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설명: 한 라마불교 사원에서 마니통을 돌리는 관광객들과 몇몇 티베트 부녀자들.
쓰촨은 거대한 면적과
많은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이 가운데 도교 불교 이슬람교 천주교는 쓰촨의 4대 종교로써, 각기 유구한 역사와 수많은 신도를
거느리고 있다. 도교가 쓰촨에서 발흥한 중국 한족의 유일한 민족종교라면, 불교는 쓰촨의 소수민족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이다. 특히 쓰촨
서부지역, 즉 과거 티베트 암도지역은 라마교 세력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회에서는 쓰촨 불교의 현황에 대해서
소개한다.
쓰촨 동부는 선종, 서부는 라마교
쓰촨에 불교가 처음 유입된 것은 기원전인 전한대 중기이다.
당시만 해도 불교의 영향력은 극히 작았고 제대로 된 사찰 또한 전무했다. 본격적으로 쓰촨과 충칭에서 불교가 세력을 넓히게 된 것은
위진남북조시대라 할 수 있다. 진대부터 중원과 강남지방에서 일련의 고승이 끊임없이 쓰촨으로 유입되면서 불법을 펼치게 되는데, 당시만 해도 포교의
주무대는 지금의 청뚜(成都)와 송판/지우자이꺼우 일대였다. 수-당-송대의 불교 흥성기를 거치면서 선종과 갓 유입된 라마교는 상호 처절한
세력다툼을 벌였는데, 청뚜를 경계로 하여 동쪽 지방은 선종, 서쪽 지방은 라마교가 강력한 자기 권역을 형성하게 된다. 이는 과거 티베트인과
한족의 거주지역 분포와도 비슷한 형색이었다.
원-청대에 최전성기를 누린 라마교
쓰촨 서부지역에 라마교가
전래된 것은 7세기경. 티베트 고승들이 직접 쓰촨에 와서 포교하면서 단시일 내에 지역 전체를 라마교 영향권에 영속시킨다. 라마교는 원대와 청대
때 최전성기를 구가하는데, 이는 당시 소수민족 정권의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서였다. 원 세조는 티베트 승려를 국사로 모시고 라마교를 국교로
추앙했다. 오늘날까지 쓰촨 내에 현존하는 고찰 대부분은 이 시기에 세워진 것이다. 청대 더거(德格)에 세워진 인경원(印經院)은 쓰촨 라마교에
있어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단빠이런(丹巴譯仁)라 불리는 승려가 주도하여 세운 인경원에는 티베트어로 쓰여진 수만 질의 '대장경'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고, 형태가 세워질 당시와 같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까지도 고대 티베트의 인쇄방식에 따라 불교 경전을 발행하고
있다.(쓰촨 라마불교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에서 자세히 소개)
송대 영화를 누린 쓰촨의 선종
쓰촨은 중국
내에서도 선종이 가장 흥성한 지역중 하나였다. 당대에는 10대 선종의 종파 중 5파가 쓰촨에서 발흥했고, 중국의 저명한 고승인 도일(道一)과
선감(宣鑒)을 배출했다. 송대에 이르러 쓰촨 서부에서 최대 종파를 형성한 선종은 11세기에 승려와 비구니만 506만명을 두어, 전국 총수의
12%를 차지했다. 지금도 그 웅자를 자랑하는 청뚜의 소각사(昭覺寺) 성수사(聖壽寺), 아미산의 보현사(普賢寺), 낙산의 릉운사(凌雲寺) 등의
고찰과 낙산대불, 대족(大足)석굴 등 기념비적인 석각예술품도 또한 이 시기에 세워지고 만들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송대 말기에는 중국 최초의
관주도 장경인 '개보(開寶)장경' 13만벌을 판각하면서, 쓰촨 선종불교의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한때 대부분 불교사원이 폐허가
되기도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쓰촨에서 불교는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청조에 의해 번성했던 라마교가 정치적 후원자를
상실하면서 급속히 위축당했고, 선종 또한 급변하는 사회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적지않은 사찰이 운영조차 어렵게 되었다. 여기에 결정타를
얻어맞은 것은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 여겼던 공산주의자들은 정치-경제개혁 차원에서 사원의 봉건적 특권을 없애고
수많은 승려를 환속시켰다. 여기에 1955년 티베트 전지역에 걸쳐 전면적인 강압정치를 펼친 중국정부의 정책은 쓰촨 서부지역의 라마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58년 쓰촨성의 통계에 따르면, 한족 거주지역에는 불교사원 345곳 승려 1만명이었고 티베트인 거주지역은 사찰이 겨우 36곳
승려는 1만4000명에 불과했다.
여기에 재앙이나 다름없는 사건이 발생하니 1966년에 발생한 문화대혁명이었다. 10년에 걸친
광란의 폭풍우는 옛 것을 모두 부정하는 홍위병의 격렬한 불교사원 파괴와 종교활동 금지로, 쓰촨의 불교는 그 명맥마저 유지하기 힘들었다.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사인방'의 분쇄이후 폐허 위에서 활동을 재개한 불교계는 1980년대 이후 중국정부와 해외에 거주하는 화교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사찰을 짓고 승려를 양성하면서 종교적 생명력을 되찾았다. 1998년 현재 쓰촨성 전체에 흩어져 있는 불교 사원수는 모두 989곳이다. 이중
라마교 사원이 709곳으로, 중국정부가 정책적으로 라마교를 우대, 육성했음을 알 수 있다.
* 이 기사는
'中國佛敎史'(중국사회과학원출판사) '四川宗敎槪覽'(사천인민출판사) '千年回首話四川'(파촉서점) 등의 책 내용을 반영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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