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설명: 전통의상을 입고 마오니우까지 데리고 나와 돈벌이는 하는 창하이의 티베트인들.
벼락같은 폭포소리와 빗방울의 하모니
전주탄(珍珠灘) 위에 깔려 있는 한 갈래 나뭇길을 따라 가로지를 무렵 때마침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이미 시간은 오후 5시가 지나서 당일에는 더이상 볼거리를 찾지 못하는 시점이었지만, 날씨가 안 좋을 경우 취소해야 할 다음 날 일정이 걱정되었다. 게다가 기온이 급강하해 반바지에 T셔츠만을 입은 필자는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좌우너비 160m의 전주탄을 훑듯이 뚫고 바로 전주탄폭포로 걸음을 옮겼다. 최대 낙차가 30m에 달하는 폭포 밑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과 폭포에서 튀는 물방울이 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필자에게 덮쳐왔다. 마치 벼락이 치는 듯한 폭포 소리와 급하게 내리는 물의 기세는 낙차가 크나 너비가 좁은 시옹마오하이 폭포와는 다른 감흥을 주었다. 점점 굵어지는 빗발 속에서 전주탄 일대를 두루 살피니 저 멀리에서 그만 돌아가자는 덩 스푸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로써 지우자이꺼우 비경을 통해 아름다움을 만끽했던 하루 일정을 끝마쳐야 했다.
6월 29일 아침 8시, 전날 저녁 일찍이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힘든 산행을 해서인지 늦잠을 잤다. 하루 더 신세를 지기로 한 덩 스푸가 모닝콜의 역할을 해주지 않았다면 세상 모르고 잠에 빠졌을 듯 했다. 빗방울이 흩날린 전날과 달리 날씨는 맑게 개어 따사로운 햇살이 빛났다. 재빠르게 세수를 하고 짐을 챙겨 수정자이에서 출발, 어제 보지 못한 저차와꺼우(則査蛙溝)로 올라 갔다. 전체 길이가 20㎞인 저차와꺼우는 지우자이꺼우 내에 있는 세 갈래의 계곡 중 가장 길다. 볼거리가 촘촘히 몰려있는 르자이꺼우와 달리 저차와꺼우의 하이라이트는 오직 두 군데. 해발 3,100m에 위치한 창하이(長海)와 종종 오색 빛깔의 무지개가 떠오른다는 우차이츠(五彩池)다. 여기저기에서 공사중인 도로 위에는 황롱으로 가는 산길과 마찬가지로 손놀림이 바쁜 민공(民工)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좁은 산길에도 불구하고 단체 여행객을 태운 관광버스를 추월하면서 올라간 덩 스푸의 탁월한(?) 운전솜씨 덕택에 수정자이를 떠난 지 40여분만 창하이에 닿았다.(2003년 현재 저차와꺼우의 산길은 모두 포장되었다)
돈벌이를 위해 끌려나온 마오니우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덩 스푸와 함께 창하이로 걸어가려니 한 무리의 티베트인들이 몰려와 자신들의 마오니우(마牛, yak)에 탈 것을 권해왔다. 그리고 보니 주차장과 창하이로 가는 작은 길 위에 하얗면서도 검푸스름한 털 색깔을 지니고 있는 마오니우가 줄지어 서있다. 전세계에서도 남미의 안데스산맥과 중국의 칭장(靑藏)고원에서만 볼 수 있다는 마오니우는 오염되지 않은 환경에서만 사는 소의 한 부류다. 티베트인들에게는 짧은 거리의 이동수단이자 중요한 식량원으로 한 몫을 톡톡히 하는 마오니우가 관광자원으로도 개발(?)되어 돈벌이에 활용되고 있었다. 마오니우 위에 태워주는 조건으로 2위안만 받겠다는 상인들의 유혹과 좋은 사진거리를 남기라는 덩 스푸의 강권이 계속되었지만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다. 일부 관광객은 티베트 전통민속복장까지 입고 사진촬영에 열중했지만, 돈벌이에 갈수록 박제화 되어 가는 티베트인과 마오니우의 모습이 조금은 처량해 보이는 것은 웬일일까?
손님을 기다리는 티베트인들과 마오니우를 뒤로 하고 창하이의 물가로 내려갔다. 필자를 동행한 덩 스푸의 설명에 따르면, 창하이는 사방의 전체 넓이가 600m에 달하고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100m에 이른다고 한다. 주변 고산에 겹겹이 둘러싸여 있는 창하이는 호수 수원(水源)이 따로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영원히 들어차지도 마르지도 않는다'는 창하이의 어원(語源)답게 모두 주변 고산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려 호수물을 이룬 것이다. 본래 창하이 주변에는 십여채의 군락을 이뤄 거주하는 티베트인들이 목축을 생업으로 하여 살았지만, 지금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신종 장삿술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지우자이꺼우 안에 산재해 있는 108개의 호수 가운데에서 으뜸으로 친다는 창하이의 또 다른 특징은 호수를 그림처럼 둘러싼 고산의 만년설이다. 이미 여름철에 들어섰는데도 해발 4,000m 이상인 지우자이꺼우 둘레의 산 정상에는 영원히 녹지 않는 만년설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바닥이 닿을듯이 투명한 우차이츠 물빛
내리쬐는 햇살로 자태가 선명한 고산의 만년설과 검푸른 창하이의 물살을 뒤로 하고 필자를 타운 빵차는 내리막길로 내질렀다. 얼마 달리지도 않은 듯 싶은데 차가 돌연 멈춰 섰다. 비내린 뒤 개인 날이면 오색 빛 무지개를 발산한다는 우차이츠에 도착한 것이었다. 도로에서 우차이츠까지는 대략 40m의 좁은 길을 내려가야 한다. 급경사가 심한 길을 따라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니, 지우자이꺼우에서도 가장 작은 호수인 우차이츠가 울창한 산림 속에서 소담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틀동안 지우자이꺼우 계곡 내에 있는 여러 호수와 물웅덩이를 보았지만, 우차이츠는 그 광경이 전혀 색달랐다. 물빛이 너무나 투명해 손이 바닥에 닿을 듯하다. 우화하이가 드넓은 호수 밑에 잠겨있는 갖가지 형태의 나무가 일절이었다면, 우차이츠는 바닥에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돌과 투명한 물빛이 백미였다. 오는 날이 장날이련가? 판다를 구경 못한 전날과 같이 오색 무지개를 보지 못한 채 오차이츠를 떠나야 하는 아쉬움에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필자의 마음을 달래주기라도 하는 듯, 덩 스푸가 따꺼난산(達戈男山)과 써모뉘산(色模女山), 창하이에 깃들어 있는 전설에 대해 들려줬다. 아주 오랜 옛날 지우자이꺼우에는 서로 사랑하는 용사 따거(達戈)와 미녀 써모(色模)라는 연인이 있었다. 원래 아름답게 굴곡이 져서 사람들이 살기 좋은 자연조건이었던 지우자이꺼우에 암운이 깃든 것은 설산왕(雪山王)이 등장하면서부터. 설산왕은 아름다운 지우자이꺼우를 시기해 푸른 자연을 제멋대로 거친 산림과 호수로 바꾸어 놓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 온갖 횡포를 부렸다. 이에 용맹한 따거를 중심으로 사람들은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저항세력의 중심이었던 따거를 회유하고자 했던 설산왕은 자신의 딸 보설(寶雪)공주를 내세워 두 사람을 맺어주는 음모를 꾸몄다. 이미 연인이 있던 따거에게 '미혼약'을 먹여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게 한 설산왕의 계략은 성공하고 따거는 써모를 잊은 채 공주와 사랑하게 된다.
지우자이꺼우 지켜낸 따거-써모-보설공주 전설
하지만 연인을 잃은 써모는 날마다 보설공주를 찾아가 자신의 연인을 돌려줄 것을 눈물로써 호소했다. 이에 감동한 공주는 따거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동시에 자연의 정화인 녹보석(綠寶石)을 주어서 지우자이꺼우가 다시 과거의 아름다움을 되찾게 한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설산왕이 보복을 위해 재침입하자, 따거와 써모는 녹보석을 입에 삼킨 뒤 지금의 난산(男山)과 뉘산(女山)으로 변해 설산왕의 진공을 막았다. 여기에 화가 난 설산왕은 자黴탔? 딸을 호수로 만들어 지우자이꺼우에 던지는데 이것이 바로 창하이인 것이다. 신산으로 변하여 설산왕의 공격을 막고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지켜낸 연인과 지우자이꺼우를 위해 희생한 보설공주를 위해 후세의 주민들은 매년 음력 6월 6일 제산제 때마다 세 사람을 기리는 민속행사를 벌인다고 한다. 이 때는 치앙족의 제산회 형식과 유사한 티베트인들 특유의 민속잔치가 벌어진다. 맺어지지 못한 따거와 써모를 위해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행사 말미에 보설공주의 선행을 낭독함으로써 후세인들이 이를 본받을 것을 강조한다.
덩 스푸가 들려주는 비극이 깃들어 있는 전설을 듣고 있노라니, 차는 어느덧 저차와꺼우와 르자이꺼우가 함께 엇갈리는 지점인 눠르랑(諾日朗)폭포에 도달했다. 지우자이꺼우에는 크고 작은 폭포가 모두 15군데 있다. 이 가운데 눠르랑은 폭이 300m로 가장 넓다. 높낮이 또한 20m로 장엄함과 웅장함을 자랑하는 눠르랑은 이틀동안 보아온 다른 폭포들을 하나로 합쳐놓은 듯 했다. 폭포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관상대에서 바라본 눠르랑의 윗부분 또한 키 작은 나무들로 덮여있었다. 믿기 힘든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에 경의를 표해야만 했다. '도대체 급속히 떨어지는 물 위로 어떻게 저리 키 작은 나무가 번식할 수 있을까?' 지우자이꺼우는 그야말로 호수 하나하나, 폭포 군데군데가 모두 한 폭의 멋들어진 동양화처럼 선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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