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설명: 황제현에서 북쪽으로 3km 떨어진 산 위에 자리잡은 황제릉의 황제묘.
ㅇ
위치
- 황제릉은 연안시(延安市, 옌안스) 황제현(黃帝縣, 황띠시엔) 북쪽으로 3km, 서안시에서 200km 떨어진 황제의
능묘이다.
ㅇ 유래
- 황제릉은 중국의 전설적인 시조인 황제가 죽은 뒤 교산(橋山)에 묻혔다(黃帝崩,
葬橋山)는 '사기'의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전한 한무제는 지금의 황제현 교산을 찾고 황제묘를 가묘 형식으로 성역화하여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황제릉의 고칭은 '고헌원황제교릉'(古軒轅c橋陵)이라 하는데, 중국 역사상 군주를 황제(皇帝)라 부른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 전설에 따르면 황제는 110세까지 살다가 죽은 뒤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하늘로 올라가기 전 그의 승천을 아쉬워하는
백성들에게 황제는 자신이 입던 의복을 남겼는데, 후대인들이 이를 비롯하여 황제와 관련된 유물을 모아서 지금의 황제묘에 묶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따라서 황제릉은 후대 중국인들의 상상력에 의해 성역화된 묘소라 할 수 있다.
- 황제릉이 지금의 규모로 성역화된 것은 1992년
섬서성 정부가 '황제릉 기금회'를 만들어 해외 모금 활동을 펼치면서 묘역 단장을 시작하면이다. 중국 정부는 성 정부의 정비작업을 물심 양면으로
적극 도왔고 전세계의 화교들 또한 묘역 정비 명목으로 2억 위안(약 260억원)을 헌금했다. 이는 중국을 하나로 묶을 정신적 구심점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ㅇ 볼거리
- 중국인에게 있어서 황제릉은 단순한 릉원이 아니라 한족의 구심점이고 마음의
뿌리이다. '천하제일릉'(天下第一陵)이라고 불리는 황제릉은 전체 면적 56만7천평방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이다. 황제릉은 크게
헌원묘(軒轅墓), 중화동심비림(中華同心碑林), 한무선대(漢武仙臺), 고비(古碑), 황제묘(黃帝墓)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중화동심비림은 중국 전국 31개 성시와 홍콩, 마카오까지 참여하여 만든 공덕단(功德壇)이다. 중화동심비림의 전체면적은 1천367평방미터인데
하나의 비석 면적만 42평방미터에 달한다. 중국이 황제릉에 중화동심비림을 건설한 이유는 중국인의 민족단결을 대내외에 과시하여 중국인에게 긍지심을
주기 위해서이다.
- 교산 산상의 황제묘는 헌원묘에서 3km 정도 떨어져 있다. 교산 입구에서 400m의 황제신도를 거쳐서 황제와
한무제가 손수 심었다는 수천년된 아름드리 수목 숲을 지나 닿는 황제묘는 한무제가 여기를 찾아 산세를 살펴보았다는 한무선대(漢武仙臺), 한무제가
직접 섰다는 비석인 교산쌍기(橋山雙驥), 황제의 가묘인 황제묘 등이 있다. 황제묘는 역사적인 고증이 희박한 장소이지만 중국인의 정신적인
구심점으로 성역화된 곳이다.
- 2004년에는 중국 공산화 이후 처음으로 황제릉에서 공제(公祭)가 열렸다. 홍콩 영화배우 성룡이
사회를 자청하고 대륙의 중국인은 물론 해외 각지에서의 화교 등 3천여명의 인파가 참석했다. 황제릉을 찾는 참배객도 해마다 늘어나 2004년에는
50여만명으로 늘었고 황제를 앞세운 중화민족주의를 국가종교화하려는 발걸음까지 보이고 있다.
ㅇ 여행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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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릉의 개방시간은 매일 08:00~17:30이며, 입장료는 모든 곳을 다 볼 수 있는 통표가 30위안(우리돈 4,000원), 헌원묘만 보는데
19위안(우리돈 2,600원), 황제릉만 보는데 16위안(우리돈 2,300위안)이다.
- 교통편은 서안에서 출발한다면 기차역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황제릉까지 가는 버스를 타는데, 서안에서 황제릉까지는 약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연안에서 황제릉까지는 연안 시외버스터미털에서
황제릉이나 서안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헌원묘에서 황제릉까지 오가는 삼륜 오토바이가 많은데, 5위안 안팎에서 흥정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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