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설명: 1- 관광객들을 위한 관망대에서 바라본 우차이츠의 전경. 2- 황롱으로 가는 해발 2,500m에서
4,300m까지의 산간도로를 정비하는 민공들.
연못의 색깔을 다르게 하는 광물 성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우차이츠(五彩池)에 올라온 투어 일행들은 눈앞에 펼쳐진
자연 절경을 배경으로 쉴새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올라오면서 느낀 연못의 물 색깔이 다른 이유를 뒤늦게 온 가이드 지양에게 물었다. "황롱의
지질구성은 중국 내에서도 찾기 힘든 고산의 협곡지층이랍니다. 이 곳에 있는 연못 밑의 광물은 성분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한데 모인 연못들의
물빛도 서로 다른 색깔을 뽐내는 것이죠. 이것은 지우자이꺼우의 연못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언뜻 이해가 잘 되질 않았으나, 자연의 오묘한 조화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라는 한 미개한 생명체로서 그저 조물주의 위대한 창작에 축복을 받은 것을 감사할 따름이었다. 우차이츠의 미려한
자연풍광과 고즈넉이 자리잡은 황롱사가 전제적인 흐름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절묘한 조화를 이룬 것이 대자연의 섭리와도 같았다. 만약 콘크리트로
지어진 현대식 관리소가 들어섰으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입구에서 정상까지 급히 올라온 필자는 중간에 그냥 스쳐지나온 절경들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먼저 하산을 시작하였다. 늦어도 오후 4시 전까지는 주차장에 꼭 와야 한다는 가이드의 신신당부를 뒤로 하고 산길을 내려갔다. 헐레벌떡
지친 기색을 아랑곳하지 않고 우차이츠를 향해 험한 길을 오르는 사람들을 마주 보며 내려가니, 수많은 이들이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묻는다.
이에 필자는 "거의 다 왔으니 힘내세요!"(快到了, 加油!)라고 그들을 격려하면서 발길을 가뿐히 했다. 별달리 볼 것이 없는 곳은 천천히 관상만
하면서도, 졍옌차이츠(爭艶彩池) 진샤푸띠(金沙輔地) 페이빠오리우휘(飛瀑流輝) 등지에 이르러서는 세세한 부분까지 사진을 찍어대던 필자는 평소 사진
찍기를 즐겨하지 않는 스스로를 떠올리고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귀한 티베트 약재를 눈앞에
두고도...
또다시 오기 힘든 오지를 기록에 남긴다는 생각으로 필름 한 통이 넘게 사진을 찍은 필자가 황롱 입구에 다시
내려온 시간은 2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고도 500m 가까운 거리를 오르내려서인지 배가 심하게 고팠다. 아침식사도 부실하게 채운터라, 입구부터
주차장 사이에 널려있는 식당들 중 한 군데에 찾아 점심을 먹었다. 불편한 교통 때문인지 외지에서 들어온 가공식품이나 신선한 과일은 도시지역보다
2배 이상 비쌌지만, 고기나 나물류는 다행히 저렴했다. 경비로 얼마를 더 써야 할지 모르는 배낭여행이기에 질보다는 양 위주로 허기를 달랬다.
허기진 배를 급히 채운 뒤 주변에 널린 티베트인이 운영하는 토산품 가게에 들렀다. 오래 전부터 티베트지역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좋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사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몇 군데 약재방에서 들어가 이것저것을 구경하니, 주인들은 반바지와 티셔츠
형색의 필자를 홍콩인으로 여기는 듯 몇 마디 광동어를 던져가며 유혹을 했다. 그 옛날 중국의 왕후장상만 먹었다는 동충시아차오(冬蟲夏草)부터
시작해서 신경성 두통에 특효약이라는 티엔마(天麻), 천식을 앓는 이에게는 복음인 촨베이(川貝) 등 주인장은 눈만 멀둥멀둥 뜨며 쳐다보는 필자에게
이전에 듣거나 보지도 못했던 한의약재를 내보이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을 해주었다. 몇몇 티베트인은 필자가 억양이 불분명한 중국어를 구사한
자신들의 말을 못 알아들는지도 모른 채, 해발 3,000m 이상의 고산에서만 자라는 자연 그대로의 천연산인 것과 절대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두세
번씩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그들의 화술에 약재를 사고 싶은 충동이 불현듯 떠올랐지만, 가난한 배낭여행자의 신분으로는 턱도 없는 값이기에 마음을
접었다.
"10년안에 한국을 추월할 것"
정해진 시간이 되어 버스가 주차한 곳에 가보니 일행들은 모두
되돌아와 있었다. 제대로 구경은 했는지, 힘들지는 않았는지, 점심식사는 했는지 등 친절히 물어주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답변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3시 40분쯤 뒤늦게 점심식사까지 마친 일행의 수를 모두 확인한 관광버스가 출발했다. 경사가 완만했지만 공기가 희박하고 고도가 높은 산행을 한
탓에 관광객들은 모두 잠을 청했다. 필자 역시 피로가 느껴져 눈을 붙이려 했지만, 울퉁불퉁한 산길을 달리는 버스의 흔들거림에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마침 옆에 있는 30대 중반의 남성도 안 오는 잠에 심심한지 말을 걸어왔다. "전에 상하이를 오신 적이 있나요?" 가 보질 못했다고
대답하니, 그는 "중국에서 유학하고 있다면 상하이를 꼭 와서 보셔야 합니다. 베이징이 정치문화의 수도라지만 상하이는 중국 경제의 수도거든요"라고
강조했다.
조심스럽게 무엇을 하시냐고 물으니, 자부심 어린 미소를 띠며 "상하이-폭스바겐자동차회사의 엔지니어"라 답했다. 중국에서
폭스바겐은 업계 최고의 매출을 자랑하는 자동차메이커로, 이러한 중-외합작회사의 엔지니어면 중국 내에서도 고소득층에 속한다. 자신의 성을
우(吳)라고 밝힌 그는 아침부터 자신과 거동을 함께 하던 옆자리의 여성과 8,9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가족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또한 다음
달 독일 본사로 2년간 연수를 떠나기 앞서 회사에서 내준 휴가로 가족들과 이번 여행을 하게 된 것이라는 사연을 전해 주기도 했다. 우씨와
이런저런 나누는 가운데, 화제는 어느덧 한국의 자동차산업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우씨는 현대, 대우, 기아 등과 같은 한국의 자동차메이커를
나열하며 자기 나름대로의 회사별 차종 성능분석을 들려준 뒤 "10년안에 중국의 자동차산업이 한국을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찬 전망을
내놓기까지 했다.
평생동안 교육혜택도, 여성구경도 못해
너무나 자신만만한 우씨의 말에 반박 여지가 없는
현실이 필자의 가슴을 짓눌렀다. 선진국과의 기술경쟁력에서는 상대가 안되고 다른 개발도상국의 거센 추격에 세계시장에서의 입지가 갈수록 적어지는
한국상품. 해마다 7% 가까운 경제성장률을 구가하는 중국에서까지 메이드 인 코리아는 이렇듯 업신당하는 것인가? 답답한 마음에 눈을 돌려 버스
밖을 보니, 일련의 사람들이 도로정비공사를 벌이고 있었다. 버스가 달리면서 뿜어대는 먼지와 매연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일하는
이들은 바로 중국의 신문지상에서나 간간이 보아왔던 민공(民工)들이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도로/철도 교통망은 대부분 군인들이나 값싼
인건비의 일용직 노동자들이 건설한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한국의 일용직 노동자가 중국의 민공보다 보수가 많고 주거환경이 훨씬
낫다.
중국에서 큰 영향력을 차지하는 '중국칭니엔바오'(中國靑年報)의 보도에 따르면, 황롱과 같은 오지에서 일하는 민공의 하루
일당은 겨우 인민폐 20위안(약 3000원) 밖에 되질 않는다. 잠자리는 보통 무료이지만 하루 2위안 정도 하는 식비를 제하고 나면, 민공이 한
달에 거머쥘 수 있는 돈은 쥐꼬리만하다. 나머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공기마저 희박하고, TV는커녕 전기마저 제대로 들어오질 않는 오지산간에서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일하는 중국의 민공들. 이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평생동안 초등학교 문전에도 가보질 못하고, 여자 냄새도 맛보질 못한
채 총각귀신이 되기도 한다. 대도시 상하이의 외국합작기업에서 일하며 한국을 따라잡겠다는 호언하는 우씨와 별다른 불평불만 없이 소처럼 일하면서
오지를 개척하는 민공들의 모습이 눈앞에 오버랩 되면서 마음은 더욱 산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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