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실 茶室
인간은 하루에 세 끼의 식사를 한다. 그 식사를 어디서 하는가. 격식대로 시설을 갖춘 집에서는 식당에서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집에서는 거실이나 마루에서 할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데서나 하지는 않는다. 가능한 한 깨끗하고 아담한 곳에서 한다. 茶 역시 똑같은 것이다. "茶는 다실에서 마시는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 원형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겠다.
다실은 되도록 본채와 떨어진 깨끗한 곳에 있으면 좋겠고, 그 면적은 3평 안팎이면(일본에서는 1.5평을 선호한다) 충분하다. 다실에는 손님을 접대할 몇몇 가구와 다구, 요란하지 않은 서화가 걸려있으면 되겠다. 주인과 손님이 茶를 마시면서, 바라볼 수 있는, 다실에 걸맞는 정원이 있으면 일품이라 하겠다.
이런 다실이 없으면 차선책으로 응접실 또는 서재를 다실 취향으로 사용한다. 茶란 소란스럽거나 비린내가 나는 것을 싫어하므로 가급적 정숙한 곳을 택한다. 허나, 서민주택 또는 단칸방에선들 茶 못마신다는 법은 없다. 참으로 훌륭한 차[行茶]는 오히려 검소한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茶의 선택과 보관
곡우穀雨 5일 전 또는 3일 후 밤새 구름이 끼지 않고, 이슬이 내린 좋은 날 찻잎을 따서 茶를 만드는 건,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현대인의 바쁜 일정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茶는 식품점이나
슈퍼마켓에서 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제다업체는 5개 안팎이어서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할 수 없고, 또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므로 초심자는 선배의 자문을 얻어서 구입하여야 한다.
우리나라 茶값은 비교적 비싼 편이어서 장차 대만, 중국, 중동 등지에서 수입이 불가피할 것이라지만, 우리의 茶가 세계 제일의 맛을 지니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강산이 수려하면 좋은 茶가 생산되는 것이다.
아무튼 일단 구입한 茶는 노상 시원한 곳에 두어야 하고, 일단 개봉을 했으면 필요한 만큼 덜어내고 남은 건 밀봉을 하여 습기를 막을 것이며, 가급적 10일 안팎에 마시는 것이 좋다. 茶를 아껴먹을 속셈으로 개봉 후 한 달, 두 달 묵히는 것은 좋지 않다.
물의 선택과 보관 차는 물의 신(神)이요, 물은 차의 체(體)라 하였다. 좋은 물이 아니면 그 신기가 나타나지 않고,
정다(精茶)가 아니면 그 체를 엿볼 수 없다 하였다. 산정(山頂)의 샘물은 가볍고, 수하의 샘물은 맑으며 무겁고, 석중(石中)의 샘물은 맑으며 달고,
사중(砂中)의 샘물은 맑고 차가우며, 토중의 샘물은 담백(淡白)하며, 유동하는 물은 고인 물보다는
좋고, 그늘의 물은 햇빛 받은 물보다 좋다. 진수(眞水)는 특별한 맛이 없고, 향기 따위가 나지 않는다.
다경(茶經) 에는 다음의 말도 있다. "산수(山水)는 상(上,) 강수(江水)는 하(下,) 우물(井水)은 최하(最下") 수돗물을 마시는 우리들의 처지로 보면, 옛날 사람들의 물의 환경은 그 모두가 약수이자,
청정수 아니었겠는가 마는 그토록 물을 가려서 마시는 것으로 보면,
물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하겠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동서고금의 모든 출중한 다인들의 저서에는 어떻게 하면 좋은 차를 얻을 수 있을까,
어디서 좋은 물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대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차에 쓰이는 수돗물 또는 도시 근교에서 얻는 이른바 약수 따위는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설명
하겠다. 우선, 큰 용기의 뚜껑을 열고 100도로 5분 가량 가열하여 불순물 약물 따위를 없앤다.
그 물을 깨끗한 용기(옛날은 오지그릇을 썼다.) 에 담아서 그늘진 시원한 곳에 적벽돌 두 장을 놓아
그 위에 얹어 놓고 마포 베로 덮어두었다가 수시로 떠내어 쓴다. 茶를 넣을 때는 필요한 만큼의
물을 떠내어 다시 100도로 끓였다가 70도 안팎으로 식힌 다음 차를 넣는다.
음다 飮茶 차를 마시는 데는 생리적인 효능과 정신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은 이미 설명한 대로이다.
그러므로 좋은 차, 좋은 물로 적절한 온도와 적절한 시간에 마시는 건 물론 이려니와,
마지막으로 마시는 순간의 행위 또한 소홀하게 해서는 안 된다. 첫째, 조금은 경건한 마음으로 찻잔을 들어올려 두 손으로 감싼다. 둘째, 가늘게 피어오르는 향기를 살며시 맡는다. 색깔도 감상한다. 셋째, 소리 나지 않게 조금씩 세 번쯤 나누어 마신다.
입 안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넘기고, 모두 마신 다음에 입술을 다물고 있으면,
입 안 가득히 다향(茶香)이 스민다. 결코, 소리내어 꼴깍 마셔 치우는 행위는 금물이다. 재탕 삼탕 또한 그렇게 한다.
다과(茶菓)를 들거나 다담(茶談)을 곁들이는 건 좋으나
이때에도 난잡하거나 흐트러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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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구 茶具
다구 또한 골고루 갖추자면 한이 없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런 것이 있다는 것만 소개하겠다.
풍로 風爐 : 동이나 철鐵로 주조鑄造한 것, 탕을 끓이는 데 쓴다.
거 : 숯을 담는 광주리, 대를 엮어서 만든다.
탄과 : 탄을 쪼개는 1자쯤의 육각철봉
화협 火莢 : 부젓가락
복 : 생철로 만든 솥
교상 : 솥을 받치는 십자모양의 상
협 夾 : 차를 볶는 수저, 청죽 또는 정철숙동으로 만든다.
지대 紙袋 : 차를 담는 두꺼운 한지 주머니
전 : 차를 가는 기구
라 : 말차를 만들 때 쓰는 체
합 盒 : 삼나무로 만든 차를 담는 그릇
칙 則 : 말차를 뜨는, 대로 만든 숟가락
녹수낭 水囊 : 물을 담는 구리로 만든 통
표 瓢 : 조롱박을 반으로 쪼개어 만든 작은 바가지. 배나무로 만들기도 한다.
죽협 : 차를 젓는데 쓰는 젓가락, 또는 차솥
차궤 : 소금을 담는 자기
다관 : 차를 우려내는 주전자
다완 : 다관의 차를 부어 마시는 찻잔
받침 : 찻잔의 받침대
분 : 다완과 받침대를 담는 삼태기
식힘그릇(찻물을 식히는)
막사발(오물을 버리는)
찰 札 : 종려 껍질로 만든 수세미
다건 茶巾 : 마포수건
구열 具列 : 중요한 다구를 넣는 궤, 나무 또는 대로 만든다.
도람 : 구열보다 더 크고 모든 다구를 집어넣는 창
다인이 좋은 다구를 고루 갖고 싶어하는 건 당연하다. 예를 들면,위의 다완(찻잔)만 하더라도 세상에
나와 있는 것이 수천 가지이며, 앞으로도 무한대로 걸작품이 나올 것이니 말이다.
뒷처리
차行茶는 홀로 넣고, 홀로 마시며, 홀로 느끼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 때로 둘, 셋, 넷이 하는 수도 있
기 마련이지만, 그때에도 수선스럽거나 떠들거나 난잡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차는 신분
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시키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행하고 스스로 뒷처리를 하는 것이다.
다구, 다기를 말끔히 씻고 닦아서 제자리에 갈무리하여야 한다. 그걸 다도茶道의 본분本分이라
한다. 이상으로 설명한 바는, 이른바 茶를 열심히 하는, 연조를 쌓은 다인들의 견해로는 수박 겉핥기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젊은 사람들 특히 바쁜 일정으로 쫓기는 사람들은 여러 모로 거부
반응을 나타낼 건 뻔하다.
"이 바쁜 세상에 거 무슨 잠꼬대냐"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인들의 대답은 그게 아니다. 그 대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산업사회에서의 바쁜 일정의 사람일수록 차行茶를 하여야 한다."
"茶의 기본을 익히고 나면 커피를 타 마시는 것보다도 쉽다."
"각양 각색의 공해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차만큼 유익한 음료는 없다."
"사무실에서의 간편한 행다법과 티백을 이용하거나, 1인용 찻잔 등 편리한 방법도 개발되고 있다."
"우선 茶 를 시작하라. 그러면 차차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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