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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寨溝/黃龍7: 하루만에 해발 500m에서 2,800m까지

박영복(지호) 2007. 1. 11. 18:03
九寨溝/黃龍7: 하루만에 해발 500m에서 2,800m까지 






* 사진 설명: 1- 전장관(鎭江關)에 있는 고대 치앙(羌)족이 만든 석탑인 띠아오러우(碉樓). 띠아오러우는 관상과 방어를 겸한 망루로, 치앙족은 마을 어귀에 사각형 육각형 팔각형 십이각형 등 다양한 형태의 석조물을 만들었다. 2- 마오시엔(茂縣)의 한 치앙족 농가에 설치된 위성 TV안테나. 중국 오지의 산골마을에도 문명의 이기는 어김없이 침투해 있다.

 

외국어나 다름없는 쓰촨 사투리

 

6월 25일 설레는 마음에 잠도 제대로 못 이룬 채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서 시먼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시계는 어느덧 6시 반을 가리켰다. 부랴부랴 오전 한시간마다 발차하는 송판행 버스를 찾으니 다행히도 버스는 아직 출발하지 않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구닥다리 버스’에 오르니 안은 이미 승객들로 만원이다. “밖의 풍경을 보려면 창가 쪽이 좋은데...“ 중얼거리며 자리를 둘러보았지만 마땅한 좌석이 눈에 띄질 않아 버스문 쪽에 앉아야만 했다. 필자가 앉은 것도 모른 채 창가 쪽에 자리를 차지한 중년남자는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등에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손에 먹을 것을 잔뜩 들은 필자를 힐끔힐끔 쳐다보았지만 이내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의자밑 좁은 공간에 배낭을 간신히 밀어넣고 부족한 수면을 청하려니 버스가 출발했다.

 

창 밖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길을 재촉하는 청뚜 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일부 사람은 아침부터 후텁지근한 날씨를 못 이겨서인지 웃통을 벗어제친 채 자전거를 몰기도 했다. 청뚜를 벗어나 두장옌(都江堰)까지 닿는 국도에 들어선지 얼마 되질 않아 옆에 앉은 남자가 잠에서 깨어났다. 고르지 못한 도로 사정에 딱딱한 나무의자가 불편한 듯 보였다.(1999년 청뚜와 두장옌까지 6차선 고속도로가 준공되어 가는 길이 한결 편리해졌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필자의 행색을 찬찬히 살펴본 중년인은 불쑥 질문을 던졌다. 중국 표준어와 쓰촨어는 성조(聲調)가 사뭇 달라 외국어를 듣는 만큼 차이가 난다. 심한 쓰촨 사투리에 무슨 질문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필자가 다시 한 번 말을 해달라고 청하니, 중년인은 사투리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표준어로 말을 걸었다.

 

동물원의 원숭이격이 된 필자

 

“어디까지 가는가?” “송판까지, 당신은?” “난 원촨(汶川)까지 간다. 보아하니 외지인 같은데.” 필자가 잠시 뜸을 들여 한국인이라고 하니, 순간 버스 안은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말을 걸던 중년인부터 주변 승객들, 심지어 버스 차장까지 달려들어 질문 공세를 펼치는 것이었다. 중국인에게 있어 자국어를 하는 외국인을 만난다는 것은 좀처럼 겪기 힘든 경험 때문인지, 큰 호기심을 나타냈다. 아시아 네 마리 호랑이 중 하나인 경제대국, 부패한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까지 보낸 나라, 1988년 서울올림픽 얘기, 남북의 분단 등 한국에 대한 온갖 지식을 펼쳐 보이며 말을 걸어왔다. 쏟아지는 질문에 진땀을 흘리며 일일이 답하는 필자를 버스 승객들은 더욱 신기한 듯 바라봤다.

 

한 시간쯤 달리는 버스 안에 갇혀 동물원 원숭이처럼 사람들의 주목과 질문을 받고 나니, 힘이 쭉 빠졌다. 대충 알고 싶은 사항을 얘기들은 승객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자 버스 안은 다시금 조용해졌다. 주변 풍경은 도시의 흔적이 가시고 가파른 산과 물살이 거세게 흐르는 하천으로 바뀌어 끝없이 이어졌다. 한창 공사중인 도로 곳곳을 지나다 보니 길 위 곳곳에 떨어진 낙석이 즐비했다. ‘이러다 사고라도 당해서 불귀의 객이 되면 어쩌나.‘ 오싹해진 필자의 마음을 위로하듯 주변 사람들이 먹을 것을 권해왔다. 중국인들이 즐기는 해바라기씨(瓜子)에 과일, 과자, 인스턴트 식품 등 자신들이 먹기 위해 준비한 음식 중 가장 좋은 것을 골라 필자에게 건넨다. 거절하기 뭐해 고마움을 표시하고 받으니, 여기저기서 과일과 음식을 전해준다. 누구건 받고 누구건 안받기 힘들어 모든 선물(?)을 접수하니, 손안에는 어느덧 갖가지 음식이 쌓였다.

 

을씨년스러웠던 치앙족의 고향

 

문명의 이기주의에 때묻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가다보니 버스는 어느덧 마오시엔에 도착했다. 마오시엔은 중국에서도 호전적인 소수민족으로 유명한 치앙(羌)족이 몰려 사는 현단위 소재지이다. 한족과는 달리 동그란 얼굴형에 얇은 눈매를 지닌 치앙족은 쓰촨성 아빠(阿壩) 치앙/티베트족 자치주를 중심으로 20만명이 넘는 인구가 흩어져 살고 있다. 예로부터 티베트족과 활발한 교류를 했던 치앙족은 티베트어계의 언어인 치앙어(羌語)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들의 문자를 창달하지 못했다. 문자 없는 민족이 독자적인 자기문화를 유지하기 힘들 듯 치앙족 또한 생활문화는 한족에 동화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은 라마불교를 믿는 신앙심과 호승심을 기르는 갖가지 민속활동을 통해 나름대로의 문화전통을 보존하려 애쓰고 있다.

 

해발 1,200m 고지대에 위치한 마오시엔의 회색빛 도시풍경은 왠지 을씨년스러웠다. 독특한 생김새의 사람들 이외에 눈에 띄는 티베트어 간판이 치앙족 도시에 닿았음을 알려줄 뿐, 다른 한족 산골도시보다 더 가난한 모습은 치앙족의 용맹스러웠던 역사를 기억하는 필자에게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그 옛날 위진남북조시기에 용맹했던 다섯 소수민족 중 하나로, 중국 대륙을 뒤흔들었던 치앙족이 왜 이리 초라해졌을까. 마오시엔을 떠나면서 잠시 상념에 잠긴 필자의 눈앞에 칼로 내리깎은 듯한 계곡이 펼쳐졌다. 비포장도로 위에서 뿌옇게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버스와 좁고 가파른 계곡, 그 사이를 흐르는 강물. 비포장도로를 힘겹게 달리는 고통스러운 버스 여행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4~5km를 걸어서 학교 가는 어린이들

 

그렇지 않아도 딱딱한 나무의자에 반나절을 앉았던 터라 피로가 몰려왔는데, 길마저 좋지 않아 몸은 더욱 고달펐다. 끊임없이 몸을 뒤척이는 필자와 달리 주변 승객들은 습관이 된 듯 곤하게 잠을 자거나 주위 사람과 떠들썩하게 대화를 나누곤 하였다. 버스 창밖으로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운 자태와 계곡 중턱에 듬성듬성 자리잡은 치앙족의 특이한 산채가 필자의 눈을 위로해 주었기 망정이지, 참기 힘든 고역이었다. 몇몇 정거장에 가끔씩 내려 주변 풍경도 둘러보고 볼 일도 보았건만, 몸을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버스의 좁은 좌석공간은 정말이지 원망스럽기만 했다. 헌데 이런 필자의 행복에 겨운 불평을 탓하는 듯, 도로변에는 수업을 마친 산골 아이들이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학교로 보이는 건물에서 4~5㎞쯤 떨어진 거리까지 걸어가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저렇게 힘들게 통학하면서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난 이게 뭔가...' 심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배움의 열정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중국의 밝은 미래를 본 것은 나만의 단견일까?

 

마오시엔(茂縣)을 지난 버스는 점점 가파른 산지로 올라갔다. 전장관(鎭江關)에 이르자, 한 700m정도 높다란 산길이 앞을 가로막는다. '저 위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지만, 고물버스는 용하게도 거북걸음 끝에 반시간 뒤 정상에 올라섰다. 여기서부터는 해발 2,200m이상 고산지대였다. 한라산보다 더 높은 지대를 올랐건만, 버스는 종착점에 닿은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강을 낀 고산지대의 도로를 달리는 버스 밖으로 눈에 띄는 원시의 티베트인 마을들, 고산지대의 환경 때문에 서식하는 1m미만의 키 작은 나무만이 끝없이 펼쳐졌다. 사위가 점점 어둠으로 깔리면서 조바심이 일기 시작했다. '이거 오늘 안에 도착하긴 하나' 불안한 필자를 위로하듯, 버스는 이미 사위가 어두운 고산의 정적을 뚫고 한 마을로 들어섰다. 해발 500m인 대도시 청뚜에서 13시간을 달려 밤 8시가 가까운 시각에 2,800m의 고산도시인 송판에 드디어 도착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