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에서 우리 감정을 건드리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임나일본부’이다. 이른바 ‘임나일본부’와 ‘남선경영설南鮮經營說’로서 가야는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이다. 가야는 일본의 식민지였으므로 한국사에 포함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인 것이다. 당시의 불굴보고서를 보면서 일제의 발굴 업적에 감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러한 발굴들은 고대에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과 남선경영설의 고고학적 근거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고대에 왜열도는 한반도에 견주어 아주 낙후되어 있었으므로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일제의 학자들은 그들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일본서기》에는 왜가 고구려, 백제, 신라, 임나 등과 전쟁을 하거나 사신이 오고 갔다는 기록이 자주 보인다. 임나는 가야를 말한다. 특히 임나에는 외의 관리가 파견된 기록이 보이므로 애가 가야를 지배했음이 분명하다고 그들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에 있었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사람들이 왜열도로 이주하여 그곳에 나라를 세우고 자신들의 조국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일본서기》의 내용 대부분은 왜와 이들의 관계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나라들은 왜열도에 세워진 우리 민족의 분국으로서 고대에 우리가 오히려 왜열도를 지배했음을 알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일부 일본 학자들은 슬그머니 그들의 종래 주장을 변형하여 임나일본부는 왜가 가야를 지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가 아니라 가야와 통상을 하거나 외교 통로로 이용하기 위해 가야에 설치해 놓은 기구였을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우리 학자들 가운데도 이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일본서기》의 기록을 보면 한반도에 있었던 가야가 멸망한 뒤까지도 왜는 계속해서 임나와 교류를 가진 것으로 되어 있다. 즉 《삼국사기》에 따르면 한반도의 가야는 서기 562년에 완전히 멸망하였는데 《일본서기》에는 그 뒤 서기 646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임나와 사신 왕래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왓다. 이러한 사실들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임나는 한반도에 있었던 가야가 아니었음을 분명히 해주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북한의 조희승이 김석형의 견해를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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