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설명: '碑'자에 점 하나가
없는 비림박물관의 현판. 중국 내에서도 비석이 가장 많이 보존되어 있다.
ㅇ 위치
- 비림박물관은
서안(西安) 삼학가(三學街) 15호 남문성곽 옆의 문창문(文昌門) 앞에 자리잡고 있다.
ㅇ 유래
- 비석의
숲이라고 일컬어지는 비림박물관(碑林博物館, 뻬이린보우관)은 원래 공자문묘(孔子文廟)였던 곳에 지어진 곳이다. 1087년 북송조 원우 2년부터
당나라 비석들을 옮겨오면서 형성되었으니, 이미 9백여년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 비림 박물관에는 한나라 때부터 근대의 각종
비석, 묘지명 2,300여개가 있는데 그 중에 1,807개의 비석을 7개의 진열실과 8개의 비정(碑亭)과 6개의 비랑(碑廊)에 전시하고 있다.
석각예술실에는 100여 건의 한(漢)대부터 당(唐)대의 릉에서 출토된 석각예술과 종교 석각예술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의 총 면적은
31,900평방미터이며 진열실 면적은 3,000평방미터에 달한다.
- 비림박물관은 전형적인 사당식 건물로 현재도 여러 면에서
공묘(孔廟)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비림박물관에는 반원 모양의 호수와 그 위에 놓인 돌다리가 있다. 원래 공자문묘는 지명도나 규모에 따라
등급이 나누어져 있는데 이곳은 등급이 낮아 반원호수를 조성했다. 반면 공자의 고향에 있는 문묘에는 등급이 높은 원형 호수가 놓여
있다.
- 호수 위의 돌다리를 건너 문을 들어서면 길 양쪽에 늘어선 정루(井樓)와 조각상을 볼 수 있다. 이 조각상들은 실크로드
시발점에서 가져온 것으로, 말과 낙타의 고삐를 묶었던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정루 안에는 황제가 쓴 공덕비가 들어있다. 청나라 강희제에서부터
건륭제에 이르는 시기는 소란과 분란도 많았으나 이를 다스리고 청나라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 '비림'이라고 쓰여진 현판에는
'碑'자에 점 하나가 없다. 현판은 청나라 때 아편을 싣고 온 영국의 배를 태워 아편전쟁(阿片戰爭)을 부른 임칙서(林則徐)가 쓴 것이다. 당시
임칙서는 아편전쟁이 화친으로 돌아서자 전쟁도발자로 몰려 신강위구르지역으로 유배되었다. 임칙서는 유배지에서 풀려나 돌아오는 길에 임칙서는 나머지
점 하나를 쓰겠다고 했으나 돌아오는 길에 병사하여 글자를 끝내 채우지 못했다. 그 때의 아쉬움이 남아 있는 듯하다.
ㅇ
볼거리
- 비림박물관은 서안시 남쪽 성벽 괴성루(魁星樓) 아래에 있으며 비석이 숲을 이루고 있어 비림이라고 한다.
비림박물관은 중국 전통적인 공묘(孔廟)의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중국 고대비석을 제일 일찍 보존하고 명비(名碑)가 제일 많은 예술 보물고
이다.
- 비림박물관에 들어서서 첫 번째로 관광객을 맞이하는 것은 경운종(景云鐘)이다. 경운종은 원래 영성문 북쪽 정자에 있는데
중국에서는 '천하제일종'이라고 한다. 당대 예종 경운 연간에 만들었져서 경운종이라 불리는데, 높이 2.47m, 직경 1.65m에 무게가 6톤인
청동으로 주물된 종이다.
- 종 입구는 6개의 물결선으로 되어 있고, 종의 몸체에는 학, 비천, 용, 봉황, 맹수의 머리(獸首),
만초(蔓草), 채색구름 도안이 있다. 종뉴는 한 마리 맹수 머리로 하여 '포뇌(蒲牢)'라고 한다.
- 종의 중앙에는 292자의
명문이 주물되어 있는데 당 예종 이단(李旦)의 친필로, 명문 내용은 도교와 종소리에 대한 찬미로 구성되어 있다. 해마다 중국 CCTV에서 울리는
새해의 종소리가 바로 이 경운종의 종소리이다.
- 박물관 전반부 중추선의 양측에 7개의 碑亭이 있고, 亭內에는 각각 巨碑가 있다.
이 비정은 청대에 건립한 것이다. 비정 내에는 가장 크고 가장 화려한 '석태효경'(石台孝經)이 비치되어 있다.
- 비림 내에서 가장
큰 비석인 석태효경(石台孝經)은 745년 당나라 현종은 친필로 효경을 적어 비석에 글씨를 새기게 했다. 효경(孝經)은 공자와 그의 제자인
증자(曾子)가 나눈 효에 대한 문답을 적은 경서이다.
- 외부의 전시물을 다 보았다면 전시실로 발길을 돌려분다. 제1전시실에 있는
개성석경(開成石經)은 국자감(國子監) 태학(太學) 내에 있었던 것으로, 873년 당나라 문종때 1백14개의 석판에 65만 2백여자를 사용하여
주역(周易), 상서(尙書), 시경(詩經) 등의 12개의 경전을 애유회(艾由晦), 진개(陳玠) 등의 해서로 새긴 것이다.
- 주역,
상서, 시경, 주례, 의례, 예기, 춘추좌씨전, 춘추공양전 춘추곡량전, 논어, 효경, 이아(爾雅) 등의 12부 경서는 옛날 봉건지식인들의
필독전서로서 과거를 보려면 이 12경전의 내용을 다 통달해야 했다. 책이 흔하지 않던 시기라 학생이 자신의 필사본과 석판을 비교하여 틀린 문장이
있는지 확인하도록 하고 12개 경전을 영원히 보관할 수 있도록 돌에다 새겼다. 12경전은 당시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해 학자들이 베껴쓰는 과정에
틀린 글자가 많았기에 이를 비석에 새겨 범본(範本)으로 사용하였다.
- 제2전시실에는 당대의 저명한 서예가들의 비석을 전시하여
역대로 서예를 공부하는 범본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된 비석 중에서 안씨 가문의 족보를 새긴 '안씨가묘비'(顔氏家廟碑)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볼 수 있는 대당삼장지효서비(大唐三藏至敎序碑)가 유명하다. 안씨가묘비는 당나라의 이름난 서예가 안진경(顔眞卿)이 쓴 것으로, 당나라 때에는
유명가 서예가의 글씨를 얻어다 부모님 비석을 해 드리는 것을 큰 효도로 여기는 풍습이 있었다.
- 이외에도 구양순(歐陽詢)의
황보탄비(皇甫誕碑), 구양순의 아들 구양통(歐陽通)이 쓴 도인법사비(道因法師碑), 저수량(楮遂良)의 동주성교서비(同州聖敎序碑), 당나라 말기
유공권(柳公權)의 현비탑비(玄秘塔碑), 장안 홍복사(弘福寺)의 스님 회인(懷仁)이 왕희지체를 집자하여 쓴 대당삼장성교서비(大唐三藏聖敎序碑),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 등이 전시되어 있다.
- 제3전시실에는 한나라부터 북송, 위진 남북조 시대의 비석과
묘지명(墓地銘)을 모아 놓아서 중국서예사의 변천과정을 살필 수 있다. 처음에는 관을 굴에 밀어 넣던 돌을 쓰이던 것이 진나라 이후 비석이
되었다. 이곳에는 또한 장욱(張旭)이 초서로 쓴 '천자문비'(千字文碑)가 있다. 초서는 이백과 더불어 장안의 2대 괴물이라는 광초 화초가 창안한
글씨이다.
- 그 밖에 제4,5,6전시실에는 원·명·청대의 비석이 있다. 제4전시실에는 송에서 청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시문비(詩文碑)가 있다. 제5전시실에는 주로 청나라 비석을 비치했는데, 그 당시 사회활동에 대해 적어놓아 사회사와 지방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되고 있다. 일부 비석은 중요한 서예예술 가치를 또한 지니고 있다.
- 제6전시실에서는 청나라 시가(詩歌), 산문(賦)이
위주인데 원·명시대의 서예가들의 작품도 있다. 또한 탁본실과 상점이 마련되어 있어 즉석에서 탁본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탁본 가격은
150위안에서 200위안 정도이다. 서책 가격은 귀한 탁본일수록 비싼데, 약 300위안 정도한다.
- 비림 뒤편의 석각예술실에는
서한때부터 당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돌조각 예술품 70여건이 구비되어 있다. 이중 가장 뛰어난 것은 당 고조의 무덮 앞에 높여 있던 베트남에서
조공물로 바친 코뿔소를 보고 만들었다는 코뿔소 석상이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든 코뿔소 석상의 무게는 10여t에 이르러 능 앞에 세워놓은 동물
석상 중에서 제일 크다.
ㅇ 여행팁
- 비림박물관의 개방시간은 매일 08:00~17:00이며, 입장료는
30위안(우리돈 3,900원)이다. 교통편은 시내 각지에서 출발하는 14, 239, 402번 등의 버스가 비밀박물관 앞이나 비림박물관과 접해
있는 서원문(書院門) 입구에서 정차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