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휴식/기독교인방

예수를 위해 사는 기쁨

박영복(지호) 2013. 7. 1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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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숨 쉬는 것과 잠자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데 밥은 40일 안 먹어도 삽니다. 물도 두 주간 안 마셔도 삽니다. 그러나 숨은 4분만 안 쉬어도 죽습니다. 지금 숨 쉬고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학식이 풍부하고 가진 것이 많다 해도 잠을 사흘만 못 잔다면 세상에 가장 부러운 것이 바로 실컷 잠 한번 자보는 일 일 것입니다. 가난하고 할 일없어 거리를 떠도는 부랑인이라도 지하도 구석지에 누워 잠자는 그 순간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요, 잠 속에서 그는 부자도 되어보고 대통령도 되어 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마지막 죽을 때 숨을 거둬서 죽지, 안 먹어서 죽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숨 쉬는 것이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을 살리는데 밥 먹이고 물 먹인 것이 아니라 공기를 넣으셨습니다.

밥도 내 손으로, 물도 내 손으로 먹습니다. 옷도 내 손으로 입습니다. 그런데 코에 들어가는 공기는 내 손으로 넣을 수 없습니다. 먹는 것도 빈부격차가 있습니다. 물도 빈부격차가 있습니다. 그런데 숨 쉬는 것은 빈부격차가 없습니다. 공기는 다 똑같이 들어갑니다.

전 세계에 있는 공기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옷 입은 것 다르고, 학력이 다르고, 직장의 지위가 다르지만 코에 들어가는 공기는 다 똑같이 들어갑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에서 취하신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사람이 생명체가 됐습니다.<창세기 2장 7절>

아주 늦은 나이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도가 된 아버지가 지방에 내려가 사는 세 아들을 불러 주일마다 교회에 나갈 것을 당부했다고 합니다. 세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서 그 주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가 지난 후 아버지는 세 아들을 다시 불러서 교회 나간 후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물었습니다. 큰 아들은 자신의 삶이 보다 경건해졌고 사업도 잘된다고 말했고, 둘째 아들은 교회 나간 덕분에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나서 더 이상 외롭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셋째 아들은 보이질 않고 대신 편지만 배달되어 와 있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요즘 자신의 동네의 장애인들과 노인들을 돌보느라고 도저히 아버지를 만나러 올 수가 없으니, 양해해달라는 말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 명의 아들 중에, 누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를 받은 거듭난 성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도 야고보가 고백한 것처럼, 마치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야고보서 2장 26절>

신앙에도 생명 없는 신앙, 죽은 신앙과 생명력이 넘치는 신앙, 살아 있는 신앙이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의 이웃들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을 함께 나누지 않고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라고 말만하고, 몸에 필요한 것을 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믿음에 행함이 없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죽은 것입니다. 아무리 신앙을 그럴듯하게 고백하고 미사여구를 사용한다 할지라도 그 행함이 없는 말은 생명이 없는 말입니다. 죽은 말입니다. 그의 말이 죽었다는 것은 그의 신앙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죽은 신앙은 자기도취에 빠진 이기적인 신앙입니다. 세상의 예수를 혼자서 다 믿는 것처럼 말하는 신앙입니다. 이웃의 어려운 삶을 헤아리지 않고 다른 이들의 아픔을 감싸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할 때는 죽은 것입니다.

가난하고 힘겨운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실한 요구를 몸을 굽혀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하나님니다. 똑같이 하나님을 부르지만 죽은 신앙과 산신앙의 차이는 눈물을 흘리는 이웃과 함께 눈물을 나눌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날마다 행함이 있는 산 신앙을 묵상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합니다.

바울은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연대하지 못하는 신앙은 신앙의 독선입니다. 약자를 돌보지 않으면서 하나님나라를 가는 길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얼마 전, 미국의 한 기독교 리서치 기관에서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신앙생활의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 중 20%는 거의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며, 조사대상 중, 25%는 거의 기도를 하지 않고, 35%는 집에서 성경을 읽지 않고, 40%는 일정한 헌금을 정해서 하지 않으며, 75%는 교회에서 어떤 책임이나 봉사도 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85%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전도해서 교회로 인도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조사대상의 100% 모두는 자신들이 반드시 천국에 갈 것으로 확고히 믿는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만약 여론조사에서 전하는 내용과 비슷한 점이 많다면, 지금 나의 신앙은 어쩌면 잠자고 있는 신앙인지도 모릅니다.

어려서부터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으니까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화의 엑세서리로서의 종교가 아니라, 사회생활의 한 연장으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내 속에 기쁨이 있어서, 예수로 말미암은 소망과 행복이 있기 때문에 예수를 기쁨으로 믿는 신앙이 살아 있는 신앙입니다.

런던시 템풀 교회에 70세의 에밀 메틀러(Emil Mettler)씨는 40년간 작은 식당을 경영하며 삽니다. 그런데 그 식당에 오는 손님들은 음식 값을 지불할 때에 현금 보관 통에 6인치 크기의 못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현금 보관 통에 못은 왜 넣어두었습니까?" 메틀러씨는 심각한 얼굴로 설명을 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생각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못을 집의 책상 서랍 속에 둘 수도 있으나 현금 보관함에 둔 것은 직업과 내 생활 속에 예수님이 계심을 자주 상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진정으로 살아있는 믿음의 소유자는 살아있는 기쁨, 예수를 위해 사는 기쁨이 있습니다.

♬ 주님 말씀하시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