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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가락산열사릉원(歌樂山烈士陵園, 꺼러샨리에스링유엔)

박영복(지호) 2007. 1. 12. 09:45
[시내]가락산열사릉원(歌樂山烈士陵園, 꺼러샨리에스링유엔)






* 사진 설명: 가락산열사릉원에 있는 붉은 색 화강암의 무명열사탑. 1949년 11월 27일 벌어진 대학살에 희생된 공산당원들을 기념하여 조성하였다.

ㅇ 위치

- 가락산열사릉원은 충칭시 사평패구(沙坪壩區) 동가교정가(童家橋正街, 동지아차오정지에) 서측의 가락산(歌樂山, 꺼러샨)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ㅇ 유래

- 가락산열사릉원은 1949년 11월 27일 국공내전 말기 공산당이 충칭을 점령하기 전날, 국민당정권이 충칭 각지 감옥소에 있던 공산당원과 좌파인사 2만여명을 학살한 것을 기념하여 만든 공원식 묘지이다. 중국은 이른바 '11·27대학살'로 일컫어지는 역사적 사실을 기리기 위해서 1959년 혁명성지로 조성하였다.

- 백공관(白公館)은 원래 국민당 장군이었던 바이취(白驅)의 병장을 1939년 감옥으로 개조한 곳이다. 1943년 '중미합작소'(中美合作所) 1간소(看所)로 이름을 바꾼 백공관은 관 내에 20실의 감옥을 두었다. 1936년 12월 동북군 사령관인 장슈에량(張學良)과 함께 서안사변을 일으켰던 양후청(楊虎城) 장군, 황시에셩(黃显聲) 등 거물급 공산당원과 좌파인사를 감금하고 학살했었다.

- 사재동(渣滓洞)은 원래 규모가 컸던 동굴을 감옥으로 개조하여 중미합작소 2간소로 쓰였던 곳이다. 굴 내 16곳의 감옥실을 두어 2백여명을 감금했던 사재동에서는 11·27대학살 시 15명을 빼고 모든 수감자를 학살했다.

ㅇ 볼거리

- 중국 3대 법률종합대학 중 하나인 서남정법대학 맞은 편에 위치한 가락산열사릉원은 중앙 광장과 석상, 무명열사릉, 릉원박물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축구장 크기의 중앙 광장은 11·27대학살 시 사망한 공산당원과 좌파인사들의 이름과 얼굴 부조(浮彫)가 곳곳에 조성되어 있다.

- 광장에서 중국 국기와 공산당기, 인민해방군기 등이 중앙을 차지하여 이어진 계단을 올라가 무명열사릉에 이르면 높이 11.5m의 붉은색 화강암으로 조각된 대형 열사군조상(烈士群雕像)이 있다. 사면을 각기 다른 얼굴과 표정으로 생동감있게 조각한 열사군조상 뒤편에는 11·27대학살로 사망한 수많은 공산당원과 좌파인사를 기리는 무명열사릉이 조성되어 있다.

- 열사릉원에서 버스로 3,4분 거리로 가락산 중턱에 위치한 백공관 정거장광장은 2002년 대대적인 공사를 거쳐 제법 규모가 큰 광장으로 변모했다. 광장의 매표소를 지나 5분쯤 걸어서 올라가면 백공관이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 백공관 내에서 수감자들이 감옥 생활하던 그대로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는 생활 도구와 사진, 자료 등이 잘 전시되어 있다. 백공관 2층의 벽에는 수감자를 감시하던 국민당원의 행동규칙이 아직도 적혀 있고 장지에스(蔣介石)의 사진이 원상태 그래도 걸려 있다.

- 백공관과 사재동은 수감자들에 대한 문물과 자료 뿐만 아니라 국민당원이 수감자를 고문하던 장소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고문실에는 다양한 고문자료와 고문기구가 전시되어 있고 고문하던 상황을 방송으로 리얼하게 전해주어 방문하는 이를 오싹하게 한다. 백공관에서 사재동으로 이어지던 산 길 한 편에는 양후청 장군이 피살된 장소가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ㅇ 여행팁

- 가락산열사릉원의 개방시간은 매일 08:00~19:00이며, 입장료는 열사릉원은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고 릉원박물관은 10위안(우리돈 1,300원), 백공관과 사재동이 한 코스로 15위안(2,000원)이다. 교통편은 충칭기차역에서 출발하는 210번 버스를 타면 가락산열사릉원과 종점인 백공관 아래의 광장에 정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