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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寨溝/黃龍9: 버스로 해발 4,300m 고산 정복

박영복(지호) 2007. 1. 11. 18:04
九寨溝/黃龍9: 버스로 해발 4,300m 고산 정복 






* 사진 설명: 1- 황롱 가는 산길의 해발 4,300m에서 찍은 구름바다. 2,800m에 위치한 송판에서 이 곳까지 도착하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 2- 황롱으로 올라가는 산간도로에서 바라 본 송판의 한 티베트 마을.


6월에 늦가을만큼 추운 날씨

13시간 동안 시달린 고물버스에서 내린 필자는 송판(松藩)에서 묵을 숙소를 찾아 나섰다. 계절이 6월말인데도 불구하고, 해발 2,800m의 고산지대인데다 밤이어서인지 날씨가 상당히 추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반바지에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차림을 한 사람은 오직 필자 밖에 없었다. "완전히 늦가을 날씨이군. 빨리 숙소를 찾아야 할텐데..." 걱정을 하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독일인 배낭족이 머물렀던 송판초대소가 어디 있는지 물어 보았다. 다행히 버스터미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초대소는 한국에 비유하면 여관급에 해당한다) 초대소 문을 제치고 들어가, 먼저 숙식비용을 확인했다. 역시 하루 60, 100, 180위안. 만만찮은 액수였다. 꼭 방값을 흥정하라는 메모를 읽은 터라, 예상은 했지만 값이 너무 비쌌다. 최대한 웃는 낯으로 프런트의 여직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유학생인데, 여기서 하룻밤 묵을까 합니다. 빈방은 있나요?" "물론이죠. 어떤 등급의 방을 원하시나요?" "2인 1실의 60위안짜리가 나을 듯 한데요. 헌데 방값이 너무 비싼데, 좀 싸게 안되나요." "안됩니다. 이것은 현정부에서 정한 공식 가격이에요." "이전에 여기서 묵었던 서양 친구가 소개해 줘서 왔어요. 그 친구 얘기로는 30위안까지 가능하다고 하던데." 제법 상냥하게 대답을 하는 여직원과 한 차례 실랑이를 벌인 뒤 40위안으로 간신히 가격을 낮췄다. 초대소 쪽에서 요구하는 보증금 10위안을 더 낸 뒤 여직원 안내를 받아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정하게 됐다. 조금 오래된 듯한 건물에 깨끗하지 않은 침구며 화장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외국인이라 특별히 혼자 묵도록 한다는 말에 별다른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여직원은 뜨거운 물은 밤 9시부터 10시까지만 나오고, 내일 초대소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고 보증금을 꼭 받고 나가라는 등의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한껏 피곤한 몸에 걱정 말라고 대답하며 침대에 몸을 뉘였다.

공짜로 타게 된 관광버스

6월26일 아침 일찍 일어나 초대소 프론트의 여직원을 찾았다. 황롱(黃龍)을 가기 위해서는 여행패키지 관광단 차량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직원에게 사정을 얘기하자, 마침 같은 초대소에는 청뚜에서 온 관광단이 묶고 있었는데 그들 또한 황롱으로 출발한다는 것이다. 한참 초대소 직원에게 탐문하던 중 한 키 작은 여성이 프론트로 다가왔다. 여직원은 그녀를 보고는 "바로 저 여자가 관광단 가이드"라고 알려 주었다. 두터운 가을옷으로 한껏 중무장을 한 가이드는 쌀쌀한 아침 날씨에도 반바지, 티셔츠만 입은 필자를 신기한 듯 살펴봤다. 잘 됐다 싶어 그녀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황롱까지 버스를 탈 수 있는가를 물었다. 물론 차비를 확실히 내겠다는 말과 함께.

추위에 떨며 호소하는(?) 필자를 불쌍하게 여겼는지, 가이드는 "운전기사와 상의를 하겠으니 기다려라"고 말한 뒤 2층으로 올라갔다. 객실 쪽으로 올라갔던 가이드는 잠시 후 밝은 표정으로 내려오면서, 운전기사가 승낙했다며 7시 반에 출발한다고 전해왔다. 차비가 얼마냐는 질문에, "좌석이 두어 군데 비어있고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가는 것이니 낼 필요 없지만 황롱을 모두 본 뒤 우리와 같이 시간에 맞추어 나와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황롱에서는 딱히 잘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한 터라,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공짜로 버스를 타게 됐네'를 외치며 속으로 콧노래를 불러댔다.(최근에는 송판지역의 호텔이나 초대소에서 알선한 차량을 이용해 다녀올 수 있다. 흥정을 잘 하면 왕복 100위안에 가능하다)

자연을 상처낸 산길

조금 늦게 일어난 관광객으로 인해 관광버스는 예정시간보다 10분 늦게 출발했다. 운전사까지 열 여덟 명이 탄 소형버스에 다른 사람 눈치가 보여 구석자리를 찾았지만, 가이드 지(季)양은 자신의 옆좌석에 앉으라고 했다. 그리곤 예상치 않은 불청객에 호기심을 보이던 관광단원들에게 필자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한국유학생으로 이 먼 데까지 배낭여행을 왔는데, 황롱까지는 정식 교통편이 없어 우리와 같이 가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그와 더불어 필자에게 자기 소개를 하라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만인이 쳐다보는 와중에 중국어를 하려니 말이 터지질 않았다. "시안(西安)에서 온 유학생이다. 여기에서 여러분들을 만나서 반갑고 오늘 하루 즐거운 여행을 같이 하길 희망한다"는 멘트를 간신히 끝냈다. 이어서 터지는 박수소리에 언제 중국에 왔느냐, 시안에서 무슨 공부를 하느냐, 노래 불러봐라...

더 이상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몰라 급히 자리를 앉았다. 하지만 이곳저곳에서 줄곧 해대는 질문에 대답을 하느라 곤혹을 치렀다. 그러는 와중 버스는 계속 가파른 산길을 내달렸다. 비포장된 거친 산간도로는 경사마저 급하다 보니, 몸을 제대로 중심 잡을 수 없었다.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하며 처음 만난 중국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필자에게 한 줄기 선명한 선자국이 눈앞에 꽉 차왔다. 아름다운 산을 상처낸 산길의 긴 선이었다. 황롱까지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만든 도로라지만, 곳곳에 심하게 파고 깎은 토사와 석재채취 흔적은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편안한 도로환경을 위해서라 해도 이렇게 훼손하면서까지 길을 낼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송판에서 황롱까지의 산길은 2001년 상반기에 전 구간이 평탄하게 정리되었다)

해발 4,300m에 오르다

춥지 않느냐는 가이드의 질문을 미소로 대신하자, 그녀는 오늘은 날씨가 맑아 아름다운 고산의 운해를 볼 수 있을 거라고 들려준다. 답답한 마음에 기분이 잠시 언짢았던 필자는 그 얘기를 들자,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지금 이쯤이 해발 몇 m정도 되는가" 묻자, 지양은 아마도 4,000m에 가까울 거라며 "잠시 후면 가장 높은 슈에바오딩(雪寶頂) 밑까지 달하게 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이미 백두산보다 높고 한라산을 두 개 겹쳐놓은 것보다 높은 고지대에 왔단 말인가. '이상타. 이쯤이면 고산병을 느껴야 하는데 아무런 기색이 없네?' 익히 들어왔던 무시무시한 고산병의 증세가 어느 누구에게도 발생하지 않아 의문이 생겼다. 이에 관하여 지양에게 묻자, 다음과 같은 답변을 했다.

"고산병이란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갑자기 이동을 할 때에만 발병하죠. 우리처럼 차를 타고 해발 500m에서 천천히 지금 여기까지 왔을 경우 별 문제가 없어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환경에 적응이 되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신체쇠약자나 연령이 많은 분들에게는 이와 같은 고산지대의 버스여행이 위험할 수 있어요. 공기가 희박해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일도 있으니 주의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필자와 같이 건강한 성인에게는 문제가 없단다.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는 가이드의 말을 듣는 동안, 버스는 어느덧 줄곧 달린 가파른 오르막길을 끝내고 한 평지에서 멈추었다. "드디어 도착했네요. 여기가 해발 4,300m 지점이에요." 이 때 시간은 벌써 9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구름의 바다와 아름다운 산세는 신선한 공기와 더불어 황홀하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