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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寨溝/黃龍14: 촨주스에서의 티베트인 할머니

박영복(지호) 2007. 1. 11. 18:08
九寨溝/黃龍14: 촨주스에서의 티베트인 할머니






* 사진 설명: 촨주스(川主寺)에서 만난 두 티베트인 할머니. 필자에게 서글픈 기억을 남겨주었다.

낯선 한국인에게 베푸는 인정

비탈진 산길을 단숨에 내달린 관광버스는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송판(松藩) 시가지를 다시 내려왔다. 가이드와 여행단 일행은 필자에게 지우자이꺼우에 같이 갈 것을 권했다. "여기서 지우자이꺼우까지는 4시간이 채 안 걸리지만, 지금 이 시간에는 그 곳을 향하는 버스가 없어요. 교통도 불편하니, 우리와 함께 움직이죠. 버스비 따로 내라는 소리는 안할테니." "이봐요, 한국학생. 같이 가면서 한국에 대한 얘기나 좀 해줘요. 이거 중국어 잘 하는 외국인을 만나기도 힘드니, 같이 타고 가면서 한국 얘기나 실컷 들읍시다." "송판에 머물러 더 볼 것 있나요? 바로 지우자이꺼우에 함께 가죠." 어렵게 알게 된 말 통하는 외국인과 헤어지기 아쉬웠는지 사람들은 호의로 권유를 했지만, 송판에 산재한 라마불교사원을 볼 계획을 지녔던 필자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버스비를 내기 위해 인민폐 100위안을 꺼내 가이드에게 주었지만, 한사코 받길 거절했다. 여기에 버스기사까지 "자리가 비어서 태워준 것인데, 무슨 돈이요? 낯선 땅에서 배낭여행 하는데 더 필요할지 모르니 그냥 집어넣어요. 자꾸 그러면 화냅니다"라고 '위협'까지 했다. 어정쩡하게 어찌할 바를 모르는 필자를 가이드는 숙소를 빨리 정해 푹 쉬라면서 떠밀다시피 내리게 했다. 떠나가며 즐거운 여행이 되라고 소리치는 가이드와 여행단 일원이 탄 버스가 사라질 때 손을 흔든 필자는 배낭을 메고 어제 묵었던 송판초대소를 향했다. 갈수록 정이 메말라지고 이해타산적인 사회로 변모해 가는 중국에서 풋풋한 인정을 베푸는 사람들을 만난 필자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버스 놓치면 2~3시간 기다려야

6월 27일 전날 산행을 한 피로탓인지, 눈을 뜨니 시계는 어느덧 7시를 가리켰다. 서둘러 일어나 짐을 챙기고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뒤 다음 목적지인 라마불교 사원 촨주스(川主寺)로 향했다. 송판 시가지에서 촨주스까지는 6km 떨어져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편을 이용해야만 한다. 송판에서 난핑(南坪)까지 향하는 버스는 하루에 5,6차례 밖에 없어서, 한 번 차를 놓치면 3~4시간 기다린 후 다음 차를 타야 한다. 아침 8시 송판버스터미널에서 난핑으로 떠나는 버스를 탄 필자는 차장에게 촨주스에 도착하면 알려줄 것을 여러 번 부탁했다. 이렇듯 귀찮아하는 차장을 붙잡고 연거푸 부탁했던 이유는 잘못해서 목적지를 그냥 지나치면 수 km나 떨어진 다음 정거장에서 되돌아오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버스가 한 10분쯤 달렸을 때 차장이 "촨주스!"라고 필자에게 크게 소리쳐 알려줬다. 이미 반바지와 티셔츠만 입은 행색으로 주목을 끌었던 필자는 승객들의 쏟아지는 시선을 받으며 차에서 내렸다. 먼지 휘날리는 버스를 떠나 보낸 뒤 정거장을 둘러보니 썰렁한 주변 풍경에 황당함이 느껴졌다. 송판일대에서 가장 크다는 촨주스가 눈앞에 펼쳐져야 하는데 옹기종기 모여있는 농가 외에는 어느 것도 보이질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정거장에 있는 몇몇 티베트인들에게 촨주스가 어디 있는지 물어야 했다. 다행히도 두 사람이 필자의 중국어를 알아듣고 한 방향을 가리키며, 정거장에서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500m정도 더 걸어 들어가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가르쳐준 방향의 티베트인 마을을 가로질러 15분을 걸었을까. 아담한 크기의 불교사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송판 최대의 라마교사원, 촨주스

촨주스는 송판 일대에서 가장 큰 라마교 사원으로 17세기에 창건됐다. 라마교는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14대 달라이 라마가 우두머리로 있는 거루(格魯, Gelug)파를 비롯, 닝마(寧瑪, Nyingma)파 거쥐(喝擧, Kagyu)파 사가(薩迦, Sakya)파 등 4대 종파가 있다. 촨주스는 이 가운데 황교라 불리는 거루파에 속하는 사찰이다. 청대 건립된 촨주스는 한때 서른 칸이 넘는 큰 절간으로 200명에 달하는 라마승들이 거주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쓰촨내 라마교 사원이 걸었던 운명처럼, 1966년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의 방화로 사찰은 잿더미로 변했고 그 많던 라마승들은 모두 쫓겨났다. 1988년에야 대웅전을 중심으로 다시 중건되었지만, 사찰은 이전의 영화를 되새기기에는 초라할 정도로 너무 규모가 작았다.

필자는 청뚜 지아통호텔에서 독일인 여행자가 남긴 메모를 보고 일부러 들른 오늘날 촨주스의 모습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작은 사원을 보기 위해 하루를 낭비하다니...' 밖에서 바라본 촨주스의 모습에 사찰 안으로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이왕 온 것 구경이나 하자고 입장료 2위안을 내고 들어섰다.(2000년부터 관광상품을 이용하는 여행자는 촨주스가 투어코스로 들어가 있어 무료로 볼 수 있다. 중국 표준어에 능통한 승려가 가이드를 대신해 따라다니며 자세히 설명해준다) 입구에서부터 바로 눈에 꽉 차오는 대웅전은 전통적인 티베트 라마사원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베이징(北京) 일대에 흔히 볼 수 있는 티베트와 중국 양식의 융합방식인 듯한 색채가 뚜렷했다. 이것은 쓰촨 대다수 불교사원, 즉 라마교이든 선종불교든 티베트와 중국의 건축문화가 상호 영향을 주어 쓰촨 특유의 모습을 띠게 된 것이기도 하다.

수고비를 요구한 두 티베트인 할머니

자신의 소원이 적힌 부적을 넣은 '마니통'을 돌리는 몇몇 티베트인의 모습이 보일 뿐, 한가롭고 조용했던 촨주스에서 필자의 등장은 약간의 파문을 일으킨 듯 싶었다. 호기심에 가득찬 아이들이 다가와 빤히 쳐다보는가 하면 어른들 또한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의 거동을 일일이 주목했다. 비록 필자가 천주교신자이긴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했듯이 먼저 마니통을 어루만지면서 여행의 무사평안을 빌었다. 이어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필자 뒤를 따라 마니통을 돌리던 두 티베트인 할머니가 손짓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혹시나 외국 시사잡지에 종종 등장하는 티베트 기행문에서처럼 14대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원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야릇한 긴장에 휩싸였다. 티베트어로 무슨 말을 하는 듯 같은데 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연이어 필자의 카메라를 가리키면서 말을 하는 두 할머니의 뜻이 아마도 사진을 찍어달라는 듯 싶었다.

'산간벽지에 사시는 분들이라 사진 찍을 기회가 없었겠구나. 그래, 저렇게 원하시니 한 장 멋지게 찍어드려야지' 흔쾌히 응답한 필자에게 할머니들은 따라오라며 대웅전 오른쪽의 벽으로 가더니 나름대로 포즈를 취했다. 없는 실력에 두 할머니의 전체 모습을 잡아 사진을 찍은 필자는 필기도구를 꺼내 주소를 적어달라고 요청했다. 사진을 현상해서 꼭 부쳐드리겠노라 약속을 하면서. 헌데 할머니들은 자꾸 필요없다고 하면서 무언가를 계속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고민하는 필자에게 주변에 있던 한 꼬마가 소리를 쳐댔다. "돈 줘요, 돈!" 아, 그랬던가... 그제서야 모든 전후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두 티베트인 할머니는 중국인이나 외국인 여행자의 사진모델이 되어 아르바이트(?)한 경험이 있던 것 같았다. 필자에게도 초상권을 팔았으니 수고비를 요구하는 것이리라.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과 안타까운 슬픔이 밀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