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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업체, 자재 공급중단…개성공단 고사 위기

박영복(지호) 2009. 6. 5. 06:29

 원청업체, 자재 공급중단…개성공단 고사 위기

 

개성공단 기업 철수 시작
남북 “개성공단 유지” 언급은 책임 떠넘기기 차원
개성공단 폐쇄땐 남 대외신인도 하락등 파장 클듯

 

개성공단에 갔던 화물차들이 2일 오후 경의선 도로를 통해 경기 파주 문산읍 남북출입사무소(CIQ)로 돌아와 차량심사대를 통과하고 있다. 파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한반도 정세가 격랑에 휩싸이며 개성공단 사업에서 손을 떼는 입주기업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 12월 가동을 시작한 개성공단은 숱한 굴곡에서도 강한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엔 미국의 중단 압력을 가까스로 피했다. 지난해 12월1일 북한의 체류인원 제한 조처와 올해 3월 한-미 합동군사연습 ‘키리졸브’ 훈련 기간의 통행 중단 조처에도 버텼다. 지난 4월5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뒤에도 설비를 철수하는 기업은 없었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북쪽의 2차 핵실험과 다음날 남쪽의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피에스아이) 전면 참여는 입주기업들에 직격탄을 날린 꼴이 됐다. 북쪽은 남쪽 정부가 피에스아이에 전면 참여하면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엄포를 놨고, 남쪽 정부가 피에스아이에 참여하자 지난달 27일 북한군 판문점대표부 명의로 미국과 한국이 “조선반도 정세를 전쟁상태로 몰아넣었다”고 주장했다.

 

남북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자 개성공단 입주기업 가운데 가장 약한 고리라고 할 수 있는 하청업체들에 가장 먼저 피해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원청업체들이 하청업체인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 원부자재를 대주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원청업체로선 돌발상황이 터지면 납기 준수가 불가능하고, 재고나 완제품의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개성공단 업체들에 주문을 주기 불안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특히 설비까지 남쪽으로 반출하고 베트남으로 공장 이전을 검토하고 있는 업체들이 나타난 것은 개성공단을 둘러싼 환경이 입주기업들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선을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공장 가동 중단이야 재가동하면 그만이지만, 설비 철수나 공장 이전은 아예 개성공단에서의 생산활동을 포기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돌파구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이 지난달 15일 개성공단 기존 계약의 무효화를 선언한 이후 지난 4월 한 차례 있었던 남북 당국간 개성 접촉은 재개 기미조차 없다. 북쪽이 임금, 토지임대료 및 사용료, 세금 등을 일방적으로 통보할 경우 남쪽 정부나 입주기업이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북쪽이 남쪽의 피에스아이 참여를 핑계 삼아 국지적인 무력 충돌이라도 일으킨다면 ‘개성공단 폐쇄’는 피하기 쉽지 않은 외길 수순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인력과 설비가 자칫 ‘인질’로 잡힐 수 있다는 공포감이 개성공단을 휩싸기 시작하면 ‘철수 도미노’ 현상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입주기업 관계자들은 내다봤다.

 

물론 통일부는 “개성공단 사업을 안정적으로 유지 발전시키는 입장은 변함없다”는 기존 방침을 되풀이하고 있다. 북쪽 입장을 비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도 개성공단 사업을 원만히 추진시키려는 것이 “북쪽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입주기업 관계자는 2일 “사실상 양쪽이 폐쇄에 대비한 책임 떠넘기기 수순으로 들어간 것 아니냐”며 “겉으로 내색은 안 하지만 상대방이 먼저 문을 닫겠다고 얘기해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개성공단이 사실상 문을 닫는 상황이 오면 한국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공단에 조성된 실물투자는 회수할 수 없고, 기업들이 기대했던 미래 수익도 물 건너간다. 노동자들의 일자리 상실과 남쪽의 대외 신인도 하락도 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어떤 경우든 개성공단 폐쇄만은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높아지고 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개성공단이 지금은 남북관계에 묶여 있지만 2006년 핵실험 이후처럼 북-미 해빙에 따라 남북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은 언제든 있다”며 “그때를 위해 지금 씨앗이라도 남겨둬야 한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