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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寨溝/黃龍3: 끈질긴 지우자이꺼우/황롱과의 인연

박영복(지호) 2007. 1. 11. 18:00
九寨溝/黃龍3: 끈질긴 지우자이꺼우/황롱과의 인연 






* 사진 설명: 1- 1973년 2천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난 세상의 모습을 드러낸 빙마용(兵馬俑)의 1호갱. 발굴이 모두 끝낸 1,3호갱 외에 2호갱은 아직도 발굴이 진행중이다. 2- 1987년 고탑(古塔)을 수리하던 중 드러난 지하궁에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발견된 파먼스(法門寺). 발견된 사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석가모니 진신사리이고, 지하궁에서 출토된 수많은 문물들은 국보급 진귀품이다.


쓰촨에 관심 가지게 된 인연


필자가 쓰촨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96년 가을이었다. 당시 시안(西安)에 머물러 어학연수를 받고 있던 필자는 중국 고대문명의 고도인 시안의 문화적 향기 속에서 푹 빠져 지냈었다. 기원전 10세기 서주부터 당대까지 중국 역사의 중심 무대였던 시안은 빙마용(兵馬俑)을 대표로 하는 진-한대와 파먼스(法門寺,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발견된 곳), 치엔링(乾陵, 당 고종과 측천무후의 합장묘)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당대 유적이 널려 있다. 이런 시안에 깊이 빠져 지내던 필자는 1년 반의 어학연수 기간동안 본업인 중국어 공부보다는 역사유적 순례에 세월을 보냈었다. 대부분의 강의를 땡땡이 친 뒤 자전거 한 대를 의지하여 시안 시내 구석구석과 인근 지역에 산재한 유적을 찾아다니느라 정신 없었던 경험은 지금도 아련한 추억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역사 순례길에 시간을 보내던 필자가 늦가을의 기운이 완연한 어느 날 싱지아오스(興敎寺)를 찾았다. 싱지아오스는 17년 동안 인도와 그 주변 국가를 여행한 후 수천 권의 불교경전을 번역하고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남긴 승려 현장(玄?)의 사리가 봉안된 절이다. 현장의 흔적을 더듬어 사찰 경내를 둘러보던 필자가 한 무리의 관광단과 부딪친 것은 운명과도 같았다. 열댓 명으로 구성된 '깃발' 여행단은 여느 중국인들과 다름없이 가이드의 설명을 열심히 들으면서 자신들끼리 유쾌하게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헌데 관광단원끼리 떠드는 말은 아무리 귀를 쫑긋하고 주의를 기울어 봐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중국어를 배운지 한 해도 안 되어 간단한 회화만이 가능했던 시절이었지만, 중국 표준어(普通話)와 지방 방언의 차이는 어느 정도 구별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내뱉는 말들은 너무나도 난해한 방언이었다.


“쓰촨은 하늘이 축복한 땅“


'광둥(廣東)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어느 지방에서 왔을까?' 의구심이 점점 높아가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필자는 결국 관광단을 이끌고 온 작은 체구의 여성 가이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관광단 사람들 어디서 왔나요?“ ”쓰촨 청두에서 온 고등학교 선생님들이예요.“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필자의 말을 용케도 바로 알아듣고 친절하게 답해주는 가이드. 허나 이를 어쩌랴. ‘쓰촨’이라는 단어는 알아들었지만 어느 지방인지 바로 연상이 되지 않던 필자는 답답했다. ”쓰촨? 어디에 붙어있는 동네인데...“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곤혹스러워 하자, ”아니, 쓰촨도 몰라요? 당신 혹시 간첩?“이라고 묻는 가이드의 농담에 진땀을 뺐다. ”아뇨, 저는 시안에서 유학하는 한국인이랍니다."


오해를 풀기 위해 말을 꺼내는 순간, “유학생이라고!“라 외치며 몰려든 관광객에게 필자는 빠져나갈 틈없이 포위되었다. 이어 사람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질문들... ”한국 어느 지방 사람이냐?“ ”어느 학교에서 공부를 하느냐?“ ”왜 중국에 유학을 왔느냐?“ ”왜 시안에서 중국어를 배우느냐?“ 등 너무나 갑작스런 대중(?)의 주목과 듣기에도 정신없는 질문에 당황을 했다. 한동안 수습을 못하던 정신을 가다듬고, 유창하지 못한 전투중국어와 콩글리쉬를 섞어가며 관광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자의 낮은 중국어 실력을 배려하여 표준어를 천천히 말해주며 관심을 기울던 한 40대 여선생님이 질문을 했다. ”쓰촨에 왔었나요? 다음에 오게 되면 우리들에게 연락해요.“ “쓰촨에 뭐 볼 게 있습니까? 여기 시안만 하겠어요?”라 대꾸하는 필자의 시큰둥한 반응에, 돌연 엄숙한 표정으로 일장 연설을 펼치는 여선생님. “그런 소리 마세요. 쓰촨이야말로 역사와 자연 문화유산이 풍부한 곳이랍니다. 또 먹거리 많지, 사람들 인심 좋지, 살기 편하지. 그야말로 하늘이 축복한 땅이에요.”


짤 없이 계획한 쓰촨여행


'쓰촨이 하늘의 축복을 받은 땅이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원래 뻥이 심한 중국인의 과장법이라 여긴 필자는 실소를 머금으면서 쓰촨 선생님들과의 대화에 꽃을 피웠다. 그 날밤 시베이(西北)공업대학교 유학생 기숙사로 되돌아 온 뒤, 한국에서 가져온 가이드북을 뒤적이며 쓰촨이 어떤 동네인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건 필자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청뚜을 중심으로 하여 쓰촨의 주요 관광지가 소개되어 있는 가이드북의 내용은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허나 그리 많지 않은 소개 분량이 아쉬워, 좀더 많은 여행정보를 얻기 위해 곧바로 아래층에 거주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 유학생을 찾아갔다. 자신들의 가져온 가이드북을 선선히 빌려준 두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방으로 온 필자는 다음 날 새벽녘까지 사전을 벗삼아 쓰촨지역 소개분을 독파하고 말았다. 그런 후 확신에 차서 내린 결론은 '내년 여름엔 일찌감치 방학하고(?) 쓰촨을 먼저 여행한 뒤, 꿈꾸어 왔던 실크로드로 떠나자'는 것이었다.

이런 목표가 현실로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반년여가 흐른 97년 6월. 중국정법대학으로부터 입학통지서를 일찌감치 받아 놓고, 준다는 시베이대학의 어학코스 수료증도 마다한 채 짐을 꾸려 쓰촨으로의 여행길에 나섰다. 정확히 6월 24일부터 7월 20일까지 빠듯한 일정으로 짜여진 쓰촨여행을 완수한 것이다. 마침 그 기간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때와 겹쳐서, 도교 성지인 칭청산(靑城山)에서 홍콩의 하늘에 오성홍기가 올라가는 장면을 TV중계로 시청할 수 있었다.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하룻밤의 중국인 룸메이트와 함께. 이러했던 쓰촨여행 하이라이트는 뭐니 해도 지우자이꺼우(九寨溝)와 황롱(黃龍), 루얼까이(若爾蓋)를 들 수 있다. 1주일 여동안 갖은 고생을 하면 다녀온 쓰촨의 오지였기에 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방중으로 한번 더 가다


뜻하지 않게 새천년에도 중국에서 계속 거주하게 된 필자는 쓰촨의 백미인 지우자이꺼우와 황롱을 한 번 더 여행할 수 있었다. 시안에서 베이징(北京)으로, 다시 충칭으로 거처를 옮기면서도 쉽지 않던 지우자이꺼우/황롱행은 2000년 8월 중순 다시금 실현되었다. 오래 전부터 앓아오신 당뇨병 치료를 위해 충칭을 방문하신 어머니께서 방문하셨기 때문이다. 충칭으로 오셔서 집과 병원만 오락가락하신 어머니께 중국의 산 좋고 물 맑은 명승지를 보여드리려 애가 탔었다. ‘비싼 비행기값 치르시고 이 멀리까지 오셨는데, 공해 심한 충칭의 인상만 남겨드리면 안 되는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머리를 스쳐간 곳이 바로 지우자이꺼우와 황롱이었다. 헌데 여기에 난관이 있었다. 97년 여행길에 엄청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어 청뚜에서 지우자이꺼우까지 가는 길이 염려가 된 것이었다.

이에 현지 사정을 탐문하기 위해 청뚜에 사는 중국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요즘 청뚜 날씨는 어떻지? 지우자이꺼우/황롱을 가려는데 괜찮아?” 조심스러운 물음에 되돌아오는 굿뉴스. “요새 이곳 날씨는 청뚜 답지 않아. 날씨가 너무 좋아. 지우자이꺼우 가는 도로도 작년에 포장되어서 편해졌지. 너 어머님도 오셨는데 모시고 거기나 다녀오지, 그래?” 교통사정이 나아졌다는 소식에 바로 어머니를 모시고 청뚜로 달려가게 되었다. 중국인조차 평생동안 꿈에 그리나 다녀오기 힘든 지우자이꺼우/황롱의 아름다운 절경을 두 번 보게 되었다. 게다가 장성한 이후 처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한 여행길에 나눈 많은 이야기는 모자간의 정을 더욱 깊게 했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지우자이꺼우를 떠오를 때면 언제나 마음이 훈훈하고 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