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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히는 일본의 상술

박영복(지호) 2005. 6. 15. 18:04

기가 막히는 일본의 상술

 

일본에 살다보면, 일본기업의 기가 막히는 상술에 놀라는 경우가 자주 있다. 소비자의 시선에서 소비자가 꼭 사도록 하는 일본의 상술은 거리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일본에서 일반화돼 있는 상술중에는 독특한 가격표시가 있다. '1000엔'을 '999엔'으로 표시해, 소비자로 하여금 저렴하다는 착시현상을 일으켜 제품을 사게 만든다. 이 외에도 독자적인 상술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일본기업들은 무수히 많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알고 있는 아래 3개사를 통해 기가 막히는 일본의 상술을 잠깐 살펴보도록 하자.


 

ㅇ 요도바시 카메라 (http://www.yodobashi.com/)

오사카시 한복판(우메다역)에 하루 8만명이 들리는 거대한 전자상가가 있다. 이름해 전국에 19개 점포를 가진 요도바시 카메라이다. 일본을 처음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한 점포에서 연간 960억엔(약 1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전자상가가 있다"고 한다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전자상가 이름에 왜 '카메라'가 붙어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요도바시 카메라는 카메라계 할인점에서 시작해 카메라, 컴퓨터, 가전제품 등 53만 아이템을 취급하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아직도 이름에 '카메라'가 남아있는 것이다.

1970년대에 카메라 소매업으로 시작한 요도바시는 현금결제방식으로 제품을 확보했다. 1980년대의 카메라 시장은 포화상태였으나, 제조업체는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과잉생산을 계속했고, 결산을 앞둔 제조업체들이 현금결제를 해주는 요도바시에 철저히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했다. 이런 관계가 몇 년이 지나자,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량을 확대한 요도바시는 제조업체의 정규거래처가 된 것이다.

또한, 요도바시 카메라는 80년대 후반, 카메라와 전자제품의 융합상품인 무비카메라를 취급하면서 냉장고를 비롯한 전자제품으로 취급상품을 늘려갔다. 그리고, 90년대 후반에 들어 카메라와 같이 본체를 저렴하게 팔고 주변기기에서 수익을 얻는 상품인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급성장하게 된다.

컴퓨터 본체는 이익률이 5-7%밖에 안 돼, 한대 판매할 때마다 몇만원씩 손해가 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잉크 카트리지와 케이블 등 액세서리 상품의 이익률은 20%를 넘는다. 요도바시 카메라가 대형점이 아니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익원인 액세서리 진열을 위해 일정이상의 크기가 확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요도바시 카메라가 역근처에 입지한 이유는 고객이 출퇴근시 들려 건전지나 프린터 잉크 등을 구입할 수 있는 역근처가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요도바시 카메라 상술의 절정은 포인트 환원제도에 있다. 포인트 카드는 동사 시스템개발 부장이었던 쿠리야마 상무가 대장성(大藏省)과 교섭을 거듭해 90년에 개발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양판점에서 포인트 환원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포인트 카드의 원천은 요도바시 카메라인 것이다.

필자도 포인트 카드를 만들어 요도바시 카메라에서 전자제품을 구입하고 있다. 10만엔짜리 제품을 구입하면 1만엔정도(보통 10-15%) 포인트를 적립해주고, 다음 상품 구입시 전자화폐처럼 사용할 수 있다. 결국, 1만엔 전자화폐를 사용하기 위해 다시 요도바시 카메라를 찾게 된다. 요도바시 카메라 입장에서는 1만엔을 전자화폐로 적립해줬지만, 고객이 다시 방문해 원가가 5000엔인 상품을 1만엔 전자화폐로 사간다면, 실제로는 5000엔의 비용으로 1만엔을 할인해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폭넓은 상품 아이템의 구비도 포인트 환원에 의한 소비를 유발하는 효과가 있다.

최근에는 기한한정 총구입금액별 추가 포인트 제도도 실시하고 있다. 하루 총구입금액이 5만엔 이상이면 포인트 3%추가, 10만엔 이상이면 5% 추가, 20만엔 이상이면 7%를 추가해준다. 필자는 세탁기를 구입했는데, 영수증에 1만엔만 더 구입하면 5% 포인트를 추가해준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계산해보니 1만엔짜리 상품을 구입해 총구입금액 10만엔을 넘기면, 5%(5000엔) 포인트를 추가로 환원받을 수 있었다. 1만엔짜리 상품을 거의 절반가격에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된다. 평소에 구입을 망설이고 있었던 1만엔짜리 소형청소기까지 구입해버렸다. 제품을 구입하고 나오면서 소비자의 잠재적 수요까지도 긁어모으는 요도바시 카메라에 한방 먹은 기분이 들었다.

요도바시 카메라는 전철역 근처에 입지하고 있어, 평당 판매량을 늘리지 않으면 안되는 숙명에 놓여있다. 이런 점포입지에서 나오는 막강한 판매력은 자연스럽게 제조업체로 하여금 요도바시 카메라에 협조적이 되도록 한다. 잘 팔리지 않는 상품이 있어 재고가 쌓이면, 다음 협상에서 불리하므로 제조업체에서 판매 장려금을 투입하면서까지 자사제품의 재고처리를 도와준다. 또한, 제조업체에서 자사제품의 판촉요원을 파견해 점포의 인건비를 덜어준다. 판매원을 파견하지 않으면, 타사 판매원이 경쟁제품만 계속 판매하기 때문에 판매원을 파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상술로 끝없이 성장하는 요도바시 카메라는 소비자를 빨아들이는 하나의 거대한 블랙홀이다.


 

ㅇ 갸자스 재팬(http://www.gathers.co.jp/)

갸자스 재팬(Gathers Japan)은 일본에서 커튼 유통상식을 파괴해 승승장구하고 있는 벤처기업이다. 소비자의 시점에서 오더커텐의 유통 구조를 대담히 바꿔 4년간 60개의 점포망을 구축했다. 갸자스 재팬의 커튼 매장을 도입한 사이타마현 한 가구점은 커튼매출이 월 30만엔에서 50배인 월 1500만엔이 됐다. 이런 경이적인 신장을 알게 된 홈센터 각사에서 출점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급성장의 비결은 독자적인 가격설정이다. 창문의 사이즈에 따라 S.M.L(小,中,大) 3개의 가격대로 통일해, 대기업 메이커의 상품을 판매한다. 또한, 치수재기, 공사비는 전국무료로 레일 등의 부자재, 봉제비용 등도 전부 포함돼 있는 최종가격이다. 종래 일본의 오더커텐의 가격은 원단 크기에 따라 50종류 이상 세분화돼, 소비자는 자택의 창문 사이즈를 조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또한, 표시된 가격은 통상 원단만의 가격으로 제경비가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견적을 내보면 합계금액이 원단의 배이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종래의 판매제도는 안정적인 이익을 내고 싶어하는 메이커의 시점에서 만든 시스템이다. 고객이 구입하기 쉬운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후쿠다 사장은 개업 당초부터 고객시점에서 판매방식을 개선해, 업계의 상식을 파괴할 작정이었다.

치수재는 작업, 커튼 부착작업도 자사 직원이 직접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종래의 판매점은 외부 전문업자에게 맡겼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업자가 다르면, 대금도 달라졌다. 갸자스 재팬은 이 과정을 내제화함으로써 경비를 전부 포함한 최종가격을 제시할 수 있게 됐다. 다만, 3개의 심플한 가격대이기 때문에, 커튼 크기에 따라서는 적자를 보기도 한다. 그러나, 동사는 심플한 가격제도를 우선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손해는 감수한다는 방침이다. 갸자스 재팬은 가격할인을 전혀 하지 않지만, 제품이 잘 팔리는 이유는 '저렴함'보다 이 회사의 '알기쉬움'을 고객이 더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갸자스는 매장 레이아웃에서도 업계 상식을 파괴한다. 갸자스 매장에는 실물 사이즈의 커텐 샘플이 무수히 전시돼 있다. 120평방미터의 가게에 커튼샘플이 1000매나 전시돼 있다. 통상 커텐 판매점에는 카타로그 판매가 주류로 고객은 카타로그에 게재된 원단의 조각과 사진으로 커텐 실물의 이미지를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점포에 진열된 샘플도 500매 정도로, 크기는 창문의 절반정도밖에 안된다. “이래서는 고객이 커텐을 창문에 걸었을 때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다."고 생각한 후쿠다 사장은 1년 이상 메이커 각사와 교섭해, 실물 사이즈의 샘플을 제공받았다. 실물 전시의 효과는 생각보다 컸으며, 연간 몇 매밖에 팔리지 않았던 대기업 메이커의 고급상품이 5배이상이나 판매가 증가했다. 이 사실을 알게된 메이커가 자사 판매점에서도 실물 전시를 시작했을 정도이다.

갸자스 재팬은 메이커의 입장이 아닌, 소비자의 입장, 시선에서 판매방식을 바꿔 성공한 좋은 사례이다. 이밖에도 소비자가 구입하기 쉬운 시스템 구축으로 성공한 사업형태로는 24시간 주민밀착형 편의점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ㅇ 스타지오 아리스(http://www.studio-alice.co.jp)

'사진관'하면, 중년남성이 사진을 엄숙하게 찍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를 탈피하고 재미있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관을 지향해 성공한 일본기업이 있다. 바로 전국에 수백개의 체인점을 가진 '스타지오 아리스'이다.

이 사진관의 특징은 어린이 전문 사진관이라는 점과, 점포가 외부에 훤히 공개돼 있어 남이 촬영하는 장면을 볼 수 있으며, 직원이 모두 젊은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뿐 아니라, 사진용 의상을 400벌이나 갖춰놓고 있으며, TV모니터를 통해 촬영한 사진을 현장에서 볼 수 있으며, 그중에서 현상하고 싶은 사진만을 골라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야말로 가볍게 방문해서 가족들과 즐겁게 사진을 찍고 돌아올 수 있는 사진관이다.

요즘같은 소자화(小子化)시대에, 어린이는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의 부모, 어머니의 부모를 합쳐 6개의 지갑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다. 특별한 날에 자식, 손자와 사진관에 가는 일은 기쁜 일이며, 6개의 지갑에서 나오는 돈이 아깝지 않다.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해 스타지오 아리스는 성공의 길을 걷고 있다.

필자도 딸의 100일 사진을 찍으러 스타지오 아리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 드레스, 키모노 등 무료로 빌려주는 의상이 많이 있었으며, 그중에서 3개를 골라 딸과 함께 사진촬영을 했다. 사진촬영이 끝난 후, TV모니터를 보면서 총 12장의 사진중에서 4장을 골라냈다. 촬영료 약 3만원만 내면, 잘 찍힌 사진 1장만 고르든 한 장도 안 고르든 사진관에서 추가비용을 청구하지 않지만, 고르지 않은 사진필름은 폐기처분된다고 해 남기고 싶은 사진은 다 골랐다.

얼마의 비용으로 사진을 찍겠다는 별다른 생각없이 사진관을 방문했다가 생각보다 많은 30만원정도를 지출했다. 100일 기념사진이므로 1장만 골라, 총비용 6만원으로 끝낼 수도 있었지만, 의상을 바꿔가며 여러 장을 촬영했기 때문에 의상별로 1장씩은 고르고 싶은 충동을 어찌할 수 없었다. 필자는 점포에서 나와 집에 돌아가면서, 소비자의 마음을 꽉 붙들어 제품을 꼭 사도록 하는 일본의 뛰어난 상술에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료로 의상을 빌려주므로 손님은 여러 의상을 골라 여러 장을 찍게 되고, 사진이 잘 나오도록 여종업원이 아기를 웃겨가면서 정성스럽게 찍어준다. 잘 나온 사진을 남기고 싶다는 충동 때문에, 손님은 예산 걱정은 뒤로하고 여러 장을 고르게 된다. 여종업원이기 때문에 어린이들도 잘 웃으며, 즐겁게 찍을 수 있으므로 손자, 손녀와 유원지 가는 기분으로 할아버지, 할머니가 동반해 사진을 찍고 돈 걱정안하고 사진값도 내준다. 평범한 사람은 생각해내기 어려운 기가 막힌 상술이다.

스튜디오 아리스는 사진관 홍보도 손님에게 인심을 베풀면서 한다. 필자가 100일 사진을 찍었을 때, 여종업원이 사진중에서 한 장을 무료로 크게 현상해 줄테니, 한달간 사진관 앞에 전시하게 해달라고 한다. 100일 사진 홍보를 하고 있던 터라 실제 사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필자는 쾌히 승낙했다. 공짜로 한 장을 크게 현상해서 받을 수도 있고, 딸의 사진이 사진관에 전시까지 되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잘나온 사진을 영구히 매점 앞에 전시하는 기존 사진관과 달리, 손님에게 인심도 베풀면서 홍보도 하는 사진관이 또 있을까 싶다.

위의 3개사 외에도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상술로 성공한 기업은 일본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잃어버린 10년, 장기불황이 있었기에 더욱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기업이 생겨나고, 발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기가 막히는 일본의 상술도 결국 소비자의 시선에서, 소비자를 위한 점포 만들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자료 : 경제주간지 닛케이 비즈니스 2003,2, 주간동양경제 2004.8.7, 나니와계 경제학 (PHP연구소, 2004.5.24 발행), 닛케이유통신문 2005.6.1, 요도바시 카메라, 갸자스 재팬, 스타지오 아리스 홈페이지, 필자 현장방문 등

작성자 : 오사카 무역관 김현호 (kennykhh@kotr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