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휴식/연예,오락,유머글

[유머] 서방을헐값에 드립니다.

박영복(지호) 2005. 7. 18. 14:01




 
 

        
        
        
        
        서방을 팝니다 
        헌 서방을 팝니다 
        반 십 년쯤 함께 살아 
        단물은 빠져 덤덤 하겠지만 
        허우대는 아직 멀쩡합니다. 
        키는 6척에 조금은 미달이고 
        똥배라고는 할 수 없으나 
        허리는 솔찬히 굵은 편, 
        대학은 나왔으나 머리는 깡통입니다. 
        직장은 있으나 수입은 모릅니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출근하고 
        밤늦게 용케 찾아와 잠들면 그뿐. 
        잔잔한 미소 한 번, 
        은근한 눈길 한 번 
        달착지근한 눈맞힘도 
        바람결에 날아가버린 
        민들레 씨앗된 지 오래입니다. 
        음악이며 미술이며 영화며 연극이며 
        두 눈 감고 두 귀 막고 
        방안의 벙어리된 지 오래입니다. 
        연애시절의 은근함이며 
        신혼초야의 뜨거움이며 
        생일이며 결혼기념일이며 
        이제는 그저 덤덤할 뿐, 
        세월 밖으로 이미 잊혀진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일 뿐, 
        눈물방울 속에 아련한 무늬로 떠오르는 
        무지개일 뿐, 추억줄기일 뿐. 
        밥 먹을 때도 차 마실 때도 
        포근한 눈빛 한 번 주고받음 없이 
        신문이나 보고 텔레비나 보고, 
        그저 덤덤하게 
        한마디의 따근따끈한 말도 없고. 
        매너도 없고 분위기도 모르는지 
        그 흔한 맥주 한 잔 
        둘이서 나눌 기미도 없고. 
        일요일이나 공휴일의 
        들뜨는 나들이 계획도 
        혼자서 외출하기, 
        아니면 잠만 자기. 
        씀씀이가 헤퍼서 말도 잘해서 
        밖에서는 스타같이 인기 있지만 
        집에서는 반 벙어리, 
        자린고비에다 술주정꾼. 
        서방도 헌 서방이니 
        헐값에 드립니다. 
        사실은 빈 가슴에 바람 불고 
        눈 비 내리어 서방 팝니다, 
        헐값에 팝니다, 
        주정거리듯 비틀거리며 말은 하지만 
        가슴에는 싸한 아픔 눈물 번지고 
        허무감이 온몸을 휘감고 돌아 
        빈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서방 팝니다. 
        헌 서방 팝니다며 울먹입니다. 
        흩어진 마음, 구멍이 송송 뚫린 듯한 
        빈 가슴을 추스리며 
        안으로만 빗질하며 울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