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여간,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건설 반대투쟁은 강정마을 주민들과 평화 지킴이들의 열정과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지난 3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강정마을에 한 달 가까이 머물렀다. 그 기간 눈으로만 받아들이기도 벅찬 제주 강정 마을의 초목과 꽃들, 바다와 바람과 돌, 그 하늘 아래 온갖 생명들이 조화롭게 사는 모습은 어느 한구석도 감동 아닌 데가 없었다.
하지만 광활한 해군기지 공사장 펜스와 돌을 깨는 중장비 소리, 마을 비상상황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함성, 몸싸움과 절규는 비현실을 넘어 초현실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론 너무도 아름다운 강정마을에서 목도한 매일 매일의 험난한 일상과 이를 이끌어가는 마을의 모든 기운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놀라움은 이게 다가 아니다. 흔히들 '불온한 외부세력'으로 칭하는 강정마을의 평화지킴이들과 그들에게 세뇌된 마을주민이라는 식상한 공식을 세운다. 하지만 취재기간 중 알게 된 그 외부세력(?)들, 그들이 적어도 NGO경력이나 충분히 학습된 시민의식을 갖춘 이들일 것이라는 선입견은 대번에 깨졌다.
잠시 강정에 오가는 사람들은 많다. 저마다의 이유로 강정에 꽤 오래 머무는 사제와 목사 시민단체 활동가, 화가, 혹은 영화감독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건 어떻게 그 곳에 모였는지 가늠할 길이 없고 설명도 되지않는 지극히 평범한 많은 사람들이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기보다 이들의 일상을 따라가며 조용히 이야기를 들었다. 녹취를 하고 작업의 설정과 방향을 구상하는 동안 내게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마치 섭생이 안정된 아름다운 자연과 생명이 주는 기운이 이들에게 교양이나 계몽의 의식화를 넘어 내면의 사랑과 성찰을 일깨우는 듯했다. 그게 아니고서는 그저 어린 아이의 엄마이거나 또는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여성이 제주에 내려와 구럼비를 지키겠다는 그 무모한(?) 용기와 헌신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저 '구럼비 사랑'이라고 할 밖에…. 하물며 강정 마을주민은 무슨 이야기가 더 필요하겠는가.
그 중에는 과자나 놀이동산 보다 구럼비(중덕 바닷가)를 좋아하는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 지금은 펜스로 둘러쳐져 들어갈 수 없는 구럼비이지만, 그 이전 구럼비 바위와 그곳의 온갖 생명들을 보고 만지며 놀아보았던 선험적 체험을 지닌 아이들의 몸은 이미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애써 다른 시선의 선입견으로 폄훼할 구석을 찾아봤지만 되려 아이들에게 핀잔만 듣고 말았다.
아이들은 구럼비에서 즐겁고 행복한 기억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곳에서 제 부모와 마을 어른들이 당한 강제퇴거, 연행과 체포를 목격하며 견디기 힘든 슬프고 아픈 상처의 기억도 있다. 그럼에도 구럼비에서 느끼고 보았던 좋은 기억의 끈을 놓지 않았다. 불안하기도 했던 그 기억들을 간직한 아이들에게서 구럼비의 평화와 안전을 자신의 행복으로 일치시켜내는 놀랍고도 순결한 마음을 나는 보았다.
마치 의무감처럼 경직된 그림을 그려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작화의 시작과 출구를 찾게 된 그 지점이기도 하다. 거짓과 불법, 탈법으로 뒤범벅된 강정 마을 해군기지 건설과 그에 맞선 이 싸움이 지닌 그 어떤 정당성보다 우선해야 할 가치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내게는 이 연재를 아이의 시선으로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 이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강정마을 구럼비 소녀 '해나' 이야기 <1>
[손문상의 그림세상] "엄마, 이제 구럼비에 못 와?"
이창우 webmaster@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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