-밀 경작지들이 지우자이꺼우가 얼마 멀지 않음을 알려주는 듯 정겨웠다. 그렇게 달리길 4시간여, 산골에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 등장했다. 울긋불긋 갖가지 모습을 띤 호텔들이었다. 이미 완공되었거나 한창 터를 다지면서 마무리공사가 한창인 호텔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때마침 터지는 차장의 외침. "지우자이꺼우에 다 도착했습니다. 내리실 분 준비하세요!" 시간은 어느덧 저녁이 다 된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