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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펴거나 찢어지거나? 못 믿을 핵우산

박영복(지호) 2009. 6. 16. 07:43

못 펴거나 찢어지거나? 못 믿을 핵우산

[뉴스 쏙]
북핵 사전 방어 아닌 사후 보복땐 ‘공멸’
미 본토위협 앞에 한국 보호할지도 의문
한-미 정상회담서 ‘핵우산 명문화’ 한다는데…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처럼, 핵무기는 ‘절대무기’다. 핵무기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파괴력의 극치다. 미국의 유명한 전략이론가인 버나드 브로디가 1946년 핵무기를 가리켜 ‘절대무기’(absolute weapon)라고 부른 게 이 때문이다. 절대무기 개발에 나선 북한이 지난달 25일 2차 핵실험을 했다. 국내에서는 불안감과 함께 ‘우리도 핵무장을 하자’는 핵 주권론이 터져나왔다. 이를 의식해 이명박 정부는 오는 1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 핵우산의 내용 미국이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은 70년대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핵우산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군사비밀이라 공개된 내용이 거의 없다. 비밀 해제된 미국 자료 등을 종합하면, 미국이 핵우산을 가동할 경우 한반도에 핵무기를 직접 배치하지 않고 미 본토와 한반도 주변 지역의 전투기, 핵잠수함 등을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1991년 주한미군이 남한에서 핵무기를 철수한 뒤 미국의 대북 핵공격 임무는 미 본토의 전투비행단이 맡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주둔하는 미 제4전투비행단 소속 에프(F)-15E(이) 대대가 대북 핵폭탄 공중투하 훈련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주리 화이트먼 공군기지에 배치된 비(B)-2 스텔스 폭격기도 유사시 태평양을 건너 북한을 핵폭격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태평양에 배치된 미국의 오하이오급 핵잠수함들도 명령만 떨어지면 10여분 뒤 북한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이 밖에 미 본토의 핵미사일 기지에서도 대륙간탄도탄을 북한으로 쏠 수 있다.

■ 핵우산의 역설 핵우산의 뼈대는 ‘공격하지 마라. 네가 공격하면 우리는 더 세게 반격하겠다’는 사후 보복 개념이다. 핵우산을 거칠게 요약하면, 남한이 북핵 공격을 받아 초토화가 되면 미국 핵무기로 북한도 마저 잿더미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핵무기 사용에는 핵무기로 대응해서 ‘너 죽고 나 죽는다’는 ‘공포의 균형’을 통한 ‘억지’(deterrence)가 핵우산의 논리적 바탕이다. 60년대 미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가 지적했듯이 “공멸 보장이 억지 개념의 본질”이다.

핵우산은 북한이 핵무기를 한국에 사용하면 몇 배로 핵 보복을 받을 것이란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핵공격을 단념시키는 고도의 심리게임이다. 때문에 핵우산은 실제 가동되지 않고 ‘탁상 전략’(table strategy)에 머무를 때에만 북한의 선제 핵공격을 ‘억지’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우산은 펼쳐야 비바람을 막지만 핵우산은 펴지 않아야 제구실을 하는 역설적 우산이다. 미국 핵우산이 가동될 때는 북한이 대량파괴무기로 한국을 공격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다음이다. 이 상황에서 핵우산 가동은 보복, 재보복을 불러 더 큰 인명 피해를 부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억지에 실 패한 뒤 핵우산 가동은 ‘공동 자살전략’이란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공포의 균형’ 논리는 상대방이 먼저 핵공격을 감행했을 때 사전에 방어할 수단이 없다는 게 딜레마다. 이 때문에 70년대 미국에서는 최선의 안보 방책은 ‘억지’가 아니라 ‘방어’(defence)란 주장이 제기됐고, 80년대 적의 선제 핵공격을 요격하는 미사일방어(MD)체제 구상으로 이어졌다. 90년대 이후 미국은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에 천문학적 돈을 쏟아붓고 있으나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 핵우산의 신뢰성 지난달 25일 북한 2차 핵실험 뒤 긴급 소집된 국회 국방위에서 김동성 한나라당 의원은 “미국 샌프란시스코나 시애틀 같은 도시가 북한 핵미사일 사정권 안에 들어가면 미국의 핵우산은 찢어진 우산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동성 의원이 지적한 것은 미국이 ‘립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유사시 정말 핵우산을 제공할 것이냐는 신뢰성 문제다. 이 문제는 냉전 때부터 오래된 논란거리였다. 서유럽이 옛소련의 핵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이 소련을 핵무기로 보복하면 미국 본토가 소련의 핵 재보복 위협에 노출된다. 1960년대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이 소련의 핵공격으로부터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독자 핵무장의 길을 택했다.

앞으로 북한이 장거리 핵미사일 개발에 성공해 미 본토를 위협하는 상황이 되면 ‘미국이 서울을 보호하려고 샌프란시스코나 뉴욕을 희생할 수 있느냐’란 질문이 나올 것이다. 이에 미국이 확답을 망설인다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은 ‘찢어진 우산’이나 마찬가지란 게 핵우산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쪽의 주장이다.

보수 쪽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우산 명문화 방침이 전해지자 구원의 복음처럼 반겼다. 하지만 두 나라 정상이 핵우산 제공을 문서화하더라도 구체적인 지침이나 계획이 없는 선언적 수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핵우산 준비·가동 과정에서 한국 쪽이 의견을 내거나 협의할 미국 쪽 채널이 마땅치 않다. 미국 안보전략에 따르면, 핵무기를 사용하는 보복 공격의 주체가 한미연합사령부가 아니라 미국 전략사령부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핵 보복 공격을 펼지는 미국이 전적으로 알아서 한다는 이야기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