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설명: 청뚜 인민광장의 마오쩌뚱(毛澤東) 석상. 중국 대도시의 중앙광장에 마오쩌뚱 석상이 남아있는 곳은 청뚜가
유일하다.
여행 도착지의 첫번째 과제 ‘지도 사기‘
청뚜의 관문인 쑤앙리우(雙流)국제공항은 중국에서 네번째로 큰 대도시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좁고 낙후됐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여름철에는
고장난 에어컨과 함께 여행객의 ‘왕짜증’을 일으키기 일쑤다.(이런 사정은 2001년 공항청사 확장공사가 완공되어 끝났다) 이것은 청뚜 열차역
또한 마찬가지. 인구 1100만 명이 넘는 도시의 기차역치곤 너무 좁을 뿐만 아니라,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몰리는 사람들로 청뚜역은 언제나
북적거린다. 암표상, 소개꾼, 짐꾼에 갓 도착한 기차에서 쏟아져 나오는 승객들하며 다른 곳으로 떠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청뚜역의 풍경은
여느 번잡한 중국 기차역과 다를 바 없다. 필자가 처음 청뚜에 도착한 지난 1997년 6월 24일 아침에도 역 앞은 온갖 사람들의 물결로
혼잡스러웠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출구 검표소를 빠져 나온 필자를 처음 맞는 사람은 다름 아닌 소개꾼들. 잘 곳을 찾느냐는 물음으로 시작해
일류호텔 시설에 여관급 가격을 받는다는 달콤한 유혹을 던지는 소개꾼이 한 부류라면, 다양한 조건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여행사로 관광에 나서라는
소개꾼은 또 다른 한 축이다. 이런 그들의 공세를 뚫고 기차역 앞 신문판매대로 간 필자가 청뚜에서 첫번째로 한 일은 지도를 사는 것이었다.
여행안내를 위한 ‘i’가 거의 없는 중국의 현실에서 지도는 중요한 나침반 구실을 한다. 이미 마음 속에 정한 숙소가 어느 곳에 있는지, 어떤
교통수단을 타서 가야 할지 참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뚜어런방(多人房)이라고 일컬어지는 도미토리가 드문 청뚜에서 외국 여행객의 안식처는 단연
지아통(交通)호텔을 들 수 있다.
외국인 여행자들의 안식처 지아통호텔
한 방에 세 개의 침대가 있는 구조에 화장실과 욕실은 공통으로 이용하는 지아통호텔이 외국인 배낭족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값이 싸다는 데
있다. 한 침대에 하루 인민폐 40위안(약 6,000원)하는 부담 없는 방값과 비교적 깨끗한 위생상태, 호텔 종사원들과 영어가 가능하기로
유명하다. 또한 친절이 몸에 밴 직원들은 외국인 배낭관광객을 불러모으는데 큰 한몫을 한다. 필자가 도착한 당일 날도 호텔 프런트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으로 북적댔다. 호텔 직원이 건네 준 등기부에 여권을 꺼내 기재된 사항을 일일이 적어 등록하고 5층에 위치한 객실에 올라가 보니, 이미
방안에는 두 명의 서양 룸메이트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전형적인 배낭족으로 나이는 필자와 엇비슷했다.
중국어를 할 줄 아는가 물어보았더니, 둘 다 영어만 가능했다. 영어 실력을 키울 겸 잘 됐다 싶어서 이런저런 여행지에 관련된 질문을
던졌더니, 벨기에에서 온 클라우스가 며칠 전에 지우자이꺼우와 황롱을 다녀왔다고 한다. 느낌이 어떠냐는 물음에 되돌아온 감탄사는 온통 '너무나
아름답다' '세상에 둘도 없는 절경이다' '다시 가보고 싶다' 등 찬사뿐이었다. 본래 계획은 청뚜 시내를 둘러보고 남쪽에 위치한 불교성지
어메이(蛾眉)산과 러산(樂山)대불을 먼저 보는 것이었지만, 클라우스의 끝없는 찬사에 필자의 마음은 뒤흔들리었다. 충분한 여행정보를 많이 알아두자
싶어 꼬치꼬치 질문을 하니, 조금 귀찮은 기색을 보였다. 그러면서 던지는 한 마디. “1층에 있는 여행사나 로비의 게시판에 보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어.”
우연히 눈에 띈 한 배낭족의 메모
시내 구경을 해야 한다며 길을 나서는 이를 더 이상 붙잡을 수 없어 물러서야만 했다. 친절한(?) 클라우스의 충고에 따라 로비로 내려온
필자가 먼저 들른 곳은 온갖 언어로 뒤범벅되어 있는 게시판. 먼저 여행을 마친 배낭족들이 주로 티베트와 지우자이꺼우 가는 방법에 대해 메모를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한글로 남긴 메모 한 장이 눈에 띄어 반가움이 앞섰다. 부산에서 왔다는 이가 여행사 패키지상품을 통해 지우자이꺼우 간
경험담을 남긴 것이었다. 자고 먹고 타고 보는 것을 모두 포함해서 5일간의 일정을 담은 여행사 패키지로 980위안을 내고 다녀왔다는 내용이었다.
가는 길 곳곳에 도로공사가 한창이어서 여행길이 고되다는 주의사항과 여행사 상품은 정해진 시간과 장소 내에 코스를 돌아 아쉬움이 많다는 문구가
이목을 끌었다.
다른 나라 여행객들의 메모 또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어느 여행상품을 이용했고, 어디를 꼭 봐야 하고, 외국인으로써 주의할
것은 무엇이라는 등의 내용들이었다.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겠구나’고 싶어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날짜별로 빼곡이 쓰인 작은 영문 메모지가
우연찮게 눈에 띄었다. 한 독일 배낭족이 남긴 여행일지로, 6월 4일부터 14일까지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형식이 재밌다 싶어 주의 깊게
살펴보니, 철저한 배낭여행식으로 지우자이꺼우를 다녀온 것이다. 놓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필기도구를 꺼내 하나하나 적어보니, 무궁무진한 여행정보가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구간별 차표와 시간에서부터 묵었던 숙소의 방값 및 주거조건, 보았던 관광명소의 입장료와 필수 관람코스, 놓쳐서는 안
될 풍경들, 살 만한 특산물들 등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긴장과 자기위안이 교차된 출발전야
이미 구전이 되어버린 여행정보에 간단한 내용만 소개되어 있는 가이드북을 들고 와서, 어찌해야 할 바 모르던 필자에게 그 메모는 천군만마와도
같았다. 더 많은 정보 탐색을 위해 로비에 진을 치고 있는 여행사에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건수 올릴 수 있는 손님을 맞은 여행사 직원은
아름다운 풍경이 담긴 컬러 화보와 다녀온 이들이 남긴 감사편지를 들쳐 보이며 패키지상품을 권유했다. 비포장인데다 일부 구간을 한창 공사중인
도로가 험해서 교통사고가 수시로 나고, 짧지 않은 여정임을 되풀이 강조하며 유난하게 안전을 들먹였다. 게시판을 훑어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마음을 굳힌 필자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여행지에 대한 사항을 물어본 뒤 생각을 해보겠다는 답변을 남기고 여행사를 나섰다.
호텔을 나와 바로 지우자이꺼우 방향으로 가는 버스편이 있는 기차역 부근의 시먼(西門) 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겼다. 메모에서 일깨워
준대로 다음 날 출발할 송판(松藩)까지 가는 버스편 출발시간을 미리 알아보고 46위안 하는 버스표를 미리 구입했다. 그 날 하루 종일 청뚜 시내
곳곳에 산재한 당대 시성 두보의 고가(古家)와 제갈량의 신위를 모신 무후사, 도교사원 청양궁을 둘러보면서도 지우자이꺼우에 대한 생각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과연 나 혼자 그 오지를 제대로 갈 수 있을까'하는 긴장에 떨리면서도, '중국어 하나도 못 하는 양코배기도 다녀왔는데 나라고
못 할건가'하는 위안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저녁 호텔로 돌아온 필자가 클라우스에게 내일 배낭여행 형식을 통해 지우자이꺼우로 간다고 하니 적지않이
감탄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데, 까짓 오지에서의 여행에 별일 있겠나'라고 되뇌면서 잠을 청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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