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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양가평혁명구지(楊家坪革命舊址, 양지아핑꺼밍지우띠)

박영복(지호) 2007. 1. 11. 17:53
[연안]양가평혁명구지(楊家坪革命舊址, 양지아핑꺼밍지우띠) 






* 사진 설명: 양가평혁명구지 내 지금도 완벽하게 보존된 중국공산당 대표회의 개최강당. 공산당의 양가평 시기 이 강당에서 주요한 회의와 강연, 공연 등이 열렸다.

ㅇ 위치

- 양가평혁명구지는 연안시 중심에서 서북쪽으로 3km 떨어진 양가평촌에 위치하고 있다.

ㅇ 유래

- 양가평혁명구지는 1938년 11월 중국 공산당 중앙기관이 봉황산에서 작은 농촌마을인 양가평촌으로 오면서 형성되었다. 1943년 10월에는 공산당 중앙서기처가 조원(棗園, 자오유엔)으로 옮겨갔지만 그 뒤로도 다른 중앙기관은 양가평에 남아 기능을 수행했다.

- 양가평 시기 공산당은 내외적으로는 국공합작을 통해서 항일전쟁의 중심으로 등장했고 대내적으로는 정풍운동과 생산진작운동을 벌였다. 1947년 3월 국민당군이 연안에 진군하기 전까지 공산당 정치의 중심역할을 했다.

ㅇ 볼거리

- 양가평혁명구지는 모택동, 주은래, 주덕, 유소기 등 공산당 지도부의 주거와 공산당 중앙서기처, 공산당 전당대회당, 문예토론장 등이 있다. 오늘날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는 북경의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되지만, 1945년 4월에서 6월에는 7차 전국대표대회가 양가평에서 개최되었다. 7차 대회에서는 공산당의 정치노선을 제정하면서 모택동사상을 공산당의 지도사상으로 채택하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 전당대회장은 지금도 보존이 잘 되어 있는데, 중앙 단상 앞에는 모택동 초상이 걸려있다. 1945년만 해도 모택동과 더불어 주덕의 초상도 걸려 있었지만 1960년대 문화대혁명이후 모택동을 신격화하면서 주덕 초상화는 철거되었다.

- 건물 맞은 편 언덕에는 공산당 지도부의 요동(窯洞, 토굴집) 거처가 사이좋게 붙어 있다. '대추나무가 있는 뜨락과 집'이라는 명칭의 주덕, 모택동, 주은래의 집이 나란히 있고 약간 떨어진 곳에 공산화 이후 실권파를 대표했던 유소기의 토굴집이 있다.

- 공산당 지도부가 묶던 토굴집은 전형적인 황토 흙으로 만든 요동으로 그 규모나 내부가 한결같이 소박하고 단순하다. 연안시기 공산당 지도자들도 병사들과 같이 조금의 특권도 없이 고락을 같이 했기에 고난한 투쟁시절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는 지금도 '연안정신'으로 중국 공산당원들에게 귀감이 되어 선전되고 있다.

ㅇ 여행팁

- 양가평혁명구지의 개방시간은 매일 08:00~18:00이며, 입장료는 20위안(우리돈 2,200원)이다. 교통편은 연안시 기차역에서 출발하는 13번 버스를 타고 양가평 정거장에서 하차한다.