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설명: 단정한 자태를 자랑하는 촨주스(川主寺) 전경. 뒤편으로 마니통을 돌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언뜻
보인다.
상식을 넘는 거대하고 다양한 티베트
한국에서 티베트를 바라보는 시각은 극히 피상적이다. 지난
몇년동안 국내를 시끄럽게 했던 14대 달라이라마의 방한문제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들은 같은 이해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 첫번째는 티베트의
영역범위에 대한 인식이 너무 협소하다는 점이다. 지금 중국 영토의 일부분인 '시장티베트인자치구'(西藏藏族自治區, Tibetan
Autonomous Region)는 과거 티베트의 전체 영토에 1/2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 전체 국토의 1/5을 차지하는 티베트의 명확한
영역이해 없이 티베트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대하면서 거친 고산지대에 사는 티베트인들의 생활방식은 티베트의 수도 라사나 동부, 중부,
서부가 각기 판이하고 서부의 쓰촨 내에서도 각 지역마다 독특한 개성을 유지하고 있다.
티베트인 스스로를 부르는 표현 또한
가지각색이어서, 중부지방 사람들은 '보빠'(博巴)라 자칭하고 서부지역은 '깡빠'(康巴)라고 한다. 지금의 칭하이(靑海)성과 간쑤(甘肅)성, 쓰촨
서북부에 사는 티베트인들은 스스로를 '안뚜어와'라 부르고, 쓰촨 일부 지역에서는 '지아룽와'라고도 자칭한다. 언어학적 방면에서 또한 티베트어는
티베트-미얀마어계이긴 하지만, 크게는 3가지에서 많게는 수십 가지까지 다양한 방언이 존재한다. 웨이장(衛藏) 깡(康) 안(安)으로 대표되는 3대
방언은 거의 외국어나 다름없어 대화소통에 어려움이 크다. 문자의 경우 7세기초 분열된 티베트를 처음으로 통일한 영웅 송첸간포(松贊干布)왕이
창건한 자모문자가 지금까지도 전체 티베트지역에 널리 쓰이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한 종파의 우두머리일
뿐
티베트를 이해하기 위한 두 번째 고리는 라마불교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다. '라마'(喇마)는 티베트어를 중국어로 음역한
것으로 '스승' 혹은 '윗사람'이라는 뜻이다. 불교가 갓 전래됐을 당시 티베트인들은 사찰의 우두머리나 고승들을 라마라고 높여 부르고 일반
승려들은 '짜빠'라 불렀다. 그러던 것이 후세에 이르러 ‘라마’ 한 단어로 통일하게 된 것이다. 티베트에서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대략
7세기경으로 인도에서 직수입되기도 하고 중국에서 건너오기도 했다. 초기 티베트 본래의 다신숭배적인 원시신앙과 큰 마찰을 빚던 불교는 고원지대의
특수한 역사적 환경 속에 융합하면서, 10세기경에 와서는 독특한 지역적 특색을 지닌 라마불교가 형성된다.
거대한 티베트 영토만큼
전래 경로도 다양했던 불교는 중국과 인도에서 들어온 승려들의 교파가 서로 달랐다. 티베트 승려들이 불법을 배우고 불경을 번역하며 제자들은
양성하는 것도 역시 그 갈래를 달리했다. 이런 연유로 각 교파들은 서로 자기의 깃발을 내걸고 자신들이 남보다 낫다는 것을 표방하고 나섰다.
여기에 각지에 할거했던 다양한 지방 토호세력들과 결탁을 하면서 ‘정교합일’(政敎合一)이라는 사회체제를 갖추게 된다.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티베트인의 정신세계와 생활문화를 지배하는 라마불교 종파는 거루파, 닝마파, 거쥐파, 사가파 등이다. 외부 세계인들이 라마불교 전체와
동일시하는 달라이 라마는 바로 거루파의 우두머리이다.
가장 오래되고 쓰촨이 본산인 닝마파
현존하는
라마불교의 가장 오래된 종파는 닝마(寧瑪, Nyingma)파이다. 11~12세기 고승 슈오츄웅빠와 주어푸빠에 의해 창립된 닝마파는 8세기 인도
승려인 연화생(蓮花生)을 창시자로 받든다. 이들은 옛 티베트에서 성행되었던 주문을 숭상하고 그 전통을 계승하는 것을 주된 과업으로 삼고 있다.
또한 성립 당시 새로운 불법을 숭상하는 기타 교파와 대립되었기에 낡은 교파, 즉 '닝마'파라 불리게 되었으며, 승려들이 모두 붉은 모자를 썼기
때문에 '붉은 모자 교파' 또는 '홍교'(紅敎)라고도 불린다. 쓰촨 내에서는 더거(德格)의 주칭스(竹慶寺), 바이위(白玉)의
시아투어스(呷拖寺), 깡띵(康定)의 진깡스(金剛寺) 등은 모두 닝마파 사찰이다. 이 중 시아투어스는 닝마파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사원으로, 최전성기에는 140여간의 건물과 300여백에 달하는 승려들이 수도했었다. 사아투어스 역시 1958년 중국의 대티베트 정화작전시 사원
일부가 파괴되었다 82년 다시 중건하여 개방하였다.
거쥐(喝擧, Kagyu)파는 마얼빠, 미라르빠가 창시한 종파로 '거쥐'는
'입으로 전한다'는 뜻이다. 이 교파는 불법을 구두로 전하는 것을 중요시하여 귀로 듣고 마음으로 이해하기에 힘쓰고 경전을 중시하지 않는다.
거쥐파의 승려들은 불법을 닦을 때 흰 옷을 입었기 때문에 '백교'(白敎)라고도 불린다. 라마불교에서 활불환생(活佛還生)제도를 가장 먼저 실행한
거쥐파는 일반 승려들이 모두 남자인 반면에 사찰의 주지가 여승인 '샤딩스'(沙丁寺)라는 절이 있다. 오늘날 티베트 카즈에 있는 이 사원의 주지를
'두어지파무'라 부르며 라마불교의 유일한 여활불로 받들어 모신다. 쓰촨에서 이름난 거쥐파 사원으로는 량탕(壤塘)의 중량탕스(中壤塘寺)가
있다.
원대 국사를 역임했던 사가파 교주
티베트 사가(薩迦, Sakya) 지방을 중심으로 교파가 발흥한
사가파는 사찰의 벽에 홍-백-남 세 가지로 칠을 하기 때문에 '화교'(花敎)라고도 불린다. 사가파의 창시자는 티베트 콴(款)씨 가문의 후예인
궁췌지에부로, 11세기 사가에 절간을 지우고 스스로 교주가 되었다. 이 교파의 승려들은 혼인하여 자식을 둘 수 있는데 자식을 낳은 뒤에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사찰의 주지를 가족에 따라 전승하는 제도도 확립했다. 이에 따라 정치와 종교 두 가지 권력을 한 가족에
집중시킨 전범을 만든 것이다. 원대에 가장 강력했던 사가파는 5대 교주인 바스빠가 원의 제사(帝師)에 봉해지고 티베트의 실권을 장악하는
정교합일의 지방정권까지 성립시켰다. 하지만 14세기에 등장한 거루파에 의해 대체되고 사가와 쓰촨 더거에만 그 세력이 축소되었다. 더거의
껑칭스(更慶寺)는 인경원(印經院)을 포괄하는 중요한 사찰이다.
'계율을 잘 지킨다'는 뜻의 거루(格魯, Gelug)파는 라마승들이
누른 모자와 옷을 쓰고 입기에 세칭 '황교'(黃敎)라고도 한다. 라마거루파는 불교에서 가장 늦게 형성된 교파인데, 승려들이 계율을 엄격히 지키게
하고 불경을 공부하는 것을 착실하게 순서에 따라하게 하며 종교조직체를 강화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달라이 라마나 판첸 라마가
모두 거루파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이다. 16세기 중엽부터 티베트 전지역에서 가장 큰 교세와 영향력을 행사했던 거루파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다른
세 종파를 훨씬 압도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티베트의 정치적 경제적 실권을 거루파가 잡고 있는 것이다. 쓰촨의 유명한 거루파 사원으로는
간쯔(甘孜)의 따진스(大金寺) 간쯔스-링주어스(靈雀寺), 리탕(理塘)의 창칭춘크얼스(長靑春科爾寺) 등이 있다.
"한화 속에서
독자성을 유지할 것"
청뚜의 서남민족대학(西南民族學院)에서 불교사를 전공하고 있는 한 티베트인 대학원생(27세)은 필자에게
"간혹 외국인들이 14대 달라이 라마에 대한 견해나 그 분을 결부시켜 라마불교 전체에 대한 묻는데 이것은 한마디로 난센스"라고 말했다. 더거지방
출신으로 닝마파 라마교를 믿는 그는 "14대 달라이 라마는 분명히 모든 티베트인들의 지도자이고 우리 닝마파 사람들 또한 그 분을 존경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사회적 현실에 입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닝마파 신도들에게는 자신의 교파 지도자가 바로 전 닝마파 신도들을 이끄는
정신적 지도자여서 구태여 14대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원하거나 숭배하지는 않는다"고 실소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쓰촨의 티베트인들이
한족(漢族)과 오랫동안 같이 살아 적지 않게 한화(漢化)가 된 것은 사실"이라며 안타까워하면서도 "라마불교의 정신세계와 우리들만의 독특한
생활문화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 이 기사는 '四川宗敎槪覽', '中國少數民族宗敎槪覽'(중앙민족대학출판사),
'藏族簡史'(서장인민출판사) 등의 내용을 참조하여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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