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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진시황 병마용(兵馬俑, 삥마용)

박영복(지호) 2007. 1. 11. 17:43
[서안]진시황 병마용(兵馬俑, 삥마용)







* 사진 설명: 진시황 병마용의 1호갱 내부. 모든 병용의 크기, 의상, 얼굴 모습과 표정, 몸짓 등이 각기 다르다.

ㅇ 위치

- 진시황 병마용은 서안시에서 동쪽으로 35km, 진시황릉에서 1.5km 떨어진 토구(土丘, 투치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ㅇ 유래

- 1974년 3월 섬서성(陝西省) 임동현(臨潼縣) 안채향(安彩鄕)의 양페이옌(楊培彦), 양즈파(楊志發), 양취엔이(楊全義) 등 세 농민은 마을 사람들의 결정에 따라 자신들이 대대로 살아온 마을 남쪽 감나무 숲 가운데에 관개용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땅을 깊게 파 내려가던 중 세계 제8대 기적의 하나인 진시황 병마용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 진시황(기원전 247~219)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종식하고 대륙을 통일한 과업과 통일사업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폭군으로 부각되는 이중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진시황과 관련된 유적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늘날 중국인들을 먹여 훌륭한 문화상품이 되고 있는데, 만리장성(萬里長城)과 병마용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 중국 고대왕조에서는 군대를 좌·중·우 또는 상·중·하 3군으로 편성하였다. 병마용은 1974년 양씨 농민들에 의해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1976년, 1980년 세 번에 걸쳐 발굴되었으며 발굴 순서에 따라 1호갱, 2호갱, 3호갱으로 명명되었다. 병마용은 고대 군대 편성과 같이 전체 3군으로, 3호갱의 지휘부, 1호갱은 오른쪽에 있는 우군, 2호갱은 왼쪽에 있는 좌군으로 배치되었다.

- 전국시대를 통일할 당시 진나라는 병사 100여만, 전차 1,000여승, 전마 1만 여필에 달하는 위풍당당한 3군 진용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병마용은 당시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연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발굴된 병마용은 원래 건설할 때보다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7천여건의 병마용과 검, 창, 극, 긴 창, 쇠뇌, 수(殳), 화살촉, 금구(金鉤) 등 총 수량이 무려 3만여 점에 달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ㅇ 볼거리

- 운동경기장 입구를 연상케 하는 병마용박물관 경내를 들어서면 정면으로 1호갱, 그 옆으로는 2호갱, 오른쪽으로는 청동거마(靑銅車馬)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주력군이 배치된 1호갱은 길이 230m, 넓이 62m, 총 면적 14,260평방미터로 3개의 병마용 갱 중에서 가장 크다. 갱내에 6,000여 점의 토용(土俑), 토마(土馬)와 40여 승의 목조 전차를 안치하여 전차와 보병으로 혼합 편성된 장방형 군진이다.

- 1호갱 내부에서 보면 군진이 선봉, 주력, 후위, 익위 등 4부분으로 크게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갱의 가장 앞에는 갑옷을 입지 않은 3열 경장비 보병용으로 매열 68점, 도합 204점이 있다. 머리에 투구를 쓰지 않고 속발을 하고 다리에 행전을 매고 손에 궁노를 든 이들 토용은 용감하고 활 잘 쏘는 선봉부대이다.

- 1호갱 선봉부대 뒤에는 격리토담에 의해 11개 동·서 향의 통로로 나뉘어져 있는데, 38종대의 전차, 보병이 서로 엇갈아 배열되고 있다. 이들 토용은 대부분 갑옷을 입고 정강이에 대발을 치고 손에 창, 긴 창, 건 등 병장기 및 소량의 궁노를 들고 있는데 중장비한 갑사에 속한다. 이들은 전차와 유기적으로 조합된 군진 주력으로 기세가 날카롭다.

- 1호갱 내의 남·북 양쪽 변두리에는 무사용이 각각 남·북을 향해 1열로 서 있는데, 군진의 좌·우익 측으로 그들의 임무는 적군의 ‘성동격서’(聲東擊西)를 방지하는 것이다. 군진의 제일 후단에는 대군과 등을 지고 서쪽을 향해 서있는 무사횡대로서 군진의 후위이다. 그들의 임무는 주로 적들의 배후기습을 방어함으로써 대부대 진군시 후방의 근심을 제거하는 것이다. 도열된 병마용 뒤에는 발굴되어 갓 복원작업을 끝낸 토용과 토마가 늘어져 서 있다.

- 지원부대로써의 2호갱에는 1호갱의 동단 북쪽에 위치하며 1호갱과 약 20m 떨어져 있다. 갱의 평면은 곡척형(曲尺形)으로 동서 길이 124m, 남북 넓이 98m, 면적이 약 6,000평방미터이다. 시추 및 시굴자료의 추산에 의하면 이 갱내에는 전차에 메인 토마 350필, 기병용 안마 116필, 각종 무사용 900여점, 도합 1,400여점의 토용·토마와 89대의 목제 전차가 있는데, 보병·기병·전차 3개 병종을 혼합 편성한 군진을 이루고 있다.

- 2호갱의 군진 포진방법은 4개의 작은 진을 'ㅁ'자형으로 잇달아 구성했다. 첫 번째 진은 노병(弩兵)진으로 곡형진의 최선봉에 위치하여 도합 330여명의 궁노수(弓弩手)로 구성되었다. 그 중 약 160명은 갑옷 중장비를 한 궤사(跪射) 토용으로 8개 종대로 나누어 진중에 자리해 있다. 그 둘레에는 약 170여 점의 전포 경장비를 한 입사(立射) 토용이 진을 에워싸고 있다.

- 2호갱의 두 번째 진은 곡형진의 우측에 위치, 64대의 전차로 구성, 전차마다 3명의 전사가 타고 있는데 1명은 어수(御手), 2명은 갑사(甲士)이다. 전차의 앞·뒤로 수행하는 예속 보병이 없는 것으로 보아 상대적으로 집중된 순 전차편대임이 알 수 있다. 세 번째 작은 진은 곡형진의 중부에 위치하여 전차·보병·기병으로 구성된 진이다.

- 2호갱의 마지막 진은 곡형진의 좌측에 위치한 기병진으로 108명의 기병을 위주로 하고 6대의 전차를 보조로 하였다. 이들 기병은 키가 크고 몸이 건장하며 머리에는 가죽모자를 쓰고 발에는 가죽장화를 신었으며 몸에는 흉부와 배부를 보호하는 짧은 갑옷을 입고 한 손에는 활, 다른 한 손에는 고삐를 쥐었는데 날렵하게 보인다. 전마는 피둥피둥 살이 찌고 안장과 다래가 비치되어 있다. 갱내에서 발굴된 토병과 토마, 병기 등 유물을 하나씩 전시하여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 지휘소의 역할을 했던 3호갱은 1호갱 서단 북쪽에 위치, 1호갱과 25m, 동쪽의 2호갱과 30m 떨어져 있다. 총면적은 500평방미터도 안되는데 세 갱 가운데 면적은 가장 작고 병용도 제일 적다. 토용 66점, 전차를 끄는 토마 4필, 목제 전차 1승이 출토되었다.

- 3호갱 내의 무사용은 전투대형에 따라 편성된 것이 아니라, 남·북 2개 곁채에 분포되어 있는데 손에 의장병 병기인 동수(銅殳)를 들고 얼굴을 마주한 채 통로 양쪽에 정렬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지휘관을 보위하는 경위부대임을 추측할 수 있다. 3호갱은 보통 군진이 아니라 옛사람들이 일컫는 '군막'(軍幕), 즉 사령부의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 2호갱에서 50m 떨어진 청동거마박물관은 1978년 진시황릉에서 발굴된 채색 동거마(銅車馬)와 진시황, 병마용에 관련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청동거마는 모두 2대로, 원래 진시황릉 서쪽 20Km 거리의 한 부장 갱에 매장되어 있었다. 출토시 이 2대의 청동거마는 길이 약 7m, 넓이 약2.3m의 대형 나무관 속에 앞뒤로 서쪽을 향해 놓여 있었다. 청동거마의 크기는 진짜 말과 수레의 1/2에 상당하다.

- 청동거마는 출토시의 전후 순으로 고고학자들에 의해 1호 수레, 2호 수레로 불리고 있다. 2대의 청동거마는 모두 쌍륜 단채로 네 필의 구리말을 메웠지만 형상과 구조는 서로 다르다. 병마용박물관에 전시된 청동거마는 중국에서 발견된 청동거마 중 차형이 제일 크고 장식이 가장 화려하고 모방이 매우 정교하고 또 완전하게 보전하다. 그 구조의 복잡함과 기예의 정심함은 이왕에 출토된 그 어떤 구리기구도 비교할 바가 못 된다.

ㅇ 여행팁

- 진시황 병마용의 개방시간은 매일 08:00~17:30이며, 입장료는 65위안(우리돈 8,500원)이다. 교통편은 서안기차역에서 출발하는 306, 307번이 있는데, 평균 10분마다 발차하여 종점인 병마용 정거장에 정차한다. 서안역에서 출발하는 버스의 차비는 5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