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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총리’ 상처뿐인 통과…앞길도 ‘세종시·4대강’ 험난* [정운찬 총리 인준]

박영복(지호) 2009. 10. 2. 06:58

‘반쪽총리’ 상처뿐인 통과…앞길도 ‘세종시·4대강’ 험난*

[정운찬 총리 인준]
야당 ‘국감서도 정운찬 의혹 계속 공세’ 예고
여권에선 ‘청와대와 대립각 세울까’ 견제

» 자유선진당 의원들이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운찬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을 막으려고 투표함 입구를 손으로 막고 한나라당 의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정운찬 국무총리가 28일 국회 인준의 벽을 넘었다. 정 총리는 임명동의안이 가결되자 “가마를 타면 가마꾼의 어깨를 먼저 생각하라던 어머니의 마지막 당부를 되새기며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여당의 지원사격 속에 소득세 탈루 등 숱한 의혹의 ‘지뢰밭’을 건넜지만, 그의 앞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당장 야당의 퇴장 속에 인준된 ‘반쪽 총리’라는 정치적 부담은 물론, 규명되지 않은 도덕성 문제와 세종시 등 정국 현안이 쌓여 있는 탓이다.

 

상처뿐인 영광 정 총리는 당장 정국의 ‘뇌관’인 세종시 문제에 맞닥뜨려야 한다. 그의 세종시 원안 수정이라는 ‘소신’은 야권과의 관계 악화에 더해 충청권 민심 이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 총리가 정치권 및 충청·수도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세종시 문제에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연착륙에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은 “앞으로 야당으로부터 리더십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한데, 세종시 원안 변경 등을 계속 주장하고 나선다면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야당은 당장 다음달 5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를 ‘정운찬 국감’으로 만들겠다고 벼르는 상황이다. 기획재정위·정무위 등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의혹 해명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정 총리의 도덕성과 세종시 수정추진론을 집중적으로 따지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청문회에서 드러난 정 총리의 도덕성 문제가 여론에 취약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여당 일부에서도 정 총리의 도덕적 ‘결함’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도덕적 결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갈 경우 현 정부가 주장하는 ‘실용’ 이미지에 두고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한 초선 의원은 “국민들에게 ‘흠이 있어도 상관없다’는 메시지를 주게 됐다”며 “‘실용 피로증’을 가속화해 국정 운영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소속 충청권 의원들이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의화 총리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이 청문회 경과보고서를 낭독하는 동안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인준을 반대하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 소신과 역할 사이 줄타기 학자의 ‘소신’과 총리의 ‘역할’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도 주목된다. 학자 시절 정부의 4대강·감세 등 주요 정책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혀온 정 총리는, 지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지난 50년 동안 산림녹화를 열심히 하지 않았냐. 그 맥락에서 이제는 강도 좀 정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며 4대강 사업에 찬성하고, “정책의 일관성”을 강조하며 감세정책을 옹호한 바 있다. 정 총리는 중도·개혁 성향의 경제학자로서 쌓아온 입지와 현 정부의 보수적 경제정책이 충돌할 경우 난감한 처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의 의견에 따를 경우 ‘소신을 굽혔다’는 비난을, 대립할 경우엔 ‘국정 파행의 주역’이라는 비난을 받는 딜레마에 놓인 것이다. 김창수 자유선진당 의원은 이날 본회의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평소 (정 후보자의) 학자적 소신을 존경해 왔으나, 청문회를 거치며 그 소신이 앵무새 소신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공격했다. 반면, 여권에선 정 후보자가 주요 정책에 대해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을 견제하고 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대통령을 넘어서는 총리가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대선가도 ‘가시밭길’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보여준 도덕적 문제와 ‘무소신’ 논란은 정 총리의 이후 행보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애초 대선후보급으로 영입되면서 박근혜 전 대표와 정몽준 대표 등과 같은 반열에 올랐으나, 청문회에서 불거진 숱한 의혹들이 정 총리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박근혜계(친박) 쪽은 안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한 수도권 친박 의원은 “처음 정 후보자가 지명됐을 때는 ‘박근혜 견제용’으로 데리고 왔다는 분노가 있었지만, 청문회를 거치며 그다지 경쟁력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수도권 30~40대의 표심을 잡을 수 있는 중도·개혁적 이미지가 탈색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그간 올곧게 펴 온 주장에 국민들이 지지를 보냈던 것인데, 청문회 과정에서 4대강 문제 등에 대해 소신을 굽히는 모습에 실망한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