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를 하다 보면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기독교인에게 상처를 입고 복음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사람, 기독교를 싫어하는 타 종교인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보면 여러 기지 무안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전도는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입니다. 수많은 사명 중에 가장 긴급하게 우선순위를 두고 감당해야 될 사명이 바로 전도의 사명입니다. 즉 하나님이 계획하고 디자인하신 내 삶의 목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목적이 바로 전도의 사명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생애 중 마지막에 기록된 글에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분의 나타나실 것과 그분의 나라를 두고 내가 엄숙히 명령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대는 말씀을 전파하여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라. 끝까지 오래 참고 가르치며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여라.<디모데후서 4장 2절>
6.25 동란 전 인민군 장교의 부인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 인민군 장교는 기독교가 몹시 못 마땅해 기독교인인 아내를 알게 모르게 핍박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그의 생명에도 큰 위험이 뒤따르므로 그는 아내에게 제발 예수를 믿지 말라고 사정도 해보고 협박도 해보았으나 그 아내는 더욱 열심히 교회에 나가 남편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남편이 잠들 때엔 그의 손을 잡고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6.25 전쟁이 나자 그녀의 남편은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고 전방에서 싸우다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가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미군 군목이 와서 기독교 신자가 있으면 나오라고 했습니다. 군목은 한명씩 찬송가를 시켰습니다.
이 때 인민군 장교는 아내가 매일 밤 들려주던 찬송이 생각났습니다. 이 찬송을 부르다가 자신도 모르게 감동을 받아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무사히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쓰는 것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오늘도 전도에 힘쓰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어떤 분은 “전도 능력이 없다! 전도 달란트가 없다!”고 하지만 전도는 특별한 사명과 은사를 받은 사람들에게만 맡겨야 할 일이 아니라 구원받은 모두가 함께 감당해야 할 본질적인 일입니다. 전도는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열왕기하에 기록된 말씀 중에 하나님은 나병환자를 사용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힘과 재능이 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일은 오히려 힘없는 사람을 통해 이뤄질 때가 많습니다.
성도에게 나병환자가 가졌던 각성과 사명 이행이 없다면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사명을 잃어버린 불행한 삶이 됩니다. 하나님은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해서만 우리를 선택해주시고 자녀 삼아주신 것이 아닙니다.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어서 천당 가는 일 외에 한 영혼도 구원하지 못했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마음과 정성과 뜻과 힘을 다해 예배하듯이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목사님은 전도를 못하면 아이라도 많이 낳아 신앙으로 잘 키우라고 합니다. 그 정도로 전도에 관심과 열정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진실한 성도에게 가장 아쉬운 일은 자신의 시간과 지위와 물질을 사용해 조금 더 전도하지 못한 일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것을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돈이나 재능이나 권력이나 인기는 사는 것을 돕는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을 위해 살다가는 수전노가 되기 쉽고 권력을 위해 살다가는 독재에 흐르기 쉽습니다.
인기를 위하여 살다가 마약중독이 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학자들은 진리를 위하여 삽니다. 예술가들은 아름다움을 위하여 삽니다. 법관들은 진실과 정의를 위해 삽니다. 그런데 예수를 위해 사는 것은 이 모든 것의 종합입니다.
건배할 때 "위하여!"라는 구호를 외칩니다. 우리가 위해야 할 것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세계평화를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통일을 위하여, 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건강을 위하여, 너와 나의 아름다운 우정을 위하여, 그런데 "위하여!" 가운데 가장 차원이 높은 것은 "예수를 위하여"입니다.
한국선교의 초창기 선교사였던 헨드릭스는 자신은 일천 번의 생애를 살 수 있다면 그 일천 번의 생애를 한국선교를 위해서 바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당시 수없이 많은 선교사들과 신도들이 믿음을 지키다가 희생되어 가던 중이었습니다. 대원군 당시에만 8만 명이라는 신도들이 참수형을 받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전도자들은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키므로 복음의 도도한 확장의 불길을 막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일제 강점기를 비롯하여 6.25동안, 또한 북한에서의 기독교 탄압 등으로 무수한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위하여 희생되었습니다.
우리는 말로만 예수와 복음전파를 위해 산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까? 전도는 주님의 명령으로서 신자들의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사도들을 비롯하여 헤아릴 수조차도 없는 성도들이 무참하게 죽어갔습니다. 더러는 돌에 맞아, 더러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더러는 톱으로 토막 내어, 더러는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와 싸워, 더러는 산과 강과 광야와 바다에서 죽어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굶주리고 헐벗고 수없이 매로 맞고 정처가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조롱거리와 구경거리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정말 거짓 없는 순수한 믿음, 불타는 소명감의 믿음, 나의 모든 문제, 나의 모든 인생을 하나님께 내어 맡길만한 믿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이러한 믿음으로 진정 예수를 위해 복음전파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족속에게 전하지 못하더라도, 혹은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지 못해도, 그리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의 사역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가정에서, 가까운 친구들에게, 또한 일터에서 복음을 전파할 수는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사명입니다. 주님은 복음을 전파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은 한결 같이 복음에 대한 위대한 부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태복음 28:장 19절>
♬ 파송의 노래의 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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