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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강국’ 에너지 독립 눈앞

박영복(지호) 2009. 6. 17. 06:07

 풍력강국’ 에너지 독립 눈앞

 

산업혁명이 수백년에 걸쳐 전세계에 단계적으로 퍼져나간 것이라면, 녹색경제로 가기 위한 각국의 대체에너지 개발 경쟁은 전세계 동시 혁명에 가깝다. 그 가운데 불과 수년만에 세계시장을 선점한 국가나 기업들은 쉽게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격차를 벌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4월 국내 현주소를 짚어본 데 이어 <한겨레>는 2부에서 각국이 어떤 ‘선택과 집중’을 펼치고 있는지 7차례에 걸쳐 매주 1회씩 소개한다. 편집자


전세계 풍력발전 시장 50% 점유
주민 참여 통한 정치적 합의 큰 역할
발전차액 등 보조금 제도 원동력

 

전체 소비전력의 3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나라. 그 가운데 3분의 2가 풍력발전이고 전세계 풍력발전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는 나라. 바로 덴마크다.

 

지난 8일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잠깐 햇살을 내주던 구름은 오래지 않아 세찬 바람과 함께 비를 뿌렸다. 덴마크는 평지형 국토에다 난기류 영향이 적고 양질의 바람을 얻을 수 있어 육상과 해상 모두에서 풍력발전에 필요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덴마크 에너지청 메트 크라메 부츠 재생에너지 담당관은 “정부는 2025년에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현재 17%에서 30%까지 늘릴 계획”이라며 “야당은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만으로 전체에너지를 공급하도록 하는 목표를 세우라고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덴마크는 재생에너지를 통한 에너지 자립이란 ‘꿈’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나라다. 우리 정부의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11% 목표’를 이미 한참 앞서가고 있는 셈이다.

 

덴마크가 이 꿈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던 건 1973년 석유위기 이후 일관되게 추진해 온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의 힘이다. 그 결과 지금은 세계적인 풍력 강국으로 성장했다. 2007년 현재 풍력발전산업에 종사하는 고용인원은 2만명, 풍력발전 설비와 기술 수출액은 국내총생산(GDP)의 3% 규모인 55억유로(약 9조7000억원)에 이른다.

 
덴마크는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육상풍력발전보다 2배 이상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6㎿급 해상풍력발전기를 제작하고 있다. 올해와 내년에 각각 북해 근처에 세계 최대 규모인 200㎿ 해상풍력발전 단지 2곳을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다. 덴마크에너지협회는 2015년이면 풍력발전의 발전단가가 다른 에너지원들과 대등한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 주요국의 풍력발전을 이용한 전력공급 비중
풍력발전 시장이 3년마다 규모가 2배로 커지면서 기술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덴마크의 대표적인 재생에너지연구소인 리소연구소는 유럽연합과 공동으로 ‘업-윈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이 연구소 숀너버그 피터슨 선임연구원은 “풍력발전용량 확대를 위해 날개 크기를 2배로 키우면 무게는 5배 늘어나 바람의 저항도 그만큼 커진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재료·디자인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소연구소는 이미 덴마크는 물론 유럽 각국의 풍향·풍속·풍질 등을 분석해 최적의 풍력발전 입지조건을 고를 수 있는 ‘풍력지도’도 완성해 판매 수익 2500만유로(약 440억원)를 거뒀다. 기후에 따라 전력생산이 크게 변하는 재생에너지의 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기상 자료를 활용해 48시간 전에 정확한 풍력발전량을 측정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도 마쳤다.

 

하지만 ‘풍력발전 강국’의 배경엔 지리적 조건만이 있는 게 아니다. 정부 주도로 산업발전을 이끌어가는 전통과 정치적 합의를 통한 정책 추진, 주민참여와 동의를 통한 갈등 조정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에너지청의 부츠 담당관은 “정부와 여야정당, 에너지업계, 비정부기구의 합의로 추진돼 일관성과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발전차액과 같은 보조금 정책이 시장 형성과 성장을 이끈 원동력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덴마크는 풍력발전단지 건설에 지역 주민들을 참여시켜 갈등을 조정했다. 코펜하겐 동쪽 해안가에 자리한 미들그룬 풍력발전단지 건설 과정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한스 쇼안슨 미들그룬 풍력단지협동조합 이사는 “초기단계부터 여러 후보지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물었고 반대가 있으면 아예 포기했다”며 “주변 5㎞ 지역 주민들에게 조합원 자격을 주고 지분의 20%를 배분했다”고 말했다. 소음과 조망권 침해 등의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수익금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이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하지만 정부가 2001년 이후 발전차액 보조금을 줄이면서 민간주도의 풍력발전소 건설계획이 모두 취소되는 등 한때 제자리 걸음을 하기도 했다. 한국이 태양광 발전차액을 줄이면서 최근 빚어지고 있는 상황과 동일한 경험을 치렀던 것이다. 결국 상황이 악화되자 덴마크 정부는 올 2월 발전차액을 다시 인상했다. 쇼안슨 이사는 “정부는 규모가 작더라도 더 많은 지역에 재생에너지 시설이 들어설 수 있도록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펜하겐·로스킬데(덴마크)/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 61.5m 거대날개 ‘바람을 내품에’

61.5m 거대날개 ‘바람을 내품에’

‘날개의 제왕’ 엘엠 글래스화이버
세계 풍력발전 회전날개 25% 점유

‘날개의 제왕(Blade King)’. 덴마크 리소연구소 연구원들이 엘엠글래스화이버(LM Glasfiber)에 붙인 애칭이다.

 

이 회사는 세계 풍력발전 회전날개 시장의 25%를 점유한 독보적인 기업이다. 베스타스, 지멘스 등 세계 10대 터빈제조업체 가운데 8개사가 이 회사에서 날개를 공급받는다. 지난해 수익은 8억8500만유로(약 1조5600억원)로, 인근 유럽국가 뿐 아니라 미국·중국·인도에도 현지공장을 가동해야 할 정도로 주문량이 밀려오고 있다.

 

지난 9일 찾은 루너스코우의 글래스화이버 덴마크 공장도 독일 해상풍력발전단지에 쓰일 세계 최대 크기의 61.5m 날개 제작을 마무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헬레 라슨 아너슨 홍보팀장은 “아직까지 다른 어떤 회사도 날개 크기와 개발 노하우에서 우리 회사에 맞설 수 없다”고 자신감을 표시했다. 61.5m 길이의 회전날개(사진 위)는 17톤 무게로 날개 셋을 터빈에 조립할 경우 회전반경은 무려 126.3m에 이른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구조물인 셈이다. 이 풍력발전 1기에서 생산할 수 있는 전기는 6㎿로 6천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용량이다.

 

회전날개는 풍력터빈의 모터 역할을 하는 핵심부품으로 발전용량과 효율성을 좌우한다. 또 풍력발전 전체 비용의 20% 가량을 차지한다. 조만간 이 회사는 125m 크기 날개에 도전할 계획이다. 현재 30여 종류의 날개를 생산하고 있지만 매년 4~6개의 새로운 날개를 개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수익의 3~4%가 투자된다.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풍력 실험실(윈드터널)에선 각종 악조건에서 20년 이상 견뎌낼 수 있는지를 꼼꼼히 검증한다.

 

이런 연구개발 덕에 지난 20여년동안 제작비는 절반으로 줄이면서도 성능은 20배나 높였다. 아너슨 팀장은 “바람이 보다 오래 머물도록 하는 게 날개 설계의 핵심”이라며 “풍력발전 대형화 추세에 맞춰 날개를 보다 가볍고 오래 가도록 하기 위해 식물재료를 활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루너스코우(덴마크)/이재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