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생활하면서 낙심한 경험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말 큰 사전에 보면 낙심(落-떠어질 락 心-마음심)이란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이 풀어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낙심은 바라던 일 즉 기대와 관계가 있습니다. 기대가 없으면 낙심도 없습니다.
택시 안 액자에는 어린 사무엘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예쁜 사진이 담겨 있었고, "오늘도 무사히." 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 "오늘도 무사히," 이 말이야말로 현대인들의 공통된 소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고 없이 편안하게 무사하게 살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섭섭하게도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당하고 또 사고를 만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끈임 없이 환난이 있고, 고통이 있고, 재난이 있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남의 처지 부러워할 것 없습니다. 내가 알지 못해서 그렇지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고민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지역에 희귀한 종류의 산양이 떼를 지어 살았습니다. 산양이 살다보니 산양을 먹이로 하는 늑대나 여우와 같은 맹수도 많았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볼 때 맹수가 너무 많이 산양의 수가 줄어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산양을 보호하기 위해 사냥꾼들을 초청하여 맹수들 잡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겨울에, 그렇게 춥지도 않았는데 많은 양들이 얼어 죽어버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생태학자들의 와서 조사한 후에 이유가 밝혀졌습니다. 늑대나 여우같은 적이 없어지자 산양들은 긴장이 풀려서 저항력이 약해졌다는 것입니다. 맹수가 옆에 있을 때 양들이 강인해져서 웬만한 추위를 이길 수 있었으나 천적이 사라지자 저항력이 줄어들어 추위에 죽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환난은 우리를 끈기 있게 하고 강하게 합니다. 인내와 연단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없으면 사람이 희미해집니다. 맥이 빠집니다. 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면 " 왜 이런 일이 내게 임했을까? .. 왜 하필이면 나라는 말인가?..."라고 질문하면서 이유를 알려고 고심을 합니다.
우리는 초점을 연약한 나에게 맞추면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대단한 것 같지만 무능력합니다. 내 능력 없어 일이 안될 때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관점을 무능한 나에게서 돌려 하나님을 향할 때 우리는 낙심에서 벗어나 소망으로 향하는 출발점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트루먼은 퇴임 후에 고향 미주리 주 인디펜더스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트루먼이 기념 도서관에 갔을 때 어린 학생들이 지도 선생님과 함께 그에게 접근해 왔습니다. 그 중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제 나이였을 때 인기 있는 반장이셨지요?”
“정반대란다. 눈이 나빠 안경이 없을 때는 맹인과 같았고 재주도 없고 운동에도 소질이 없었으며 누가 큰소리만 쳐도 바들바들 떠는 겁쟁이였단다.”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이 되셨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나는 성경 말씀을 들었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못할 일이 없다는 말씀이야.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든 중단 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했단다. 하나님께서 내 등 뒤에 서계시니까 말이다”라 면서 자기의 등을 보여 주었습니다. 트루먼은 연약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용기 확신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서 함께하십니다. 자신 있게 세상을 사십시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네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강하게 하고 너를 도와주겠다. 내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이사야서 41장 10절> 하나님은 콜록콜록 기침하는 힘없는 노인이 아닙니다. ‘하루살이’처럼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그런 분도 아닙니다. 내가 존재하는 그 어느 곳이나, 그 어느 시간이나 함께 계셔서 나와 함께 함께 하셔서 도우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낙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이유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어느 분이 운전면허시험을 보는데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옆에 탔던 시험관의 “자신감을 갖고 해 보세요. 될 겁니다.” 라는 격려의 말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자신감이란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우리의 자신감은 나로부터가 아니라 우리 주님께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내 아버지’란 믿음을 가지고 자신감 있게 사십시오. 힘든 고난과 시련이 있어도 잘 나가는 옆 사람에게 속으로 이렇게 자랑하십시오. “당신 고난 있어? 나는 고난 있다!” 그처럼 고난조차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그 고난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임할 것을 확신하며 자신감 있게 사십시오.
이제 “나는 큰일을 못해!”라는 의욕상실증과 무기력증을 버리고 새롭게 일어서서 적극적으로 비전성취를 위해 나서십시오. 세상 격언에서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스스로 일어나지 않으면 누구도 돕지 못합니다. 특히 믿는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기에 더욱 스스로 일어서려고 해야 합니다.
사람은 똑같은 상황을 어떻게 보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현저히 달라집니다.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거의 이기고 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거의 집니다.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나아지고 내일이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나빠집니다. 그처럼 자신의 믿음과 생각에 따라 나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 있습니다. 나아짐과 나빠짐의 차이는 결국 믿음과 생각 차이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윈스턴 처칠"도 학교 다닐 때에 낙제한 적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발명왕 에디슨도 무수히 많이 실패하였습니다. 링컨도 사업에 실패하고 신경쇠약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실패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당대 그 실패의 현장에서는 사람들이 조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들의 미래를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어떤 경우에도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말고 지금 이 시간에 새롭게 다짐하십시오. “나는 자녀와 교회가 축복 받도록 준비하고 그 축복 받는 모습을 기필코 보고 나서 천국에 가리라!” 현재 힘이 없다고 사명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무능력을 방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 내 힘으로 안 된다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간절한 소원이 이뤄지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십시오.
너희가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미 이겼다.<요16장 33절>라고 말씀합니다. 미래를 보며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두려움이 엄습할 때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이사야서 41장 10절>라고 말씀합니다.
모두가 떠나 버리고 홀로입니까? 나는 너희를 고아 처럼 내버려 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한복음 1장 16저>라고 말씀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였습니까?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면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라디아서 6장: 9절>고 말씀합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소망을 가지십시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자신감 있게 사십시오!
♬ Via Doloros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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