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설명: 양귀비가 묻혀 있는 반구형의 벽돌무덤. 현종을 현혹했던 양귀비의 미색은 온데간데 없고 황량한 무덤만이
쓸쓸히 남아 있다.
ㅇ 위치
- 양귀비묘는 서안에서 서쪽으로 60km 떨어진 섬서성 흥평시(興平市,
싱핑스) 마외진(馬嵬鎭, 마웨이전)에 자리잡고 있다.
ㅇ 유래
- 양귀비가 묘가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長安, 지금의 서안)에서 멀리 떨어진 흥평시에 묻히게 된 데에는 안록산(安錄山)의 난과 연관이 있다. 당나라의 국운을 쇠퇴시킨 계기가
되었던 안록산의 난은 양귀비의 사촌오빠였던 양국충(楊國忠)과 대립했던 안록산이 755년 11월 8천명이 넘는 기병을 이끌고 장안을 진격하면서
시작되었다.
- 당나라 황제였던 현종과 그의 애첩 양귀비는 안록산의 난을 피해서 지금의 사천(四川, 쓰촨)지방으로 도망갔는데,
수행했던 근위병들이 모반을 일으켜 양국충을 죽이고 양귀비를 죽이라고 현종을 위협하였다. 결국 현종은 양귀비에게 자결을 명하였고 양귀비는 흥평시의
한 길가 불당에서 목을 매어 38세의 나이로 화려하면서 기구한 삶은 마감했다.
- 757년 비밀리에 마외진에 양귀비를 묻은 현종은
그후 죽을 때까지 양귀비를 그리워했다. 안록산의 난이 끝나고 황제의 자리를 아들에게 양위한 현종은 따가운 세인의 눈초리 때문에 양귀비의 시신을
다시 수습하여 황실의 일원이었던 사람의 무덤과 거리가 먼 초라한 묘소와 작은 사당을 지어 양귀비를 추모했다고 한다.
ㅇ
볼거리
- 섬서성의 다른 농촌 마을들과 같이 황토고원 위의 마외진에 자리잡은 양귀비묘는 다른 당나라 황실 무덤과 달리
아담하고 소박하다. 청대에 이르러 성역화되기 이전에는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들었던 양귀비묘는 지금은 무덤과 더불어 6m 높이의 대리석으로 된
양귀비상과 사당, 시비당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 양귀비의 무덤은 중국의 다른 무덤양식과는 달리 높이 3m, 지름 5m 정도의
초라한 반구형 벽돌무덤이다. 양귀비의 무덤 위에 벽돌을 쌓게 된데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마외진 근처에 사는 너무 못생겨서 시집은 못
가는 한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
-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양귀비의 무덤에 쓰러져 울었다. 그러던 중 아가씨의
얼굴에 무덤의 흙이 묻었는데, 집에 와서 보니 못생겼던 얼굴은 예쁘게 변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양귀비 무덤의 흙을
'귀비분'(貴妃粉)이라면서 너도나도 퍼가기 시작하여 결국 청나라에 이르러 지방관청이 벽돌을 쌓아 이를 방지하게 되었다.
- 원래
초라했던 양귀비의 무덤 주위에는 후대의 많은 시인들이 찾아서 양귀비에게 바치는 시를 남겼다. 이를 모은 비석들이 찾는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데,
그 가운데에는 당 희종이 쓴 '행촉경마외'(幸蜀經馬嵬), 청말 임칙서가 쓴 '제양태진묘'(題楊太眞墓) 등의 시비가 있다.
ㅇ
여행팁
- 양귀비묘의 개방시간은 매일 08:00~18:00이며, 입장료는 15위안(우리돈 2,000원)이다. 교통편은 서안
기차역에서 출발하는 법문사 전용 여행노선차(旅遊西線)가 양귀비묘를 경유하니, 이를 이용하면 된다. 또한 서안 기차역 혹은 옥상문 장거리터미날에서
흥평시로 향하는 시외버스를 타서 1시간여를 타고 간 뒤, 흥평시에서 양귀비묘까지 연결된 시내 버스를 갈아타면 양귀비묘 입구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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