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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소안탑(大雁塔, 샤오옌타)

박영복(지호) 2007. 1. 11. 17:38
[서안]소안탑(大雁塔, 샤오옌타)





* 사진 설명:
오랜 세월의 풍상을 보여주는 소안탑. 여러 번의 지진으로 인해 파괴된 탑신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ㅇ 위치

- 소안탑은 서안(西安) 남우의서로(南友誼西路) 동단 가운데에 위치한 천복사(薦福寺) 경내에 자리잡고 있다.

ㅇ 유래

- 684년 사성(嗣聖) 원년에 건립된 천복사는 당나라 도읍 장안의 유명한 사찰 중 하나로서, 개화방(開化坊) 남쪽에 위치하여 있었다. 원래 이곳은 수양제가 진왕(晉王)으로 있을 때 왕부였고, 그 후 양성(襄城)공주와 당 중종 이현(李顯)의 저택이었다.

- 당 중종이 즉위 후, 죽은 당 고종 이치(李治)에게 사후 백일, 헌복(獻福)하기 위해 자기가 있던 왕부를 사찰로 다시 건축한 것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헌복사(獻福寺)라 불렀는데, 698년에 이름을 천복사(薦福寺)라고 고쳤다.

- 왕부를 고쳐 절을 만들었기 때문에 탑을 세울 마땅한 자리가 없어 20년 후에 길 하나 사이를 둔 안인방(安仁坊)에 소안탑을 세웠다. 그로부터 당나라 말기 황소의 난 등 혼란기에 천복사는 완전히 훼손되고 소안탑만 남게 되었다. 그 후 소안탑을 중심으로 하여 천복사를 재건설된 것이다.

- 전설에 따르면 소안탑은 707년 중국 당나라의 승려 의정법사(義淨法師)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과 경전 번역본을 보존하기 위해 자금을 대주도록 조정에 요구하여 건설된 것이라거 한다. 대안탑과 마찬가지로 역시 당나라 탑이지만 건설기간이 반세기 늦고 크기도 대안탑보다 작으므로 소안탑이라 부른다.

- 소안탑은 원래 전체 15층, 높이 45m였으나 수 차례에 걸친 지진에 의해 위쪽 두 층이 파손되어 현재는 13층 밖(38m)에 남지 않았다.

ㅇ 볼거리

- 소안탑은 탑 외형으로 볼 때, 풍격이 대안탑과 완전히 다르다. 높이가 43.38m, 15층이며 평면은 사각형이다. 탑의 맨 아래층이 가장 높고 올라갈수록 층의 높이가 점차 낮아진다. 아래 층의 남·북쪽에 각기 권문(券門)이 나 있고, 그 위의 각 층마다 권창(券窓)이 있다.

- 소안탑에는 지진과 기단석(基壇石)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1487년 섬서성에 진도 6급 지진이 일어났는데, 소안탑의 기단석이 반으로 갈라졌다. 34년이 흐른 뒤 1521년 또 한 번의 지진이 일어났다. 다음 날 살펴보니 갈라졌던 돌이 달라붙어 있었다. 이에 놀란 사람들이 이를 신이 기적을 일으켜 합쳐주었다고 '신합'(神合)이라 불렀다.

- 그러나 나중에 조사해 보니, 원래 중국의 고대 장인들은 건축물을 지을 때 기단에 반구형 돌을 썼다고 한다. 그 이유는 외부에서 반구형의 돌에 힘이 가해졌을 때 돌 안에서 내부응력이 생겨나서 갈라진 돌이 서로 붙는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과학적인 이유에서 소안탑 기단석이 붙는 것을 옛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 소안탑은 대안탑과는 달리 어둡고 나무 계단이 좁고 낮기 때문에 올라가기 쉽지 않다. 그러나 탑 맨 꼭대기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으므로 대안탑에 비해서 더 많은 곳을 볼 수 있다. 대안탑이 거대하고 직선적인 실루엣의 남성적인 탑이라면 소안탑은 조금씩 무너져버린 모서리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어 전체적으로 은은한 실루엣이 돋보이는 여성적인 탑이다.

ㅇ 여행팁

- 소안탑의 개방시간은 매일 08:00~17:00이며, 입장료는 15위안(우리돈 2,200원)이나 소안탑을 오를 경우 10위안을 더 내야한다. 교통편은 시내 각지에서 출발하는 21, 29, 402, 610, 707번 등의 버스가 소안탑 정거장에서 정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