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설명: 남문 위 성벽에서 바라본 명고성과 남문
환성공원(環城公園)의 전경. 심한 황사로 인해 하늘이 뿌옇게 보인다.
ㅇ 위치
- 명고성(明古城,
밍구청)은 서안 시내를 높이 12m, 둘레 14km, 성벽 위쪽 폭 12~14m, 밑쪽 폭 15~18m의 형태로 둘러싸여
있다.
ㅇ 유래
- 명고성은 1370년 명태조 주원장 3년에 공사가 시작하여 1378년 완성되었다.
명고성은 고대 고대 성벽 중 제일 완전하게 보존된 성벽으로 남경(南京) 고성과 더불어 중국 양대 고성 중 하나이다.
- 건설 당시
남쪽과 서쪽의 성벽은 남아 있던 수당시대의 성벽을 기초로 하여 더욱 높이고 두껍게 하였고 아울러 동쪽과 북쪽을 향해 약 1/4정도 확장하여 동쪽
성벽이 2,886m, 서쪽이 2,706m, 남쪽이 4,256m, 북쪽이 4,262m로 하여 모두 13,912m에 이르는 규모가
되었다.
- 명고성은 이후 세 차례에 걸친 보수작업을 걸쳐 원래의 흙성벽 내외에 푸른 벽돌을 쌓았고, 성루를 보수하여 벽돌을 쌓고
배수계통을 수선하였다. 1983년에 있었던 대규모 보수와 수선을 통해서 훼손된 동문과 북문의 전루(箭樓), 남문의 갑루(閘樓), 조교(弔橋:
가동교)를 보수하고, 환성공원(環城公園)을 건설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ㅇ 볼거리
- 명고성의 성벽
높이는 12m, 기초 넓이는 18m, 웃부분 넓이는 15m이다. 성벽이 넓고 높이 쌓을 수 있었던 것은 황토를 다진 판축(板築) 덕분이다. 이
황토는 석회 및 찹쌀즙 그리고 다래즙을 섞어서 다진 것으로 굳으면 돌보다도 훨씬 더 단단해졌다.
- 성벽에는 군사방어 시설인
호성하(護城河), 조교(弔橋), 갑루(閘樓), 전루(箭樓), 정루(正樓), 각루(角樓), 적루(敵樓), 여장(女墻), 타구(垜口) 등이 있어
성을 보호하고 있다.
- 성벽의 동서남북에는 각기 문이 있는데 스스로의 용도가 달랐다. 남문은 황제만이 다닐 수 있는 문이고,
북문은 사절단이 오가는 문, 동문은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곡식, 생필품 등의 공물들이 들어오는 문, 서문은 실크로드로 향해 열린 문으로 서방의
상인들이 낙타를 타고 출입했다고 한다.
- 동문은 명대 서안성을 구축할 때 조성된 것으로 정식명칭은 장락문(長樂門)이다. 명말
이자성(李自成)의 농민군이 동문으로 서안에 들어왔다. 이자성 농민군이 동문을 통해 들어올 때, 성문 위에 걸려 있는 '長樂門'의 편액을 보고
주변에 있는 장병에게 "만약 황제가 오랫동안 즐거우며 백성은 오랫동안 고통스럽군"이라고 하였다. 장병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격분하여 이 성루를
불태워버렸고, 청대 다시 건축한 것이다.
- 서문은 본래 당대 황성 서쪽의 중문이었다. 당말 한건(韓建)이 장안성을 축소할 때 남아
있다가 명대 성벽을 확대할 때 남쪽으로 이동하여 안정문(安定門)의 이름을 얻었다.
- 남문은 서안 성문 중 가장 오래된 문으로
582년에 건립되었다. 그것은 당대 황성 남면에 있는 3개의 문(함광문, 주작문, 안상문) 중 동쪽에 있는 안상문(安上門)이다. 당말 한건이
성을 축소할 때 남문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명대에는 이 문을 영령문(永寧門)이라고 명칭을 바꾸었다.
- 명대 축성시 건조된 북문은
정식의 명칭이 안원문(安遠門)이다. 신해혁명시 혁명군이 만성(滿城)을 공격할 때, 이 일대 전쟁이 극렬하였다. 그래서 교전 중 북문 성루가
훼손되었다. 1983년 성벽을 보수할 때 원래의 전루(箭樓)를 복원하였다.
- 명고성이 구축된 성벽의 경계는 오늘날 서안시의
원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에는 성벽 위에서 제등을 하고 등불을 밝히는 행사도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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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팁
- 명고성의 개방시간은 매일 08:00~17:00인데, 설날과 국경절 등 중국 국가기념일과 명절에는 밤에도 성곽을
개방하기도 한다. 입장료는 10위안(우리돈 1,300원)이나 성벽에서 행사가 벌어질 경우 입장료의 변동이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중국학생증이
있으면 50% 할인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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