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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명이 '진시황병마용박물관일호갱'(秦始皇兵馬俑博物館壹號坑)인 병마용 1호갱 입구. 진나라 주력군의 형상이 배치된 1호갱은 길이 230m, 넓이 62m, 총 면적 14,260평방미터로 발굴됀 3개의 병마용 갱 가운데에서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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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마용 1호갱은 갱내에 6,000여 점의 토용(土俑), 토마(土馬)와 40여 승의 목조 전차를 안치하여 전차와 보병으로 혼합 편성된 장방형 군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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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갱 내부에서 보면 군진이 선봉, 주력, 후위, 익위 등 4부분으로 크게 구성되어 있다. 1호갱 선봉부대 뒤에는 격리토담에 의해 11개 동·서 향의 통로로 나뉘어져 있는데, 38종대의 전차, 보병이 서로 엇갈아 배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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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갱 토용은 대부분 갑옷을 입고 정강이에 대발을 치고 손에 창, 긴 창, 건 등 병장기 및 소량의 궁노를 들고 있는데 중장비한 갑사에 속한다. 이들은 전차와 유기적으로 조합된 군진 주력으로 기세가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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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갱 내의 남·북 양쪽 변두리에는 무사용이 각각 남·북을 향해 1열로 서 있는데, 군진의 좌·우익 측으로 그들의 임무는 적군의 '성동격서'(聲東擊西)를 방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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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3월 섬서성(陝西省) 임동현(臨潼縣) 안채향(安彩鄕)의 양페이옌(楊培彦), 양즈파(楊志發), 양취엔이(楊全義) 등 세 농민이 감나무 숲 가운데에 관개용 우물을 파던 병마용을 처음 발견한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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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갱 내부 뒷편에 줄지어 서 있는 병마용들. 적지않은 병마용들은 지금도 발굴이 진행되고 있고 복원 작업을 거쳐서 하나하나씩 전시되어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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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시황릉병마용박물관 2호갱은 1호갱의 동단 북쪽에 위치하며 약 20m 떨어져 있다. 갱의 평면은 곡척형(曲尺形)으로 동서 길이 124m, 남북 넓이 98m, 면적이 약 6,000평방미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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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발굴이 진행중인 2호갱 내부. 2호갱 내에는 시추 및 시굴자료의 추산에 의하여 전차에 메인 토마 350필, 기병용 안마 116필, 각종 무사용 900여점, 도합 1,400여점의 토용·토마와 89대의 목제 전차가 있는데, 보병·기병·전차 3개 병종을 혼합 편성한 군진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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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호갱의 군진 포진방법은 4개의 작은 진을 'ㅁ'자형으로 잇달아 구성했다. 첫 번째 진은 노병(弩兵)진으로 곡형진의 최선봉에 위치하여 도합 330여명의 궁노수(弓弩手)로 구성되었다. 둘레에는 약 170여 점의 전포 경장비를 한 입사(立射) 토용이 진을 에워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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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호갱 내에 전시된 장군용. 알려진대로 병마용 내의 모든 병용과 마용은 그 모습이 다르다. 이 장군용 또한 진대 장관의 복식과 의관을 명확히 보여주면서 진나라 군인의 듬듬함을 생동감있게 표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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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호갱 내에 전시된 활을 쏘는 용(俑). 1997년 발견된 것으로, 활시위를 당긴 모습이 생동감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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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호갱 내에 전시된 기마병과 마용(馬俑). 기마병은 말에서 내려 창을 왼손에 쥐고 오른손에 말 안장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이고 일반 기마병에 말답게 형체가 다른 마용보다 왜소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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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호갱 내에 전시된 무릎을 끓고 창을 지니고 있는 병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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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갱 서단 북쪽에 위치, 1호갱과 25m, 동쪽의 2호갱과 30m 떨어져 있는 병마용 3호갱 입구. 지휘소의 역할을 했던 3호갱의 총면적은 500평방미터도 안되는데 세 갱 가운데 면적은 가장 작고 병용도 제일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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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호갱 내의 무사용은 전투대형에 따라 편성된 것이 아니라, 남북 2개 곁채에 분포되어 있는데 손에 의장병 병기인 동수(銅殳)를 들고 얼굴을 마주한 채 통로 양쪽에 정렬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지휘관을 보위하는 경위부대임을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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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호갱 내의 병마용은 이미 모두 출토, 복원 작입이 완료되었다. 3호갱 내에서는 토용 66점, 전차를 끄는 토마 4필, 목제 전차 1승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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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호갱에서 50m 떨어진 청동거마박물관은 1978년 진시황릉에서 발굴된 채색 동거마(銅車馬)와 진시황, 병마용에 관련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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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동거마박물관의 청동거마 2대는 모두 쌍륜 단채로 네 필의 구리말을 메웠지만 형상과 구조는 서로 다르다. 박물관에 전시된 청동거마는 중국에서 발견된 청동거마 중 차형이 제일 크고 장식이 가장 화려하고 모방이 매우 정교하고 또 완전하게 보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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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동거마박물관에 전시된 1,2호 청동수레는 구조의 복잡함과 기예의 정심함은 기존에 출토된 그 어떤 구리기구도 비교할 바가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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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시황릉원 검표소를 지나 중앙광장으로 들어서면 좌서향동(坐西向東)의 모습으로 자리잡은 거대한 능이 보인다. 중국 역대 제왕의 능은 대부분 남쪽을 향하면서 북쪽(坐北朝南)에 누워있다. 이는 죽어서도 군주로서 천하를 다스리겠다는 의미였다. 헌데 진시황릉은 특이하게도 이와 다른 좌서향동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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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 당시 진시황릉은 둘레 4km의 내성과 6km의 외성으로 이루어져 전체 묘역이 전체 25km에 달하고 봉분의 높이는 1백20m에 이르렀다고 한다. 개인 무덤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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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시황릉원 중앙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우뚝 서 있는 진시황상. 진시황릉은 원래 높이 76m의 진시황릉 봉분과 순장묘군(殉葬墓群), 계속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병마용 갱군,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진시황의 사당에는 시종들이 거주하면서 진시황이 살아있을 때처럼 매일 음식을 준비하고 옷을 갈아 넣었다 하니, 불사의 생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였던 진시황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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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산과 같은 진시황릉의 봉분은 현대의 과학기술로도 발굴이 불가능하여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 뿐 다른 볼거리는 별로 없다. 봉분 정상에서는 진시황릉의 전체 배치와 멀리 보이는 병마용, 려산(驪山)의 모습도 살펴 볼 수 있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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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부터 진시황릉 관리소에서는 병마용을 흉내낸 병사 복장을 한 근위병으로 하여금 진시황릉을 수호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진시황릉이 갓 건축된 시기에는 황릉 근위병이 있어서 일반 백성들의 접근을 봉쇄하였고, 사당에서 벌어지는 제사의식을 수행하였다. 이 근위병 교대식은 날마다 오전과 오후 2차례에 걸쳐 벌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