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휴식/건강 정보

선생님도 오럴을 하세요?

박영복(지호) 2009. 5. 11. 10:01
선생님도 오럴을 하세요?

비뇨기과 전문의로 진료를 보면서 내가 전혀 모르는 세상의 일면을 접하고 놀라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그 열정이 대단하게 느껴져 멋있게 보이는 사람도 있고, 왜 저렇게 밖에 해결을 못하나 하고 답답한 사람들도 있다. 이게 사람 사는 모습들이겠거니 하고, 내 여동생이나 언니처럼, 오빠나 삼촌처럼 친근하게 사람들을 대한다. 때론 뭔가 단호한 입장에서 방향을 잡아줄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어 사안에 따라 냉정해지기도 한다. 이제는 웬만한 자극에 무덤덤한 나,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의료적인 해결을 해드리려고 노력하고,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편견도 갖지 않으려고 애쓴다. 때론 환자들을 통해 내 스스로 느끼고 배우는 바도 크다.


한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 웬만한 사연들은 별 놀랍지도 않던 어느 날, 진료실로 들어선 차가울 정도로 단정한 여성을 만났다. 남편은 이혼을 준비 중이고 본인은 자식 때문에 이혼은 생각하고 있지 않단다. 남편이 내세우는 이혼사유는 성적 불만족이었다. 부인이 성적으로 무지하고 성기능장애가 있기에 그간의 부부생활이 원만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지난 결혼생활이 너무나 불행했다는 것이다. 남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이란 일상에서는 현모양처, 침실에서는 흔한 말로 요부인데, 남편의 주장은, 다른 여자들은 다 그렇게 잘 하고들 사는데 자신의 부인은 기본도 안 돼 있다는 것이다. 부부사이에 대화를 권고하기에는 남편의 마음은 너무나 멀리 가 있었고, 부인은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억울한 마음만 생기고 그 특유의 침착함으로 혹 있을지도 모르는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 자신의 성기능에 대한 전반적 검사를 하려고 내원했다. 남편 쪽은 문제에 대한 해결을 바라는 것이 아니기에 같이 병원을 찾기를 거부한 상태라 직접적인 진료는 곤란했지만, 경직된 성의식과 다소 과도한 성적환상을 가지고 있고 사고가 유연하지 못하며 간혹 발기나 발기유지가 어렵고 사정이 빠른 것으로 보아  스스로의 문제가 있어보였다. 그러나 그 책임을 부인에게만 전가시키고 있었고 실제로는 남편의 주장대로 문제가 한 쪽에만 있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 여성에 대한 검사를 시작하면서 굉장히 당황하는 일이 생겼다. 성기능장애 검사를 위해서는 성행태 및 성의식에 대한 기본적인 몇 가지 설문이 있는데, 그중에 오럴섹스에 대한 의식을 묻는 문항이 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오럴섹스를 자기가 좋아서 적극적으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 상대가 요구하면 성감을 고조시키기 위해서 하든지, 상대가 요구하여 하는 수 없이 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상대가 쾌감을 느끼는 모습에 더 흥분되고 집중되는 여성은 오럴섹스를 적극적으로 즐긴다.  설문 후 중요한 몇 가지 포인트에 재질문하고 확인하는데, 이 여성은 오럴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대답하였고, 오럴을 꼭 해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나타냈다.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선생님도 오럴을 하세요?’ 하고 물어왔다. 진료를 보면서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해온 여성은 처음이다. 항상 질문하는 입장이었든 나로서는 처음에는 당혹스런 일이었다. 자존심이 강해 보이는 그녀로서는 자신의 문제를 그간 부모, 친구, 형제 등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듯 하고 전문의로서의 견해보다 비슷한 연배의 나에게 실제 어떻게 부부생활을 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진료를 모두 마치고, 진료소견서 및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 주었다. 이 부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서로의 다른 이면을 이해하고 부부생활에 전환점을 마련했을지도 모르고, 합의이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길고 지루한 이혼소송을 아직 하고 있으면서 서로 상처를 입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부관계의 문제들은 이혼을 결심하기 전에 문제를 느낄 때 치열하게 고민하고 해결하려 노력하는 것이 좋다. 이미 이혼으로 마음이 굳어버린 경우는 참으로 되돌리기 힘들다. 처음 보는 나에게 ‘선생님도 오럴을 하세요?’라고 질문했던 것처럼,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 ‘뭘 해주길 원해? 오럴이 좋아?’ 라고 왜 못 물어본 것일까? 한 번도 부부관계를 먼저 요구해 본적이 없다는 부인, 오럴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보던 다양한 성행위를 원하고 기대하면서도 직접적으로 표현은 못하고 혼자 속만 끓이다 최악의 결정을 한 남편. 비단 오럴섹스에 대한 것 말고도 서로의 요구사항이나 자신의 금기 같은 것을 살아오면서 상대에게 이해시키는 작업을 왜 제대로 하지 못했을까? 부부생활의 누릴 수 있는 모든 재미와 묘미를 아무것도 모른 채 자존심에 상처만 입고 등 돌린 부부가 참으로 안타까웠다. 나에게는 참 기억에 남는 사람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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