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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寨溝/黃龍17: 서부대개발의 중심지 쓰촨권

박영복(지호) 2007. 1. 11. 18:10
九寨溝/黃龍17: 서부대개발의 중심지 쓰촨권 






* 사진 설명: 황롱으로 가는 해발 2,500m에서 4,300m까지의 산간도로를 정비하는 민공들.

21세기 중국 국가역량을 총동원한 서부대개발

1999년 6월 17일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서 열린 '서북5개성 국유기업 개혁과 발전 좌담회'에서 중국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은 회의와 별도로 이례적인 발언을 하여 주목을 끌었다. 장 전 주석은 "새로운 천년이 도래하고 한 세기가 바뀌는 중대한 시점에서 명확한 새 목표를 중국공산당과 전국 인민들에게 내보여야 한다"면서 "낙후된 중-서부지역 개발을 위해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지역개발을 위한 만발의 준비에 총력을 다할 것"을 강조했다. 보통 베이징에서 열리던 관례를 깨고 서북부지역의 중심도시 시안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장 전 주석은 내륙지역 개발의 필요성을 강력히 거론하는 한편, 이것이 앞으로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우선순위에 두고 추진해야 할 최대 현안임을 천명하여 주목을 끌었다. 장 전 주석의 발언이 있은 지 6개월 뒤인 2000년 1월 16일, 중국정부는 국무원령 3호로 '중앙과 각 부서의 서부대개발에 관한 중요결정'을 반포했다.

이 행정령에서 중국정부는 주롱지(朱鎔基) 전 국무원 총리를 조장으로 하여 전 행정부서의 장관들과 지방인민정부 지도자들이 이 참여하는 개발지도소조의 구성을 명시하면서, 서부지역 개발을 위한 구체적인 마스터플랜까지 제시했다. 행정령의 내용에는 국가 차원에서의 전방위적 개발의지를 대내외에 밝히고, 중장기적인 포석을 위한 개발인력의 배양 및 효율적인 재배치를 명시하였다. 이는 중국정부가 서부지역 개발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뒤 2년여가 지난 지금 내륙직할시 충칭을 비롯한 서부지역의 6개 성(산시, 간쑤, 칭하이, 쓰촨, 구이저우, 윈난)과 4개 소수민족자치구(신장, 티베트, 광시, 닝시아)는 곳곳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인프라 건설공사로 지역의 변모를 하루가 다르게 일신하고 있다. 이 서부지역 11개 성 중 가장 인구가 많고 인프라시설이 비교적 잘 되어 있으며, 상당 수준의 공업화를 이룬 쓰촨성이 여러 면에서 중요시되고 있고 있다.

중국 4위인 대쓰촨권의 경제실력

쓰촨은 중국 서남부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창장(長江) 상류를 끼고 있다. 동쪽으로 충칭시, 서쪽으로 티베트, 남쪽으로 윈난(雲南)성과 꾸이저우(貴州)성, 북쪽으로 칭하이(靑海)성, 간쑤(甘肅)성, 산시성 등 7개 성시와 인접하고 있는 쓰촨은 총면적이 568천㎢로 중국 전체의 5.9%에 달한다. 아열대 계절풍기후대에 속하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서 쓰촨의 연평균 기온은 16~18도으로 겨울에는 온난하고 여름에는 무더운 기후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1997년 충칭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분리되어 나가기 이전까지 쓰촨지역의 인구는 1억1천3백만 명으로 중국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사는 성이었다. 비록 올해 와서는 8천여만명의 인구로 전체 순위가 3번째로 내려앉았지만, 성의 행정소재지인 청뚜(成都)에만 1천2백만에 달하는 주민들이 거주할 정도로 내륙최대 규모의 내수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 쓰촨이다. 직할시 승격이후에도 쓰촨과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충칭을 더한다면, 대쓰촨권(大四川圈) 시장은 외국의 내로라 하는 기업이 무시하지 못할 거대시장이기도 하다.

거대한 인구, 비옥한 토지, 풍부한 천연자원 및 창장 상류라는 지리적 이점을 반증하듯, 대쓰촨권은 중국 서남지역 경제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대쓰촨권에는 전통적인 산업인 농업과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한 야금 화학 우주항공 기계 등의 공업이 골고루 발달되어 있다. 또한 방대한 인구를 부양하기 위한 생필품 생산기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고 내륙지역의 각종 물산집산지로써 상업을 비롯한 서비스업도 발달하였다. 다른 서부 성시와 달리 있어 1-2-3차 산업이 비교적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쓰촨권 시장이 대규모 인구의 내수를 기반으로 하는 자급자족적 경제구조를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구과다로 인하여 99년 현재 충칭과 쓰촨의 1인당 GDP는 각각 587, 527미달러로, 전국평균인 861달러에도 훨씬 못 미치고 있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은 개혁개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0년대 이후 연평균 약 11% 증가하여, 지난 99년 대쓰촨권의 GDP는 5199억 위안(전국의 6%)로 연해지역인 장쑤(江蘇)성 산동(山東)성 광둥(廣東)성에 이은 전국 4위이다.

대쓰촨권 개발의 정점을 이룬 3선건설

대쓰촨권이 오늘날과 같은 경제실력을 쌓은 것은 지난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53년 1차 5개년 경제계획을 추진했던 중국은 소련식 공업화 모델을 채택하여 중공업을 위주로 한 발전정책을 실시하였다. 이 기간동안 소련으로부터 지원 받은 프로젝트는 모두 156개에 달하였는데, 그 가운데 1/3이상을 서부에 배정하는 각 지역마다 고른 발전에 기하였다. 건국이래 순조로운 경제성장을 구가했던 중국에 재앙이나 다름없는 운동이 벌어졌으니, 주역은 공산당 최고 지도자였던 마오쩌동(毛澤東)이었다. 그는 1958년 5월 '더 많이, 더 빨리, 더 좋게, 더 절약하자'라는 사회주의 건설노선을 제시하며, 전 중국인민에게 이른바 '대약진(大躍進)운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신의 계시나 다름없었던 마오의 요구는 '15년 안에 영국을 따라 잡는다'라는 허황된 구호로 포장되면서 중국의 노동자와 농민들을 밤낮 없이 강철 제련에 몰아넣었다. 60년까지 생업과 관계없는 철강 생산에 모든 정력을 쏟아 부었던 농민들은 때마침 닥친 대한파에 수천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굶어죽는 참상을 겪게 된다.

1960년대 들어 급변했던 국제정세는 중국 서부지역에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64년 5월 언제라도 미국과 소련에 의한 핵무기 공격이 있을 것이라 주장했던 마오쩌동은 내륙 후방에 전략적 전선건설을 제창하면 3선(三線) 건설을 추진했다. 즉 중국을 지역에 따라 1, 2, 3선으로 나누고 연해(1선)와 중부(2선)에 있는 모든 군수기업을 서부(3선)지역으로 옮기는 대역사를 벌인 것이다. 또한 당시 당면한 최대과제였던 취약한 교통망의 확충을 위해 군을 대규모로 동원, 철로 건설에 매진하기도 했다. 오늘날까지 중국을 대표하는 국유기업으로 이름을 떨치는 창홍(長虹)전자나 창안(長安)자동차, 지아링(嘉陵)오토바이 등을 비롯하여, 42개의 연구소와 297개의 군수공장이 모두 이 시기에 창립된 것이다. 청두-충칭-꾸이양(貴陽) 삼각지대를 중심으로 64~80년까지 17년간 계속 되었던 3선 건설은 대쓰촨권 건설에 있어 커다란 전환기를 가져다 준 정책이었다.

한시도 지체할 수 없게 된 서부의 낙후성

어려운 3선 건설작업 끝에 1975년에 공업총생산량 비중은 중국 전체의 25%까지 올라갔던 서부지역은 78년부터 시작된 경제개혁-대외개방에서는 철저히 소외당했다. 연안에 위치한 성시들이 경제특구 혹은 경제개발구를 만들어 외국의 자본을 끌어들인 뒤 눈부신 경제 발전과 대외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지만, 서부는 과거에서의 정체만을 거듭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6,70년대 3선 건설시 국방에의 요구에 따라 지어졌던 국영군수기업들의 존재는 서부지역의 발목을 잡았고, 이에 따라 중국정부는 적극적인 대외개방을 꺼리었다. 또한 내륙 깊숙이 위치한 서부지역은 교통이 불편하고 물류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탓에 외국자본을 유치할 만한 투자 메리트가 적었다. 이러한 상황 아래 연해와 서부지역간의 경제적 격차는 갈수록 늘어나 90년대 초반에 와서는 그 차이를 메울 수 없을 지경에 다다른다. 이를 보여주듯, 92년 서부지역에 투입된 중앙정부 차원의 투자는 단 16%(서북부 8.1%, 서남부 7.9%)으로 공산 건국이래 가장 낮은 수치였다.

'커부롱후안'(刻不容緩,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이라고 외치며, 서부대개발을 추진하는 중국정부의 정책결정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지금도 서부 주민들에게 있어서는 '잊어버린 시간'으로 불리는 지난 20년의 정체된 발전은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을 타지로 내몰리게 했기 때문이다. 80년대 후반부터 가난한 내륙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등진 채 연안도시로 몰려들었던 '민공차오'(民工潮)와 '리우왕'(流亡)이라는 사회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4,5년 이전까지 지역간 커져가는 경제적 격차와 서부의 낙후성으로 인한 해당 주민들의 심리적 박탈감은 이미 중국에게 국가존립의 위기까지 몰고 가는 상황이었다. 이런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한다면 중국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기에 지금 중국정부가 추진하는 서부대개발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추진의지가 엿보인다. 허나 중앙정부 주도하에 추진되었던 3선 건설이 선진화된 기술과 수준 높고 의욕에 찬 연구인력 및 노동자를 투입했음에도, 현지의 경제상황을 도외시하여 무리한 투자로 근본적인 한계를 노출시켰던 아픈 과거가 지니고 있다. 따라서 50년을 내다보고 벌이는 인프라 건설 위주의 서부지역 개발이 향후 나타날 무수한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추진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 이 기사는 '四川年鑒2000'(사천성인민정부판공청), '西部開發大戰略與新思路'(중국공산당중앙당교출판사), '四川與中國西部開發'(사천인민출판사), '중국통상정보'(KOTRA), '중국국가투자환경'(한국수출입은행) 등을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