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내게 모카 커피 아이스 블렌디드와 차 중 무엇을 택하겠냐고 묻는 것은, 빨간 고춧국물이 자박자박한 갈치조림과 말간 재첩국 중 무얼 먹겠냐고 묻는 것과 똑같았다. 에스프레소 커피의 농염한 맛에 비해 차의 맛은 너무 순진하게만 느껴졌고, 테이크아웃 커피점의 주문대 앞에서 이기는 쪽은 늘 커피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티백을 제외한 진짜 차는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즐기기엔 결정적인 결함이 있는 음료가 아닌가? 팔팔 끓인 물을 약간 식히고 다기를 따뜻하게 데우고 여러 단계를 거쳐 따르고… 맛을 음미하는 데 적당한 장소와 시간이 필요한 차는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음료라며 부정적인 뉘앙스로 결론지은 적도 있다. 또 따져보면 그 종류는 어찌나 많은지! 똑같이 생긴 찻잎이 각각 산지와 생산 시기에 따라 손에 꼽을 수도 없을 정도로 엄청난 종류를 양산하고 있지 않은가? 제대로 즐기려면 동아전과 한 권 분량을 공부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은 차에 대한 무지를 한동안 외면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차에 대해 본격적으로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 <한겨레신문>에 난 ‘적차 논쟁’을 읽고부터. 알고 보니 올 3월부터 차 전문가로 이름난 지허 스님과 여연 스님 사이에서 ‘전통차’에 대한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있었다. 논쟁의 발단은 지허 스님이 선암사 일주문 밖에 있는 자생차 밭에서 직접 일구고 덖어낸 차를 두고 ‘진짜 우리차’라고 주장한 데 있었다. 거기서 그쳤으면 그럭저럭 넘어갈 수도 있었을 법한데, ‘기존의 녹차는 모두 일본에서 들어온 왜색차’라고 일갈한 대목에서부터 문제가 불거진 듯. 녹차를 주로 만들어온 여연 스님은 “지허 스님이 만든 차는 녹차에서 변형된 것이지 결코 차의 주류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차는 차나무, 만드는 법 등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었다. 존경받는 스님들이 이토록 앙칼지게 수선을 피워야 할 정도로 차가 대단한 것인가 싶어 놀랍기도 했지만, 나는 곧 논쟁 자체보다 설왕설래를 통해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들에 주목했다. 지허 스님이 ‘진짜 우리 차’라고 주장한 ‘금화산이’는 80g에 무려 15만원이나 한다. 숭늉처럼 구수한 맛이 나는 이 차를 얻기 위해선 회원 가입을 해야 하는데, 현재 1백여 명 정도가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임권택 감독, 작가 한승원, 홍익대 미대 안상수 교수 등이 그 주요 멤버들. 이 마지막 대목에선 문득 가회동 작은 빌딩의 주인이자 사진가인 김영일 씨가 예전에 들려준 말이 떠올랐다. 그는 건물을 찾은 손님에게 전통 다기를 이용해서 직접 차를 끓이고 따라서 대접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이다.
“지인들끼리 돈을 모아 차 밭을 사거나 차 농장에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요. 좋은 토질과 기후에서 자란 제대로 된 차를 즐겨보자는 거죠. 산지에서 직송으로 집까지 배달되는데, 일년에 서너 번 정도 받아 먹을 수가 있어요. 초봄 햇차는 연한 우유맛이 나고, 11월에 차 꽃이 질 때 올라온 차는 진한 난향이 나죠.” 물론 이런 ‘맞춤’ 차의 가격이 저렴할 리는 만무하다. 당시 그가 보여준 가장 저렴한 품종이 6만원 정도였으니 상등급 차에는 아마 ‘금화산이’ 못지않은 가격이 붙어 있을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끼리 지방에다 다원을 마련하고 차를 가져다 마시는 일. ‘살롱주의’의 혐의가 짙은 이 행위들이 딱히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두 가지 사실만은 인정해야 했다. 정신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이 세상의 한쪽에서 간 크게도 천천히 차 맛을 음미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차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의식하고 있건 아니건 간에 ‘구별짓기’를 행하고 있다는 것.
분위기에 취하다 “결국 깊고 그윽한 차의 맛 때문인가요?” 나는 일본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한 세트 스타일리스트 김성민 씨를 통해 일본의 한 다도가에서 성장한 여인과 이메일로 인터뷰를 했다. 사람들이 차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그녀라면 정확히 터득하고 있을 것 같았다. 그녀가 보내온 장문의 답장 요지는 이랬다. “일본인들은 차에 밥을 말아 먹을 정도로 차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맛이라는 건 언제나 두 번째 이유일 뿐입니다. 차가 사람들을 사로잡는 첫 번째 이유는 ‘정서’입니다. 정중동을 느끼게 하는 그 여유 말입니다.”
마치 우문현답을 들은 듯한 느낌이었다. 조용한 분위기, 부드러운 동작, 물을 따르는 소리… . 차보다도 차를 즐기는 그 분위기를 사랑한다는 대답은 압구정동에 위치한 앤티크 홍차 카페 ‘런던 아이’의 정영숙 사장의 입에서도 똑같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10년 동안 런던에 살면서 느꼈던 서양의 차 문화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같은 차 이파리로 녹차와 홍차를 만들 듯, 동서양 티 테이블의 풍경은 달라도 차를 즐기는 그 마음은 똑같습니다. 깨끗한 찻물을 도자기로 만든 찻주전자에서 끓여낸 후 적당한 온도로 식기를 기다리는 순간. 예쁜 다기 세트를 테이블에 세팅한 후 둘러앉아서 호스티스가 차를 따라주길 기다리는 순간. 차보다는 차를 마시기까지의 그 온화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사람들은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기왕 이야기가 ‘분위기’로 흘렀으니 말인데, 이 경지에서 더 나아간 사람을 꼽으라면 조선의 유명 산수화가인 추사 김정희를 들어야 할 것이다. 서른 살에 다산 정약용의 아들 유산의 소개로 동갑내기인 초의로부터 해마다 차를 얻어 마시기 시작한 그는 제주도에 유배 가서도 차나무를 재배할 정도로 차를 사랑했다고 한다. 그가 남긴 시구를 보면 차의 맛이나 분위기를 넘어서 차의 존재 자체를 각별히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고요히 앉았노라니 차가 한창 익어 향기가 나기 시작하는구나/ 신비한 그 어느 때에 물이 흐르고 꽃이 열리네.”
동서양 문인들의 예민한 정서를 자극했던 차의 매력은 커피와는 다른 ‘일상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슈퍼에서 파는 녹차 티백과 1년에 단 이틀만 수확한다는 중국의 백차가 같은 계급에서 소비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차는 자고로 평등한 음료로 통했다. 특히 동양과 아랍권에서는 차 마시는 일이 일상적인 생활이다. 허름한 중국 식당이나 조그마한 이집트 카페는 물론 기차역, 열차 안, 심지어 야영지 안에서도 차를 마시는 풍경은 익숙하다. 인도에서는 아직까지도 행상이 직접 차를 나르며 팔고, 중앙 아시아의 외딴 지역에서는 야크의 젖으로 만든 버터를 차에 넣은 ‘버터티’를 마신다. 이 차들은 테이크 커피점에서처럼 주문을 해야 하거나 다양한 플래버를 요구해야 하는 게 아니라 싱가포르의 재스민차나 중국의 우롱차, 말레이시아의 보차처럼 언제나 다같이 나눠 마실 수 있는 물 같은 것.
재미있는 점은 차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수록 필연적으로 그 평등함에 균열이 온다는 것이다. 모든 기호품이 그렇듯이 차 역시 원래는 특권층의 전유물이었고, 중국으로부터 뒤늦게 차를 받아들인 유럽의 여러 나라에는 여전히 그 여운이 강하게 남아 있다. 차를 본격적으로 즐기려고 마음먹고 보면 준수해야 할 형식들이 고급 레스토랑의 읽기 어려운 메뉴판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차를 마시면서 눈요기와 식욕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한 것은 프랑스의 귀족들. 지금도 유럽의 많은 정통 티살롱에선 화려한 프린트와 금은 세공이 더해진 귀한 다기들이 선호되고 있다. 더불어 차를 주재료로 한 요리와 고급 다과류를 만들어내면서 차와 관련한 식도락의 장이 펼쳐졌다. 육류 요리에는 레드 와인을, 해산물 요리에는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는 것처럼 프랑스의 차 애호가들은 음식에 따라 다양한 차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닭고기에는 중국의 라푸싼샤오종차를, 향료가 가미된 음식에는 로터스 녹차를 마시는 등. 또 하루 중 마시는 차의 종류에도 구분을 지어놓았는데, 오후에는 다즐링차나 녹차 같은 가벼운 차를 마시고 오전에는 과일차류의 가향차를 마시는 것이 서양인들의 기본적인 룰이다.
묘미에 반하다 인제대 이광주 교수가 쓴 좰동서양의 차 이야기좱에는 ‘차’나 ‘티’라는 이름은 둘 다 중국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적혀 있다. ‘차’는 광둥어 계열인 반면, ‘티’는 유럽이 17세기 이후 ‘Tai’라는 푸젠어 계열을 받아들인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원이 한 뿌리이듯 모든 차는 같은 차나무의 잎으로 만들어진다. 사전적으로 정의하자면, 차는 산다학과에 속하는 상록 관엽수인 차나무의 어린 잎을 따서 가공하여 만든 것이다. 차나무 뿌리는 몸보다 3배나 길다고 하는데, 놀라운 점은 이렇게 터를 단단히 잡고도 1년을 더 준비하고 나서야 엄지손가락만한 찻잎을 만들어 내민다는 것! 이 귀한 찻잎들을 완전히 발효시켜 만든 게 홍차, 발효시키지 않은 게 녹차, 극히 짧은 시간 발효시킨 게 반발효차로 차의 종류는 크게 이 세 가지로 나뉜다. 상층부에 달린 가장 작은 잎부터 하단부의 넓은 잎까지 어떤 잎을 쓰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어느 시기에 수확한 차의 잎을 쓰느냐에 따라서 차의 등급이 결정되고 차의 산지에 의해서도 다양한 차들이 탄생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을 꼽으라면 인도의 다즐링과 아쌈, 영국이 차를 재배하기 위해 사들였던 실론 섬의 실론 등이 있다.
“하지만 차의 진정한 묘미는 블렌딩에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차를 많이 마신다는 영국인들을 예로 들어보죠.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티는 아침에 우유를 넣어서 마시는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예요. 적갈색에 스위트한 향이 최고인데, 그 티백 안에는 아쌈, 실론, 다즐링 등에서 재배된 찻잎이 블렌딩되어 있습니다.”
이는 롯데백화점에 매장을 연 영국 헤로즈 티 살롱 관계자의 말. 영국 왕실에 납품되는 것으로 유명한 헤로즈의 블렌드 티는 아쌈과 실론, 다즐링, 닐기리, 케냐 등 믹스된 각각의 홍차 맛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윽한 풍미를 유지하는 내공을 자랑한다. 하이 티 스페셜, 모닝 딜라이트, 선라이즈 브렉퍼스트, 블렌드 넘버14 등 헤로즈에서도 손꼽히는 블렌드 티들을 맛보면 부드러운 향기와 떫은맛, 적당한 감칠맛 등 오미를 자극하는 맛을 확인할 수 있다. 청담동의 살롱 드 떼의 조명숙 과장은 이 완벽한 맛의 조합을 위해서는 ‘시음 전문가’들의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못박는다(‘시음 전문가’란 차를 블렌딩하는 공인자격사를 일컫는다). “티 살롱에서 선보이는 고유한 블렌드 티는 무궁무진합니다. 하지만 시음 전문가들이 따르는 원칙은 한 가집니다. 홍차, 녹차, 과일차, 허브티가 서로의 맛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화롭게 블렌딩되어야 한다는 것.”
교양을 완성하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에서 주인공 소년의 아버지는 차에 곁들일 거대한 설탕 덩어리들을 조각내고 있다. 그러나 조지 오웰은 <맛있는 차 한 잔>이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설탕이 차의 맛을 떨어뜨리며 나이가 들수록 더 진한 차를 좋아하게 됐다는 고백을 한다. 어떤 게 맞는 걸까? 많은 나라에서 차 특유의 떫은맛을 제거하기 위해 밀크나 레몬, 설탕 등을 넣고 있다. 그러나 차 애호가들은 퀄리티가 아주 떨어지지 않는 이상, 스트레이트로 마실 것을 권한다. 세계 각지에서 직수입한 수십여 가지의 질 좋은 차를 마실 수 있는 티 살롱 ‘마티네’의 관계자는 진정한 차의 색과 맛, 향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녹차는 예부터 은은한 비취색에 옅은 우유나 치즈맛이 나는 것을 최고로 쳤습니다. 향은 풋풋하고 순하며, 청량한 것을 선호했습니다.” 반면 홍차는 한 가지 색을 최고로 치지 않는다. 호박색, 금색, 회록색 등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을 모두 인정하는데 그 대신 맛과 찻물에서 최고를 가린다. 최상등급의 홍차는 떫은맛, 쓴맛, 감칠맛, 단맛이 나면서 오미를 자극하고 찻물이 투명하며 빛이 나야 한다.
차는 오감으로 마신다고 한다. 귀로는 찻물 끓는 소리를, 코로는 향기를, 눈으로는 다구와 차를, 입으로는 차의 맛을, 손으로는 찻잔의 감촉을 즐기기 때문이다. ‘런던 아이’의 정 사장은 차를 마시는 행위는 교양 그 자체라고 강조하면서 차 마시는 법을 드라마틱하게 직접 시연해 보였다. “등을 꼿꼿이 펴고 앉아서 한 손으로 찻잔을 들어올린 후, 다른 한 손으로 살짝 잔을 받쳐야 합니다. 입술에 천천히 잔을 가져다 댄 후 한 모금 정도 마시는데, 이때 후루룩 소리가 나서는 절대 안 되고, 차를 바로 목구멍으로 넘겨서도 안 됩니다. 앞니 세 개로 차를 잘근잘근 씹어서 혀로 넘어가게 한 후 삼켜야 하죠. 이 때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미소를 짓는다면 더욱 좋겠죠. 앞에 사람이 있다면 45도 각도로 살짝 고개를 돌려서 마시는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차를 다 마시고 나서의 행동도 중요하다. 빈 찻잔에 남은 향기를 맡거나 입 안에 남은 잔향을 음미하며 잠시 기다렸다가 아주 살짝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려놓아야 한다. 탁주 사발 내려놓듯 테이블에 탁 하니 내려놓아서는 절대 ‘교양’을 완성하지 못한다.
자연의 정신을 품은 차 요조숙녀와 귀부인들끼리 둘러앉아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교양의 완성판을 연출하건, 해질 무렵 사막의 한가운데서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며 숭늉 들이키듯 마시건 간에 차가 인간에게 선사한 효용은 같다. 차를 매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자연의 음료를 몸으로 흘려보내면서 건강한 삶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얼루어>의 런던 통신원 박정언 씨는 이렇게 말한다. “영국에서는 하루에 여러 차례의 티타임을 갖습니다. 아침에 한번, 점심 전에 한번, 점심 후에 한번. 퇴근 전 한번. 퇴근 후 저녁에 한번. TV를 보는 대신 쉴새없이 차를 마시면서 영국인들은 대화를 나누고 삶의 활력을 찾고 있습니다.”
알면 알수록 차의 세계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방대하게 느껴진다. 생활 속의 차가 인간에게 미친 영향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유럽의 <라이프>지는 새 천년을 앞두고 지난 천년의 세계사적 대사건 1백 가지를 선정했는데, 그 가운데 차의 유럽 전래가 초래한 삶의 패턴의 변화를 28위로 올려놓았다. 영국의 처칠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이런 말을 남겼다. “영국군에게는 군수품이 아니라 차가 필요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위의 인간들은 어디에선가 차를 마시고 있을 것이다. 영국인은 연간 1천5백 잔, 미국인은 2백 잔, 러시아인은 5백 잔, 독일인은 1백60잔, 프랑스인이 1백 잔을 마시고, 일본은 세계 7위의 차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차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은 아예 어떤 수치 계산도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차 밭에 서서 차를 따거나 기계로 밀거나 커다란 무쇠솥에 차를 덖고 있을 것이다. 차가 위대한 것은 지허 스님의 표현대로, 그것이 자연의 정신을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햇살 아래서 대지의 기를 흡수한 차는 솥 안에서 ‘댓잎에 첫눈 내리는 소리’를 내고 ‘한겨울 봄날 같은 햇볕이 숲에 비칠 때 피어오르는 옅은 안개’ 같은 김이 올라야 비로소 완성된다.
차를 맹숭맹숭한 본처처럼, 커피를 달콤한 애첩처럼 여기던 나의 입맛은 차를 둘러싼 다양한 박물지들을 접하면서 당연히 바뀔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 앞에는 중국 푸지 지방의 고산지대에서 날아온 녹찻잎이 경건히 놓여 있다. 희고 미세한 털이 보송보송하게 달려 있는 게 보기만 해도 신선하고 아릿한 향이 전해오는 느낌이다. 책상 서랍을 뒤져 먼지가 풀풀 날리는 도자기 컵을 꺼내 물로 깨끗이 닦고는 거름망에 이 찻잎들을 조심스레 넣는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뜨거운 물을 붓는다. 찻물이 우러나오길 기다리면서 나는 조용한 기쁨에 젖는다. 차를 온전히 이해하는 이라면 내가 왜 이런 감상적인 글귀를 적고 있는지 알 것이다. 차, 티, 테. 전세계인에게 지금 이 순간 다양한 발음으로 불리고 있을 이 음료는 신이 인간에게 선사한 가장 소박하고 근사한 선물임에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